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서 고교 동창회 …15㎏ 빠져도 6694m 세계 첫 정복

중앙선데이

입력 2022.05.14 00:02

업데이트 2022.05.1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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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호 26면

경복고 개교 100주년 푸캉 원정대

푸캉(6694m)은 히말라야의 미등정봉이다. 지난 5월 4일 경복고 산악부OB와 서울시산악연맹이 함께 세계 초등에 성공했다. 푸캉 정상으로 난 원정대의 흔적이 보인다. [사진 경복고 산악부OB]

푸캉(6694m)은 히말라야의 미등정봉이다. 지난 5월 4일 경복고 산악부OB와 서울시산악연맹이 함께 세계 초등에 성공했다. 푸캉 정상으로 난 원정대의 흔적이 보인다. [사진 경복고 산악부OB]

“어휴, 15㎏이나 빠졌어요. 그래도 올라가야죠. 100년이 어디 숫자에 불과한 건가요.”

지난 11일, 서울에서 4000㎞ 떨어진 네팔 카트만두에서 강신원(52·경복고OB) 부대장이 전한 말이다. 본인의 표현대로 ‘뱃가죽과 등뼈가 착 달라붙었다’고 한 상태가 되면서까지 강 부대장은 왜 히말라야 푸캉(PhuKang·6694m)에 올랐을까.

99세. 백(百)에서 일(一)을 빼니 흰 백(白)이다. 그래서 백수(白壽)라고 한다. 100세. 연대(年代)와 연대를 넘어 한 세기를 맞이하는 나이. 사람으로 따지면 최상의 수명이라는 상수(上壽)다. 그래서 100주년은 특별하다. 졸업생으로 구성된 경복고 산악부OB는 2020년 개교 99주년, 학교의 백수에 ‘흰 산’에 갈 계획을 세웠다. ‘흰 산’은 히말라야를 지칭한다.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2021년에 ‘히말라야 동창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코로나19로 100주년 등정 일정은 한 해를 넘긴 올해가 됐다. DYPNF(주)의 후원을 받아 서울시산악연맹 대원을 포함한 8명의 원정대가 히말라야로 향했다. 그리고 등정대 5명 전원이 지난 4일 푸캉에 올랐다.

히말라야 14좌 완등 김미곤 대장이 이끌어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미 2000년 전후로 우리나라 학교 여럿이 100세 시대를 맞이했다. 100주년을 기념해 에베레스트(8848m) 등 히말라야 고산에 다녀온 학교도 여럿. 하지만 경복고OB가 오른 푸캉은 미등정봉, 아무도 정상을 밟아보지 않은 산이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네팔 북서부 마낭(Manang) 지역에 있고, 가장 가까운 경찰 지구대가 55.3㎞ 떨어져 있다는 정보가 있을 뿐이다. 이런 빈약한 정보 탓에 푸캉은 스위스·프랑스 원정대도 포기한 산이다. 2008년 스위스 원정대는 정상까지 향하는 루트를 찾지 못했다. 2017년 프랑스 원정대는 힘룽히말(7126m) 정상을 거쳐 등정에 나섰지만, 악천후로 접근조차 못 했다.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우리나라에서 7번째, 세계에서 41번째로 오른 김미곤(50·서울시산악연맹 부회장) 대장이 경복고 원정대를 이끌었다. 김 대장은 “8000m급 등정보다, 6000~7000m급 미등정봉을 오르는 게 요즘 세계 산악계의 화두”라며 “에베레스트나 다른 8000m급 산을 검토했지만, 초등을 하는 게 의미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조좌진(60·경복고OB) 원정대 단장은 “카트만두-베시사르-푸가온(3900m)을 통한 카라반(caravan·베이스캠프까지 이동하는 여정) 뒤 베이스캠프에서 오르는 게 프랑스 원정대가 시도했던 함룽히말을 통한 접근보다 어렵지만, 정공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푸캉 원정대가 카라반 중인 모습. [사진 경복고 산악부OB]

푸캉 원정대가 카라반 중인 모습. [사진 경복고 산악부OB]

초등의 어려움은 정보 부족이다. 강 대장이 15㎏이나 빠진 건 물 때문이었다. 베이스캠프 근처로 흘러내리는 물에 적응하지 못했다. 물갈이가 심했다. 강 대장은 “꼬박 일주일간 하루에 수프와 숭늉 조금, 사탕 2개, 초코바 1개만 먹었다”며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고, 잠도 거의 못 잤다”고 털어놨다. 그는 베이스캠프(5050m)에서 정상까지 1644m나 고도를 올리면서 두세 걸음 걷고 한 번씩 쉬었다고 한다. 강 부대장은 “4만 명의 동문(동창회장 김민식)이 지켜보는데, 같이 하는 대원들에게 폐가 될까 봐 온몸을 쥐어짜면서 올라갔다”고 밝혔다.

