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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열병식 직후, 북 전역에 코로나 전파·확산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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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호 02면

지난 12일 국가비상방역사령부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스크를 쓴 채 코로나19 발생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지난 12일 국가비상방역사령부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스크를 쓴 채 코로나19 발생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12일 하루에만 1만8000여 명의 코로나19 발열 환자가 발생했고 지금까지 6명이 사망했다고 13일 관영 매체를 통해 전했다. 매체들은 “지난달 말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이 전국적 범위에서 폭발적으로 전파·확대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국가비상방역사령부를 찾아 방역 체계의 허점을 질타하며 신속 대응을 지시하고 나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확진자 제로라며 코로나 청정국을 주장하던 북한에서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지난달부터 북한 내에서 진행된 각종 행사들을 역순으로 짚어보면 코로나 확산 배경을 가늠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를 포착할 수 있다. 우선 지난달은 김 위원장의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큰 의미를 가진 달이었다. 김 위원장의 공식 집권 10주년(11일), 김일성 주석 생일 110주년(1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25일) 등 정주년을 맞는 정치 기념일이 포진해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 1월 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에서 선대 지도자들의 생일 기간을 성대히 경축한다는 결정서를 채택하며 대대적인 행사를 예고하기도 했다.

이를 위한 ‘역대급’ 행사 준비를 위해 각지에서 물자와 인력을 동원하는 와중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1월부터 국경을 봉쇄해 내부 자원이 고갈된 상태였고 필요한 물품을 외부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최소한의 인적 접촉이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경축 분위기를 이어가던 4월 행사의 클라이맥스는 지난달 25일에 열린 대규모 열병식이었다. 북한이 시인한 발병자 확산 시기도 지난달 말로 열병식 때와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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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 위원장은 열병식을 강행함으로써 선친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에 성공했음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선택에 더 무게를 뒀다. 실제로 북한은 열병식 전후로 김 위원장이 완성된 핵 무력을 가진 강군을 완성했다는 ‘스토리텔링’을 내놓으며 우상화에 더욱 집중했다. 다소의 감염 확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성대한 행사로 자신의 리더십을 대내외에 선보일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셈이다.

지난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노란 원)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경축 열병식에 참가했던 평양 청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열병식은 지난달 25일 열렸다. [노동신문=뉴스1]

지난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노란 원)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경축 열병식에 참가했던 평양 청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열병식은 지난달 25일 열렸다. [노동신문=뉴스1]

김 위원장은 비슷한 시기에 체제 결속과 주민 단합을 위해 전례없이 적극적인 ‘사진 정치’도 진행했는데 이 행사들이 코로나 확산의 결정적인 촉매제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열병식 직후인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군 장병 및 방송 관계자, 열병부대 지휘관, 군 수뇌부, 대학생과 근로 청년 등을 대거 불러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열병식 당시 김일성광장에서 대형 카드섹션을 선보인 대학생과 근로 청년들과의 지난 1일 기념사진 촬영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스무 장의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한 장당 약 1200명의 인원이 집결했다. 노동신문은 지난 6일 1면에 게재한 ‘온 나라를 진감시킨 5·1절의 기념 촬영 충격’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김 위원장이 열병식에 참가했던 수만 명의 청년과 기념사진을 찍은 일화를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열병식 때 바닥 대열에 동원됐던 청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겠다”며 한 명도 빠짐없이 데려오라고 직접 지시했다. 이에 노동당 간부들은 열병식 직후 전국 각지로 흩어진 청년들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 새벽 2시부터 수십 대의 대형버스를 동원해야 했다. ‘최고 존엄’의 지시 관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던 학생들까지 촬영장에 집결시켰다고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일련의 행사가 코로나 대확산의 주요 계기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역대급 열병식의 성공에 도취한 북한이 방심한 측면이 있다”며 “대규모 밀접 접촉이 이뤄진 사진 촬영 행사도 코로나19 유행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엔 지난해 9월 정권 수립 73주년 기념 열병식 직후에도 코로나19 의심자가 다소 발생했지만 무사히 넘어갔던 경험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욱 당시 국방부 장관은 열병식 직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북한 스스로는 코로나 환자가 없다고 하지만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내부에 코로나 확진자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열병식장에는) 검사를 정확히 하고 투입한 것 같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일부 발열 환자가 발생했을 수 있지만 이후로도 계속 코로나 청정국을 주장한 것으로 미뤄 큰 문제 없이 넘어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 당국은 지난 12일 관영 매체를 통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대내외에 처음 공개한 뒤 ▶모든 시·군 지역 봉쇄 ▶경계 근무 강화 ▶각 단위별 격폐 후 생산 활동 ▶의료품 비축분 동원 등의 방역 조치를 내렸다. 또 35만여 명의 발열 환자가 나왔지만 그중에서 16만2200여 명이 완치됐다고 강조했다. 이는 보건·의료 체계가 열약하다는 외부 지적을 반박하는 동시에 코로나19 유행 상황을 주도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음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현실적으로 격리·봉쇄 외에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는 상황에서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 발열 환자와 격리 및 치료자, 사망자 수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은 국제사회 지원에 대한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절이던 1990년대 후반에도 국제기구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며 구체적인 곡물 수확량 예상치를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선 공식적으로 백신·치료제를 일절 지원받은 적 없는 북한에서 16만2200명에 달하는 완치자가 나왔다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북한은 2020년 7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웹사이트를 통해 “코로나19 후보 백신을 개발했다”고 주장했지만 내부 결속을 위한 선전 수단에 가깝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오히려 북한 당국은 필수 의약품이 부족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약초와 전통 한방 치료를 확대하고 있다. 오경섭 통일연구윈 연구위원은 “보건·의료 체계가 붕괴된 상태인 만큼 일반 주민의 경우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완치자의 경우 격리 과정에서 면역 체계가 작동하며 자연적으로 치료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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