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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물 관리에 생존 달린 새·동물들, 사람도 마찬가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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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호 22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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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자란 이들은 새 둥지를 터는 일이 얼마나 스릴 있는지 알 것이다. 물론 애써 낳은 알들을 빼앗기는 새들에겐 천인공노할 일이고, 높다란 우듬치 근처에 있는 둥지까지 낑낑 대며 올라가는 게 아이들에겐 결코 쉽지 않지만 말이다. 물론 올라간다고 전부가 아니다. 둥지까지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는 묘한 ‘양심’ 때문에 알만 가져와야 하는데 이게 참 쉽지 않다. 줄기를 꼭 붙든 채 고개를 있는 대로 빼면서 둥지 속을 넘겨봐야 하는데 작은 몸인데다 아찔한 높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들여다본 둥지 속에 탐스런 알들이 놓여 있을 때의 기쁨이란! 그걸 한 알씩 주머니에 담아 조심스레 내려오는 게 올라가는 것보다 더 힘들고, 내려와서 보면 주머니 속 알들이 다 깨져 있는 것 또한 흔하지만 말이다.

이런 경험이 있는 이들은 또 알 것이다. 새들의 둥지는 여러 마리 새끼를 기를 때도 항상 깨끗하다는 것을. 부모 새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출퇴근’을 반복할 정도로 새끼들이 엄청나게 먹어 대고 배설하는데도 둥지는 언제나 깨끗하다. 요즘 세계적인 대도시마다 비둘기 배설물로 골치를 앓고 있지만, 야생의 비둘기 집은 다르다. 말끔하다. 다른 새 역시 마찬가지다. 배설물이 쌓이면 위생적으로 좋지 않기도 하거니와 포식자를 부르는 ‘위험 물질’이 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숨 쉴 틈 없이 집안을 어질러 놓으면 재빠르게 정리하고 치우는 엄마들처럼, 부모 새는 쉴 새 없이 새끼들이 배출한 똥을 멀리 갖다 버린다. 새끼의 똥을 처리하는 건 먹이를 물어오는 일만큼 중요하다.

새 만이 아니다. 일정한 시간 동안 한 곳에 머무르는 동물 역시 청결에 만전을 기한다. 우리는 돼지, 하면 지저분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야생 돼지는 아주 깨끗하다. 자신들이 배설한 곳에서는 절대 잠을 자지 않고, 잠을 자는 곳에서는 배설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도 역시 배설물은 위기를 부르는 초대장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자나 호랑이도 새끼를 키울 땐 배설물 관리에 주의를 기울인다. 자신이 사냥하러 나간 사이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다. 이렇게 하고도 2, 3일에 한 번씩 거처를 옮긴다. 냄새가 배기 때문이다. 굴속에 사는 너구리는 굴 밖 어딘가에 ‘공동 화장실’을 만들어 그곳에서만 볼 일을 본다.

배설물이 항상 약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으로도 쓴다. 개와 고양잇과 동물들이 길을 가다 틈틈이 볼 일을 보는 건 자신이 다녀갔다는 표시를 남기기 위해서다. 연인은 물론 다른 경쟁자들에게 자신의 존재와 상태를 알리는 것이다. 우리가 병원에서 소변 검사, 대변 검사를 하듯 배설물은 건강의 지표인 까닭이다. 이렇듯 잘 살아가는 동물들은 결코 자신의 배설물을 아무렇게나 흘리고 다니거나 방치하지 않는다.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라고 다를까? 다양한 회사를 다니다 보면 그 회사가 잘 나가는지 그렇지 않은지 몇 군데만 봐도 알 수 있을 때가 많은데 회사의 ‘배설물’도 그 중 하나다. 우리가 무언가를 먹으면 배설하듯, 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쓰고 난 자료나 쓰레기 같은 일의 배설물이 쉽게 쌓이는 곳이 있다. 복사기 주변이나 탕비실 같은 공용 공간이다. 좋은 회사는 ‘공용 화장실’이라 할 만한 이런 곳들이 새 둥지처럼 깨끗하다. 반면 지지부진한 회사는 이곳 역시 지저분하다. 다들 조금씩 흘리고 치우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일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즘은 자리 선택제 등으로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책상 역시 ‘배설물’이 쉽게 쌓이는 곳이어서 이곳을 보면 책상 주인의 정신 상태를 대체로 짐작할 수 있었고, 대개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취재 차 회사를 방문할 때면 항상 이런 곳을 가 본 후 인터뷰를 했다. ‘핵심 지표’를 확인하고 인터뷰를 하면 결과 역시 나쁘지 않았다. 국가를 이끄는 정부 조직에서는 이런 게 더 중요할 텐데, 장관 인선 때마다 ‘오점’으로 얼룩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게 해야 그런 자리에 갈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그런 자리에 가면 으레 그런 걸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다.

더구나 그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라고 한결같이 부인하는 걸 보면 이들은 자신들을 ‘개나 고양잇과 동물’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여기저기 배설의 흔적을 남기고 다니는.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동물이 자기 새끼들을 살리려고 둥지에서 나온 배설물을 멀리 갖다 버리지 않고 근처 어디에 대충 갖다 버린 것과 비슷하다. 자기 둥지만 깨끗하면 공동체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이렇듯 자기이익관리에만 철저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잘 이끌 수 있을까? 자기 이익을 위해 배출한 ‘배설물’들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위기를 불러오는데? 흘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워야 하는 사람 따로 있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사람들이 지도층이 된다면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그들이 이끌고 가는 곳이 분명 우리 모두에게 좋은 곳은 아닐 테니 말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araseo11@naver.com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2005년부터 자연의 생존 전략을 연구하며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등의 책을 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지식탐정의 호시탐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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