푸캉 베이스캠프에서 안전 등반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지낸 뒤의 원정대. 왼쪽부터 이건진 대원, 강신원 부대장, 김미곤 대장, 조좌진 단장, 박승철 고문, 장대부 대원, 황선수 부단장, 김민수 대원.[사진 경복고 산악부OB]

푸캉 베이스캠프에서 안전 등반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지낸 뒤의 원정대. 왼쪽부터 이건진 대원, 강신원 부대장, 김미곤 대장, 조좌진 단장, 박승철 고문, 장대부 대원, 황선수 부단장, 김민수 대원.[사진 경복고 산악부OB]

또 다른 어려움은 베이스캠프에서 전진베이스캠프로 이어지는 곳의 악마처럼 입을 벌린 골짜기. 400m 가까운 비탈인데, 얄궂게도 발이 미끄러지는 흙이다. 몸의 제동이 걸리지 않으니 쓰러지고 엎어지길 몇 번 반복하면 계곡물에 닿는다. 박승철(69·경복고OB) 고문은 “이렇게 해서 (문제의) 식수를 길러왔고, 정상에 가기 위해서는 맞은편의 400m의 흙 비탈을 다시 올라가야 했다”고 말했다. 김민수(44·경복고OB) 대원은 “이어서 빙하 위에 바위가 쌓여 동네 뒷산처럼 솟은 언덕이 4㎞는 연달아 등장하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매서운 날씨도 기다리고 있었다. 김 대장은 “눈과 바람이 몰아쳤는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라며 “다행히 등정하는 날에만 날씨가 좋아졌다”고 전했다.

지난 4일 세계 최초로 푸캉 정상에 오른 경복고 산악부OB 푸캉 원정대. [사진 경복고 산악부OB]

지난 4일 세계 최초로 푸캉 정상에 오른 경복고 산악부OB 푸캉 원정대. [사진 경복고 산악부OB]

하산 후 응급실 직행 “회와 소주 당긴다”
2008년의 스위스 원정대가 푸캉 초등에 실패한 원인은 중단부의 급경사 때문으로 보인다. 70도에 이르는 고빗사위는 시야를 제한한다. 그러면 루트를 찾기 어려워진다. 경복고 원정대는 위험구간에는 로프를 설치하고, 전진베이스캠프(ABC·5400m)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하루 만에 속공으로 오르는 세미 알파인스타일로 등반했다. 알파인스타일은 고정로프와 포터 없이 단번에 등반하는 방식을 말한다.

눈과 바람이 몰아친 푸캉 베이스캠프. [사진 경복고 산악부OB]

눈과 바람이 몰아친 푸캉 베이스캠프. [사진 경복고 산악부OB]

지난 4일 오전 10시 30분. 지구가 생긴 이래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던 푸캉에 한국인 5명이 올랐다. 히말라야에서의 고교 동창회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 셈. 어디선가 풍악이라도 울려야 할 텐데, 대신 바람이 거세지고 있었다. 이건진(39·서울시산악연맹) 대원은 “올가을의 힘룽히말 원정에서는 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두렵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고 말했다. 도전은 이렇게 계속되는 것.

정상에서의 포옹도 잠시, 강 부대장은 쓰러질 듯 내려가 곧바로 카트만두 국립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큰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듣고 현지에서 회복 중인 그는 “가족들에게 내 상황을 전했지만, 모두 산에 다녀서 그런지 덤덤해 하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회와 소주가 그렇게 당긴다”고 말했다. 핸드폰 너머, 그가 침을 꿀꺽 삼키는 듯했다. 모교 100주년을 위해 푸캉에 올랐더니, 거기서 입맛도 찾았나 보다.

네팔 “푸캉 초등 계기 한국인 많이 찾아오길”
경복고OB 원정대가 푸캉을 초등하자 네팔 정부는 큰 관심을 보였다. 조좌진 원정대 단장은 “관광 수입에 의지하는 네팔이 푸캉 원정대의 등정을 계기로 다른 한국 원정대와 트래커들이 다시 찾아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푸캉 초등 뒤 9일에 열린 보고회에서 네팔 문화관광민간항공부 차관과 네팔등산협회 회장, 네팔관광청 이사 등이 참석했다. 마훼셀 네오파넬 차관은 “많은 한국인이 네팔을 찾길 바란다”고 밝혔다.

네팔 정부는 서둘러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령을 풀었다. 2020년 3월부터 히말라야 등반을 금지했다가 같은 해 9월부터 제한적으로 등반 허가를 내줬다.

네팔의 관광 수입은 국내총생산(GDP)의 8% 수준. 코로나19 전인 2019년 관광 수입은 6억6800만 달러였는데, 2020년엔 5억2400만 달러로 27%나 급감했다. 2019~2020년 회계 연도의 성장률은 -1.99%. 역성장은 40년 만에 처음이었다.

에베레스트만 따지면 정상 등반을 위해 입국하는 이들에게 한해 400만 달러(약 47억원)를 받고 있다. 네팔의 GDP가 337억 달러(약 40조원, 2020년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막대한 수입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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