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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시대 첫 한·미 정상회담 D-7]“안미경중 유효한 적 없어, 이젠 안경동행 전략 취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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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호 11면

SPECIAL REPORT 

지난 9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관련해 “결국 미국 주도의 공급망에 함께 들어가야 한다”며 “지금은 안보와 경제가 함께 하는 안경동행(安經同行)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지난 9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관련해 “결국 미국 주도의 공급망에 함께 들어가야 한다”며 “지금은 안보와 경제가 함께 하는 안경동행(安經同行)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은 한국 경제에도 중대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신 국제경제질서가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G2(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패권 다툼은 격화일로다. 바이든 행정부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본격화하면서 중국 견제 성격이 다분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은 벌써 “중·한 양국 간 산업 공급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 10일 윤 대통령과 만남에서)고 못박고 나섰다. 미·중 모두 그 어느 때보다 직설적으로 “한국은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꽤 오랫동안 한국 사회가 큰 비판 없이 수용해온 전략적 관점이었다. 안보는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과 함께 추구하고, 경제는 지리적으로 이웃한 경제대국 중국과 밀착 협력한다는 것이었다. ‘한·미동맹 강화’를 내건 윤석열 정부에서도 안미경중은 지속될까. 또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경제질서에서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윤석열-바이든 정상회담을 10여 일 앞두고 최중경(66) 한미협회 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을 만났다. 공급망 재편과 한국의 국가전략, 한·미 경제협력 방안 등에 대해 두루 얘기를 나눴다. 외환위기 때 금융협력과장,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내고 지식경제부(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신) 를 이끌었던 최 회장은 국제 현실에 해박한 경제전략가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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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카지노 게임의 ‘칩’이 되면 안돼

한·미 양국이 첫 정상회담에서 원론적으로 합의를 볼 수 있는 어젠다는.
“결국 공급망 재편 이슈다.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양국이 어떻게 협조할 것이냐가 지금으로선 가장 큰 이슈다. 미국이 구상하는 공급망 재편 계획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위치를 점유할 것인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세계화 시대가 저물고 공급망 이슈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한다면.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이전에는 대부분 시장에 맡겨져 글로벌 밸류 체인(GVC)이 형성됐다. 지금은 미국이 시장에 적극 개입해 GVC를 재편하고 있고, 대립국가는 견제한다는 정치적 의도도 직접 내비치고 있다. 한국으로선 어렵고 난처한 상황이다.”
한국은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나.
“절대로 ‘(카지노 게임의) 칩’이 되면 안 된다. 현실의 국제무대에선 메인 플레이어(미국·러시아·중국)가 있고, 불행하게도 칩이 되는 국가가 있다. 물론 메인 플레이어가 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메인 플레이어 누구 하나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어중간한 중립은 파멸을 부른다”고 했던 것이 그 의미다. 구한말 조선이 그랬다. 사드 문제도 결국 중립을 지키려다 칩이 된 케이스다. 국가 전략의 원칙은 그렇고, 방향성은 미국 주도의 공급망에 함께 가야 한다. 좋은 사례가 해외에서 인기가 높은 K9 자주포다. 엔진 등 핵심부품의 기술도 설계도 미국 것을 베이스로 삼아 정보기술(IT) 등 한국의 강점을 복합해 명품으로 만든 것이다. 산업 구조상으로 한국은 선택지가 없다.”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한·미 경제협력의 구체적 모습은.
“긴밀한 산업협력이다. 미국의 첨단기술과 한국의 우수한 생산기술을 공유하고 결합해 서로 ‘윈윈’하는 방식이다. 미국도 한국의 훈련된 인력과 생산 역량을 인정한다. 2014년 GE가 많은 보유기술을 한국에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것도 그래서다. 양국 간 산업적으로 상호의존(interdependent) 관계를 구축해 플러스 섬(Plus-sum) 혁신을 일으키는 산업협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낸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이 좋은 모델이다. 당시 한전과 한수원,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함께 컨소시엄을 이뤄 따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생산하는 국산 제트기도 한·미 산업협력의 모델이다.”

