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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바의 궁중무용, BTS가 대통령 앞에서 춤추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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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호 19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현대무용가 김재덕

‘다크니스 품바’로 유명한 현대무용가 김재덕이 서울시무용단 ‘일무’(5월 19~2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종묘제례악의 느리고 절제된 춤을 힘있고 빠르게 재해석한다. 박종근 기자

‘다크니스 품바’로 유명한 현대무용가 김재덕이 서울시무용단 ‘일무’(5월 19~2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종묘제례악의 느리고 절제된 춤을 힘있고 빠르게 재해석한다. 박종근 기자

“끼가 넘치는데 가볍지 않더군요. 장르를 마구 믹스하면서 폭을 최대한 늘려서 활용하는 분인데, 잘 완성된 그릇에 담았을 때 정말 가능성이 클 것 같아요. 본인의 안무작 ‘다크니스 품바’는 작품보다 발상이 좋더군요. ‘나와 같이했다면 완전 새로웠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죠. 물론 협업하기 쉬운 대상은 아니에요. 서로가 너무 완성돼 있으니까요. 하지만 불꽃 튀는 시너지가 날 수도 있죠.”

패션 디자이너이자 공연 연출가 정구호가 지난해 현대무용가 김재덕을 두고 한 말이다. 정씨가 연출한 국립무용단 ‘산조’ 공연을 앞두고 만났을 때다. 산조라는 국악의 기악 독주 형식을 춤으로 표현한 작품에서 김재덕은 안무가 아닌 음악으로 참여했었다. 불규칙하고 즉흥적인 산조의 자유로움을 쩌렁쩌렁한 EDM 사운드와 다양한 악기의 흐드러지는 어울림으로 풀어낸 음악이 퍽 인상적이었다.

대표작 ‘다크니스 품바’ 22개국 공연

역동적으로 변형된 ‘일무’ 연습에 한창인 서울시무용단. [사진 서울시무용단]

역동적으로 변형된 ‘일무’ 연습에 한창인 서울시무용단. [사진 서울시무용단]

1년 만에 ‘불꽃 튀는 시너지’를 제대로 확인하게 됐다. 정구호가 연출로 나선 서울시무용단의 ‘일무’(5월 19~2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김재덕이 공동안무와 음악을 맡으면서 시각적으로도 색깔을 드러내게 된 것. ‘일무’는 그간 존재감이 미미했던 서울시무용단이  업그레이드를 도모하는 야심작으로, 정혜진 예술감독과 또다른 현대무용가 김성훈까지 공동안무로 참여하는 대작이다.

“정구호 연출님이 제 스타일을 원하셔서 안무까지 하게 됐어요. 사실 시간이 없어서 못할 뻔 했는데,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열심히 했고, 칭찬받으며 즐겁게 하고 있어요. 까다로운 분이라지만 정 연출님과 소통이 저는 되게 편하네요. 원하시는 길과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맞는 것 같아요.”

10년 전부터 국립무용단을 중심으로 한국무용의 환골탈태를 이끌었던 정구호 연출의 시립무용단 등판에 식상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무용팬이라면 정구호와 김재덕의 협업에 열광할 만하다. 특히 전통 소재 중에서도 하드코어한 종묘제례악을 소재로 취한 데서 강한 도전의식이 읽힌다. 종묘제례악에서 수십명이 네모반듯하게 열을 맞춰 질서와 절도를 표현하는 미니멀한 춤이 ‘일무’로, “군무의 열을 통해 우리 전통의 정신을 찾겠다”는 것이 정혜진 예술감독이 밝힌 기획의도다.

“질서와 열이 가장 중요해요. 줄맞추기가 먼저라 바둑판과 바닥 테이핑까지 동원했죠. 열을 맞춰 추는 전통무용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재미있게 보여주자는 게 연출 의도인데, 정 연출님이 국립무용단에서 만드신 ‘향연’의 연장선상에서 좀 더 현대화를 추구하신 것 같아요.”

역동적으로 변형된 ‘일무’ 연습에 한창인 서울시무용단. [사진 서울시무용단]

역동적으로 변형된 ‘일무’ 연습에 한창인 서울시무용단. [사진 서울시무용단]

절제미의 극치인 일무는 정구호 미니멀리즘과 찰떡이지만, 사실 김재덕은 맥시멀리스트다. 자신의 공연은 라이브밴드에 소리꾼을 동원하고 직접 노래까지 부르며 버라이어티하게 꾸민다. “원래 제 스타일과는 다르지만 민속적으로 푼 장면도 있어요. 궁중무용을 좀 재밌게 만들자는 의도니까요. 왕 앞에서 격식을 차리는 춤이지만, 대통령 앞에서 BTS가 춤추는 느낌이랄까요. 직관적인 제 스타일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흥미로운 건 그가 이번 작업 이전에는 종묘제례악을 본 적도 없고, 뭔지도 몰랐다는 점이다. “사극에서 옛날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라고만 생각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보편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었단다. “용어들도 꼭 주문처럼 들리고, 충격이었어요. 모든 음악이 시작만 했다하면 태평소와 피리 가락으로 시작하는데, 우렁참이 끝장이더군요. 나중엔 머리가 아픈데 관객도 그럴 것 같았어요. 우렁찬 가락을 많이 빼고 멀리서 들리는 느낌을 살렸죠. 종묘제례악을 모른다고 쫄지는 않았어요. 저에게 음악과 무용은 기호가 아니라 표현이거든요. 모르는 게 당연하고, 두려움도 없어요. 만일 제가 누구의 제자라 관습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이라면 쫄았겠죠. 저는 현대화 시키는 입장이니까요.”

