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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시대 첫 한·미 정상회담 D-7]대북 억지력 강화하고, 새로운 한·미동맹 모델 모색…윤석열 정부 실용 외교 첫 시험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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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호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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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양상보다 그 내면의 복잡한 정치적 게임을 파악해야 하므로 기표(記標)가 아닌 기의(記意)적 측면이 훨씬 더 중요하다. 외견상 서로의 이익을 위해 함께 ‘맹세’한다는 일반적 의미가 담겨 있지만 실제로는 국가들 간에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얽히고설킨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기의’로서의 동맹은 ‘적’을 포함한 다양한 안보 불안 요인에 함께 맞서는 것인 동시에 이런 요인들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안보 자산을 공유하는 ‘의지와 행동’을 뜻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동맹 관계는 2차 대전 이후 형성됐다. 현재의 한·미동맹이 생겨난 것도 1953년 10월이었다. 물론 삼국을 통일한 나·당 동맹이나 임진왜란에서 승리한 조선과 명나라의 군사동맹도 있었지만 이는 주권국가들의 관계가 아닌 전근대의 공간이었다. 근대 이후 유럽에서도 동맹 관계가 빈번히 발생했지만 지금의 동맹과는 사뭇 달랐다. 현재 193개 유엔 회원국 중 한국이 동맹을 맺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만일 누가 방송에서 중국이나 일본을 동맹국으로 칭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숫자의 댓글과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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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했던 자유주의 국제질서 균열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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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다. 부통령과 상원의원 시절 한국을 이미 방문한 바 있고 특히 2001년엔 평양 방문이 거의 성사될 뻔한 적도 있는 만큼 그에게 한반도는 결코 낯설지 않은 곳이다. 관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바이든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외교관이다. 게다가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불과 열흘 만에 서울을 찾은 전례가 없다. 윤석열 정부가 직면한 외교안보 환경 또한 엄중하다. 오는 21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여기에 북한의 7차 핵실험마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한·미 정상이 만나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종(縱)과 횡(橫)의 측면에서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종의 경우 냉전 종식 이후 진행된 30여 년간의 ‘세계화’ 시간이 조정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세계화 시간 속에서 미국은 누구도 넘보지 못할 일극 체제의 정점에 섰지만 지금은 미·중 갈등이 전방위적으로 심화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환점으로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이로 인해 외교안보 정책 자원이 국내 정치로 전환되면서 글로벌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는 모습이다. 과거 버락 오바마 정부가 미·중 경쟁의 심각성을 직감하고 ‘아시아 재균형’이란 이름으로 국가 에너지를 아시아 쪽으로 돌리려 노력했지만 한번 불붙기 시작한 중국의 강대국 프로젝트는 결국 양강 구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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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는 2차 대전 이후 비교적 견고하게 유지되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많은 전문가는 국제 제도의 효율성과 다자주의적 연대를 대체할 질서가 등장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한편으론 1970년대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나 1980년대 ‘플라자 합의’처럼 상당한 수준의 국제질서 조정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적잖다. 특히 이 와중에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어떤 형태로든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변화 모멘텀에 동력을 더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한국은 30여 년의 세계화 시간 동안 비교적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지난해 한국은 정확히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세계화 흐름을 슬기롭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경제력과 민주주의 수준을 확보했다. 가끔씩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과 참여민주주의 과잉 현상이 나타나지만 대체로 파괴가 아니라 제도를 정비하고 법을 고치는 방향으로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물론 한반도 안보와 세계화 30년 사이의 괴리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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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의 상황은 한국과 미국의 국가이익이다. 먼저 한국의 경우 두 가지 사안이 핵심 이슈가 될 것이다. 북한 문제 해결과 글로벌 위상 강화가 그것이다. 2017년 11월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면 비핵화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국내적으로도 북한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관리 가능한 수준의 안보 불안에 머물도록 해야 하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대북 억지력 강화를 강조한 만큼 이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가 필요해 보인다. 억지력 강화는 ‘자체 핵개발’ 같은 일각의 불필요한 주장을 사전에 제거하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글로벌 위상 강화와 관련해서는 윤석열 정부 스스로 ‘글로벌 중추국가’로 표현하고 있는데 기존의 강소국·중견국가나 교량국가처럼 개념을 명확히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과 기여를 확대하겠다는 의미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글로벌 위상 강화’를 좀 더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청와대 안보실에 경제안보비서관을 신설하고 한덕수 총리 후보자가 첫 일성으로 ‘국익에 부합하는 외교’를 강조한 것 등을 감안할 때 ‘외교’를 국익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수단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미 ‘전략 만능주의’ 신중할 필요

