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연구소 R&D가 글로벌 신기술 창업으로 이어지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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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창업의 길] 이스라엘에서 만난 혁신 스타트업들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고층빌딩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고층빌딩에는 첨단 스타트업들이 대거 입주해있다. 멀리 지중해변이 보인다. 최준호 기자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고층빌딩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고층빌딩에는 첨단 스타트업들이 대거 입주해있다. 멀리 지중해변이 보인다. 최준호 기자

 이스라엘은 명실상부한 ‘창업국가’다. 한국 경상남북도 면적에 인구라고는 900만 명에 불과한 소국이지만, 인구 수 대비 스타트업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이 미국-중국 다음으로 많은 90여 개에 달한다. 자원이라고는 사실상 사람밖에 없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3610달러(2020년, 세계은행)에 이르는 비결이다. 2017년 인텔에 17조5000억원에 인수된 세계 1위의 자율주행 시스템 기업 모빌아이, 지난달 26일 볼보자동차가 전략적 투자를 밝힌 초고속 충전 배터리 시스템 회사 스토어닷 등 비롯해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즐비하다. 이스라엘에 들어와 있는 400여 글로벌기업 연구개발(R&D)센터는 모두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인수한 형태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은 대학·연구소·군부대 등의 연구개발(R&D)에 바탕을 둔 딥테크(deep tech) 창업이 주류를 이룬다. 지금까지 없던 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열거나, 기존 시장 참여 기업들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떠오를 수 있는 기업들이다. 창업자들의 면면을 보면 이공계 대학 교수이거나, 석·박사 출신이 대부분이다. 또는 교수 등 연구자들이 개발한 기술을 이전받아 회사를 세우는 창업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중앙일보가 지난 4월 중순 이스라엘을 방문해 텔아비브와 예루살렘·하이파 등 전국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혁신창업 스타트업들을 만났다.

하이파.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이파.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1세기 '오일' 리튬을 신기술로 추출한다 

◇엑스트라릿(Xtralit)=텔아비브 남쪽 레호보트에 위치한 엑스트라릿은 지난 1월 설립한 말 그대로 신생 기업이지만, 중·저 농도의 염호(鹽湖)에서도 높은 순도의 리튬을 추출할 수 있는 신기술과 관련 특허를 보유해 주목받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2차전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핵심 원료인 리튬 공급은 제한적이다. 에너지 분야 조사기관인 라이스태드 에너지에 따르면 오는 2027년 리튬 채굴량이 전기차 붐에 따른 리튬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심각한 리튬 공급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이먼 리친 최고경영자(CEO) 겸 공동창업자는 “최근 리튬산업이 개발되는 과정을 보면 20세기 오일 붐이 일어나던 때와 아주 비슷하다”며“엑스트라릿은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이면서도 획기적인 방법으로 염수에서 바로 리튬을 바로 추출할 수 있는 증명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엑스트라릿은 최근 한국의 배터리 관련 주요 기업들과 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친 CEO는 텔아비브대학 전기공학과의 현역 석학교수이면서 연쇄 창업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간의 연구개발 성과를 바탕으로 초고속 충전 배터리 스타트업 스토어닷 등 에너지 분야 기업을 연이어 창업해왔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8 이스라엘 에너지청으로부터 라이프어치브먼트상(Prize for Life Achievements) 등을 수상했다.