재미난 발견도 있었다. 타악기 중에서도 마이너한 축, 어 등의 악기를 처음 만나 그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어’란 악기가 너무 매력적이더군요. 큰 호랑이 머리를 얇은 대나무로 세 번 때리고 등을 드르륵 긁는 소리가 재미있어서 그걸 반복시켜 음악의 리듬으로 활용해 봤어요. 이번에 받은 영향들이 언젠가 제 작품에도 드러나겠죠. 원래 민속적이고 샤먼적인 걸 좋아하는데, 이번에 완전히 반대되는 태도로 임해야 하는 지점이 흥미로워요. 안무도 저는 원래 동작이 한없이 바닥으로 내려가거나 꺾고 꿀렁꿀렁 하는데, 그걸 배제한 상태에서 절도 있는 것만 해야 되니까요. 그런 접근이 저의 즐거운 예술생활과는 좀 다른데, 들어온 일도 즐겨야 되다보니 공부를 하게 되네요.(웃음)”

사실 김재덕의 대명사인 ‘다크니스 품바’부터 예의가 핵심인 궁중무용과는 상극이다. ‘품바’란 민초들의 울분과 설움을 토해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제 스타일은 직관적이고 홀가분하게 뱉어내는 것인데, 이번 작업은 절제의 미학이라고 말해야겠죠. 절도있고 규칙적인 춤을 어떻게 힘있게 보이게 할까 고민하는데서 즐거움을 찾았어요. 결국 박자와 템포에 변화를 주니 생동감이 살아나고 재미도 있더군요. 전통의 애매모호함도 흥미로웠어요. 구두전술이 가진 신비성인데, 모호하니까 끝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더군요. 전통의 매력이 거기 있는 것 같아요.”

전통예술이란 현대인의 삶 속에 희미해져만 가는 민족적, 국가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보수적인 질서 속의 아름다움이 동시대 사람들의 눈에도 빛나기는 쉽지 않다. 현대무용가들이 전통 소재를 금보듯 하는 이유다. 김재덕도 그중 하나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김재덕은 한국적이라기보다 한국적 재료를 갖고 논다. 자아도취 상태로 보일만큼 즐기기에 동시대 관객의 공감을 얻고, 이국적이고 새로운 안무를 찾는 해외 단체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고 말했다.

장 평론가의 말처럼 그는 이미 ‘월드 클래스’ 안무가다. 첫 안무작 ‘다크니스 품바’는 2006년 초연 이래 영국 더 플레이스, 미국 케네디센터를 비롯해 세계 22개국 38개 도시에서 공연했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싱가포르 T.H.E 댄스 컴퍼니 해외 상임안무가로도 활동하며 매년 신작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 때도 줌으로 만들었을 정도다. “그들이 저에게 한국적인 걸 원하는 건 아니예요. 한국적 동작인지 뭔지 모르면서도 좋다는 거죠. 사실 ‘다크니스 품바’ 안에도 한국무용은 없어요. 해외 무용단에 가서도 항상 가르치는 저만의 메소드가 있을 뿐이죠. 공기, 바람, 구름 같은 자연이나 전통적인 이미지로 만든 저만의 동작인데요. 누군가 봤을 때 왠지 한국적인데,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걸 추구합니다. 제 몸에서 만들어지는 저만의 한국무용이랄까요.”

스트릿댄스 정형화된 동작, 내 취향 아냐

‘다크니스 품바’는 2019년 무용씬에서 유례없는 30회 장기공연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과연 도전은 성공했을까. “그땐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작품이 대중적이란 얘기를 듣는데, 정말 대중적으로 잘되나 궁금했죠. 너무 힘들어서 죽다 살아났어요. 최대한 수지를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요. 다시는 못할 것 같은데, 깨달은 건 있어요. 대중적인 활동을 하려면 홍보를 잘해야 되는구나. 돈을 쓰지 않으면 희망이 없구나.(웃음) 이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거죠.”

‘조선의 스트릿댄스’라 할 품바를 하고 있으니 최근의 스트릿댄스 열풍에 대한 생각도 있을 터. 스트릿댄스와의 콜라보로 대중성을 도모하면 어떠냐고 물으니, 뜻밖에 “스트릿댄스엔 관심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도 서울문화재단에서 서울시 비보이단의 작품을 안무하고 있긴 해요. 상업적인 쇼가 아니라 비보이를 현대무용화하는 작업이죠. 테크닉만 기대하는 게 아니라 비보잉을 공연의 심리로 보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건데, 재밌어요. 하지만 제 공연에 스트릿 요소를 넣고 싶진 않아요. 그냥 취향 탓이죠. 뮤지션인 저희 매형도 품바를 보자마자 스트릿을 적당히 넣으면 더 잘될 거라고 하시더군요. 잘되고 싶기도 하지만 제 취향도 중요하니까요. 스트릿의 내적 감성은 좋아하지만, 그 정형화된 무브먼트는 제 취향이 아니거든요.” 그의 말에 새삼 예술이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닫고 무릎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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