이를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 5년 동안 한·미 양국의 긴밀한 협조가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은 정부 출범과 함께 ‘포괄적 전략동맹’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 의미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동맹은 이미 군사 분야를 넘어 다양한 영역에 걸쳐 포괄적으로 확대돼 있는 만큼 한·미동맹이 커버하는 모든 영역이 전략적 내용을 지향한다는 ‘전략 만능주의’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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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려놓을 미국의 어젠다는 단연 ‘아시아 안보’와 ‘성공적인 동맹 모델’일 것이다. 물론 두 어젠다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중국’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외교는 두 개의 축 위에 서 있다. 하나는 미국의 국내적 지지고 또 하나는 세계 도처에 위치한 동맹 파트너 국가다. 미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거의 내전 수준에 있는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바이든 대통령이 아무리 외교의 고수라 해도 단합된 국내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미국 주도의 아시아 안보 유지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재정립을 위해서는 해외 동맹국들의 협조가 필수적이고, 그런 차원에서 유라시아 대륙 끝과 태평양의 시작점에 위치한 한국은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동맹국인 셈이다. 특히 ‘안정적인’ 중국 관리라는 측면에서 미·중 갈등 구조가 20세기의 미·소 경쟁과 달리 협조와 대결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미·중 모두 포기할 수 없는 한국의 국가 정체성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적극 부합한다는 논리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김정은, 미·중 경쟁 혼란기 잘 활용

그렇다면 종과 횡은 어떻게 결합될 수 있을까. 이는 국제사회의 큰 흐름 속에서 한·미 양국의 국가이익이 만나는 현재적 접점은 어디냐의 문제다. 첫째, 소위 ‘세계화 2단계’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새로운 유형의 국제 협력 모델을 한국과 미국이 함께 고민할 수 있느냐다. 요즘 국제사회에서 회자되는 ‘포스트 코로나 국제질서’를 함께 디자인할 수 있느냐의 차원이다.

둘째, 북한이란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안에 합의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이 국제 무대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 미국이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느냐다. 물론 이 사안은 거꾸로 얘기해서 한국이 미국이란 외교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갖췄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게다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외교에 매우 능하다. 돌이켜 보면 2012년 권좌에 오른 뒤 핵무기 개발 속도전에 나서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기까지 그가 고려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2010년대 들어 급속히 가시화된 미·중 경쟁이란 국제안보 혼란기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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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1월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전쟁의 현장을 방문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 도라산에서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북한을 향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공군용 A2 바머 재킷을 입고 오산 공군기지를 오갔던 오바마 전 대통령 등. 한·미 관계는 아직 분단 문제를 넘어서지 못했다. 더욱이 북한은 올해에만 16차례에 걸쳐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하지만 오히려 위기가 고조될수록 안보 불안을 해소할 적극적인 시간이 다가올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보수주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실용주의 외교 노선을 택할 것이다. 주목할 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큰 물줄기를 형성했던 외교안보적 결단은 대부분 보수 정부 때 내려졌다는 점이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1987년 7·7 선언과 북방 정책, 2009년 한·미동맹 미래 비전 등은 한국의 국가 정체성에 자신감을 가진 정치 세력들의 의지이자 실천이었다. 보수 정부일수록 한·미 관계에서 더 당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도 같은 상황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노스웨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와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 회장 등을 맡고 있으며 『탈냉전사의 인식』 등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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