엑스트라릿은 중ㆍ저 농도의 염호(鹽湖)에서도 높은 순도의 리튬을 추출할 수 있는 신기술과 관련 특허를 보유해 주목받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사이먼 리친 대표가 세계 리튬산업 동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엑스트라릿은 중ㆍ저 농도의 염호(鹽湖)에서도 높은 순도의 리튬을 추출할 수 있는 신기술과 관련 특허를 보유해 주목받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사이먼 리친 대표가 세계 리튬산업 동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빠르고 값싸고 부작용 적게 고형암 치료

◇알파타우(AlphaTau)=수도 예루살렘에 있는 알파타우는 고형종양 치료의 게임 체인저를 자부한다. 알파방사선을 이용한 의료기기 알파다트(Alpha DaRT)를 이용해 값싸고 빠르면서도 저렴하게 암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텔아비브대학 천체물리학과 교수 이츠하크 캘슨과 같은 대학 의대 교수 요나 케이사리가 개발한 기술로 2015년 창업했다. 기존 방사선 치료에 쓰는 감마·베타선은 투과력이 높지만 암세포를 공격하려면 많은 양의 방출이 필요하다. 반면 알파 방사선은 종이도 뚫지 못하지만 DNA를 한 번에 뚫는 강한 성질을 가진다. 알파 방출원자는 짧은 거리에서만 확산해서 잘 사용되지 않았지만 종양 부위만 목표로 고선량 방사선을 방출하면 정상조직에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알파타우의 설명이다. 방사선 노출 위험이 매우 적기 때문에 현재의 방사선 치료 환경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보호 장비 없이 시술을 할 수 있다.

우지 소퍼 CEO 겸 회장은 “첫 환자를 치료할 때 병원에 하룻밤만 입원시켰고, 다음날 아침 16시간 만에 종양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을 확인했다”며 “양성자나 중입자 치료의 경우 환자가 져야하는 비용 무담이 크지만 다트 치료는 비용도 저렴하고, 환자가 치료받은 뒤 곧바로 집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알파다트의 효능은 시장과 제도권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이스라엘 피부암 치료제 승인 및 판매허가를 받았고, 6월에는 미국 FDA로부터 뇌종양의 하나인 재발성 다형성 교모세포종 환자 치료를 위한 방사선 암치료제로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받았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 2월 기존 상장기업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미국 나스닥에 진출했다.

알파타우의 고형암 치료. 귀 표면에 생긴 종양을 치료한 뒤 두달여만에 깨끗하게 완치됐다. [사진 알파타우]

알파타우의 고형암 치료. 귀 표면에 생긴 종양을 치료한 뒤 두달여만에 깨끗하게 완치됐다. [사진 알파타우]

특수부대 화이트해킹 기술로 사이버 보안 

◇울트라레드(UltraRed)=텔아비브 중심가 고층빌딩에 입주해 있는 울트라레드는 엘리트 군부대 출신 창업이라는 이스라엘만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스타트업이다. 이스라엘 사이버전 특수부대인 8200의 천재 해커 장교 출신인 이란 슈타우버가 같은 부대 출신 엔지니어들과 함께 2009년 창업한 켈라그룹의 자회사다. 해커의 관점에서 고객이 된 기업·기관의 네트워크를 살펴보고, 실제로 해커들이 사용하는 기술을 시뮬레이션해 보안체계가 잘 작동하는지 테스트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일본 정부기관, e커머스(전자상거래) 회사, 통신기술 회사 등이 이미 계약을 통해 관련 서비스를 받고 있다.

슈타우버 대표는 “최근 들어 해커들의 공격 패턴이 날로 다양해지고 예측불허 수준까지 이르고 있어 능동적인 보안강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일반 인터넷 사용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해커들의 정보공간인 다크넷 웹사이트에는 수많은 기업·기관의 해킹 당한 정보가 올라와 있다”며 “울트라레드는 이런 다크넷을 자동으로 서칭해서 고객과 관련한 정보를 모으고 위험 요인이 있을 때 알려준다”고 덧붙였다.