MB 정부 때 원전 UAE 수출 좋은 사례  

현재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은 비교우위론에 기반해 형성된 국제 분업 체계를 뒤흔들게 된다. 미국은 이미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국내 재계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방한에서 또 어떤 ‘투자 청구서’를 내밀지 우려하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미국의 직접 투자 요청에 한국 재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실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새로운 공급망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그런 노력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전면적인 생산기지가 되고 한국은 생산기지가 없어지는 극단적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미국이 효율성 극대화(Efficiency Edge)만 추구하다가 비상상황시 반도체가 부족해질 수 있는 상황을 직면하고 이런 조처를 한 것이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핵심 안보 관련 자재를 미 본토에서 확보하겠다는 구상일 뿐이니 염려할 필요는 없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안미경중’전략은 앞으로도 유효한 선택지인가.
“안미경중은 한국이 메인 플레이어일 때는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 약자가 어떻게 강자들을 상대로 좋은 것만 취할 수 있겠나. 안미경중은 사실상 유효한 적이 없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갈등이 대표적 방증이다. 한국은 안미경중의 방식으로 접근하려다 사드 참사를 맞았다. 중국은 사드라는 ‘안보적 이슈’로 경제보복의 일환인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을 발동해 한국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미국에도 배척당한 적이 있다. 2013년 말 한국 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뒤늦게 참가 의사를 밝혔으나, 당시 미 무역대표부(USTR)는 냉정하게 퇴짜를 놓은 바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부터 제대로 이행하고 TPP는 협상이 타결된 이후 가입국들 모두와 일대일 협상을 해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최 회장과의 인터뷰는 사드 사태가 언급되면서 살짝 옆길로 샜다. 그는 당시 박근혜 정부에서 했던 대처의 아쉬운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사드 이슈를 거중조정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 부분이 실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군이 장비를 들여올 때 한국이 부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규정돼있다. 중국에 NCND(Neither Confirm Nor Deny:긍정도 부정도 않음)로 대응했으면 됐다. 상황에 대한 개념 설정과 정의부터 잘못됐다. 사드 배치 문제는 ‘협상 불가한 국가기밀 사안(non-negotiable confidential military issue)’인데, ‘협상 가능한 외교 사안(negotiable open diplomatic issue)’으로 착각해 중국의 반발과 제재를 자초한 것이다. 중국 당국이 대응책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앞으로의 공급망 재편 문제에서도 사드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안미경중이 틀렸다면 대안은.
“결국 안보와 경제를 함께 가져가는 안경동행(安經同行) 전략으로 가야 한다. 현재 글로벌 정세는 경제와 안보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도 미·중 간 갈등 구도 속에 경제와 안보를 함께 가져가겠다는 전략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새 정부에서 경제안보보좌관을 신설한 것은 바람직하다.”
중국과 러시아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양해를 구해야 한다. 미·중, 미·러 대결 구도 속에서 한국이 수동적으로 선택의 상황에 몰린 것이지, 결코 한국 스스로 누구와 대립각을 세우자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대(對)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인도가 벤치마킹 사례가 될 수 있다. 인도는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협의체) 가입국임에도 불구하고, 냉전 시기부터 형성해 온 러시아와의 전통적 우호 관계를 고수했다. 과거 러시아는 인도에 발전소와 무기를 제공하는 등 에너지·무역·군사협력을 지속해왔다. 현실적으로 러시아를 배척할 수 없는 인도의 입장이 (미국에)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중국과 러시아의 우려를 최대한 고려하겠다는 식으로 계속 소통해가며, 파인 튜닝(fine-tuning·미세조정)을 해가야 한다.”

러시아 제재 동참 않는 인도 참고할 만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은 한국 경제에 또다시 ‘환율 비상등’이 켜진 시점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위기 때마다 외환시장의 불안을 잠재운 특급처방인 한·미 통화스와프가 이번에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통화스와프를 이번 정상회담에서 추진해야 할까.
“이번 회담 의제로 올리는 건 아니라고 본다. 환율이 불안정하니 지금 당장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자는 식의 접근은 외부로부터 되레 한국 경제가 위기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단순히 환율이 출렁이는 상황 때문에 꺼낼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주요국 통화들도 절하현상을 보이고 있으므로 한국만의 특수 상황이 아니다.”

최 회장은 그러면서 오히려 ‘상설 통화스와프’ 체결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국이 그동안 미국과 맺었던 통화스와프는 규모와 기간이 한정된 일시적 통화스와프인 반면 상설 통화스와프는 달러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자유자재로 가져다 쓸 수 있어 외환시장 안정의 만능 열쇠로 평가된다. 현재 미국이 상설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국가는 영국, 일본, 캐나다, 유럽연합, 스위스 등 5개국뿐이다.

상설 통화스와프가 되면 시장 안정에 획기적으로 기여하겠지만, 가능할까.
“지속적으로 논의해갈 필요는 있다. 우리가 논리와 명분을 충분히 제시해야 한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 경제의 특성과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안보적 상황을 커버해 줄 수 있는 것이 상설 스와프다. 미국도 한국의 이런 숙명적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본다. 상설스와프가 체결되면 국격 자체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경제 펀더멘털이 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당장 체결이 어렵다고 해도, 윤석열 정부에서 첫 발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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