울트라레드는 해커의 관점에서 고객이 된 기업ㆍ기관의 네트워크를 살펴보고, 실제로 해커들이 사용하는 기술을 시뮬레이션해 보안체계가 잘 작동하는지 테스트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이버전 특수부대 8200의 천재 해커 장교 출신인 이란 슈타우버가 회사의 업무를 설명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울트라레드는 해커의 관점에서 고객이 된 기업ㆍ기관의 네트워크를 살펴보고, 실제로 해커들이 사용하는 기술을 시뮬레이션해 보안체계가 잘 작동하는지 테스트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이버전 특수부대 8200의 천재 해커 장교 출신인 이란 슈타우버가 회사의 업무를 설명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에어로베이션은 강력한 산화제인 슈퍼옥사이드 라디칼을 활용한 공기청정 솔루션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연구원들이 공기정화 실험 장비를 설명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에어로베이션은 강력한 산화제인 슈퍼옥사이드 라디칼을 활용한 공기청정 솔루션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연구원들이 공기정화 실험 장비를 설명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신기술로 공기정화, 탄소포집 두마리 잡기

◇에어로베이션(Airovation)=강력한 산화제인 슈퍼옥사이드 라디칼을 활용한 공기청정 솔루션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에서 화학전 및 기술사업화 경력을 쌓은 장교 출신 마랏 마얀과 히브리대학 응용화학과 요엘 사손 교수가 2017년 창업했다. 일반 공기청정기에서 주로 쓰는 헤파필터의 물리적 방식과 달리 첨단 화학기술을 이용해 유독가스와 초미세먼지·바이러스 등을 제거하고, 이산화탄소를 미네랄로 바꿔준다. 덕분에 공기청정 뿐 아니라 공장 탄소배출 감축에도 활용할 수 있다. 슈퍼옥사이드 라디칼은 1970년대 우주선과 잠수함에서 고형물이나 가스를 합성하는데 사용한 기술이다. 지금까지는 비용이 많이 들고 안정화가 어려워 산업현장에서 활용이 어려웠다. 사손 교수는 10여년의 연구개발 끝에 슈퍼옥사이드 라디칼을 안정화하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출원했다.

레호보트 북쪽 소도시 네스치오나에 자리한 에어로베이션 사옥에 들어서니 곳곳에 LG전자의 공기청정기가 보였다. 마랏 마얀 에어로베이션 대표는 “실내 공기 청정기술의 상용화를 위해 2년 전부터 한국 대기업과 공동으로 공기청정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공장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암모니아 등을 처리하는 공장에 이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에브리사이트는 전투기 조종사의 헬멧에 장착된 조준시스템 기술을 이용한 증강현실 스마트 글래스를 만들고 있다. 최준호 기자

에브리사이트는 전투기 조종사의 헬멧에 장착된 조준시스템 기술을 이용한 증강현실 스마트 글래스를 만들고 있다. 최준호 기자

전투기 조종사 헬멧 기술로 만든 스마트글래스

◇에브리사이트(Everysight)=이스라엘 제3의 도시 하이파에 자리한 증강현실(AR) 기술 기업이다. 전 세계 주요 전투기 조종사들 쓰는 헬멧을 만드는 이스라엘 방산업체 엘빗시스템에서 분사했다. 조종사 헬멧에 장착된 조준시스템 기술을 응용, 일반인들이 쓸 수 있는 AR 스마트글래스를 주로 개발하고 있다. 국방 기술이 일반인을 위한 제품으로 상용화된 사례다. 에브라사이트에서 만난 AR 스마트글래스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포츠용 고글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착용을 하면 속도와 기온·맥박 등 각종 생활·생체 정보와 방항을 알려주는 간단한 네비게이션 기능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간단한 터치나 목소리 만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전송할 수도 있다.

음악을 듣거나 전화통화도 할 수 있다. 렌즈 안에 초소형 디스플레이가 있고, 다리 쪽에 배터리와 각종 장치가 들어가 있지만, 전체 무게기 98g에 불과해 그다지 불편함을 느낄 수 없는 정도였다. 스마트폰과 연동해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가격은 600달러 안팎이다. 아사프 아슈케나지 대표는“지금까지 에브리사이트의 스마트글래스는 주로 자전거 등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을 타깃으로 해왔지만, 조만간 출시될 제품은 일상 생활 중에서도 거부감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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