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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컵 4억개와 맞먹는다…이런 선거 쓰레기, 법 때문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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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린 3월 10일 오전 한 구청직원들이 선거 관련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뉴스1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린 3월 10일 오전 한 구청직원들이 선거 관련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뉴스1

“일회용 플라스틱 컵 4억개를 쓸 때의 온실가스 배출량, 수령 30년 소나무 228만 그루가 1년간 흡수해야 하는 양…”

오는 6·1 지방선거를 전후로 전국에서 쓰레기가 쏟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각 선거 캠프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합성수지 재질의 현수막과 코팅 처리된 공보물 등을 쓴 결과다. 전문가들은 “재활용이 어려운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대안 선거문화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선거 끝나면 쓰레기…각종 홍보물 골치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6·1 지방선거 선거구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포함해 모두 2324개에 달한다. 4132명 일꾼을 새로 뽑는다. 후보등록 기간인 13일까지 4년 전 지방선거와 비슷한 규모의 후보자(9363명)가 등록을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

각 후보자는 공식선거 운동 기간에 얼굴과 이름·기호·정당명이 인쇄된 현수막을 선거구 내 읍·면·동마다 2장씩 걸 수 있다. 기초의원 선거 후보자의 경우 투표구마다 2장까지 걸 수 있어 현수막만 10만장 이상이 거리를 도배하게 된다. 전국 각지에 뿌려지는 수억부의 공보물과 100만장의 선거 벽보도 선거가 끝나면 대부분 폐기물이 된다.

서울 지역 선거 캠프 관계자는 “후보가 명함을 나눠주고 유세 차량이 다녀도 거리 홍보엔 한계가 있다”며 “현수막이나 공보물이 후보를 알리는 최적의 노출수단이라는 점에서 (각 후보가) 최대한 걸고 찍어내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한 백화점에서 폐현수막을 재활용한 제품이 전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한 백화점에서 폐현수막을 재활용한 제품이 전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폐현수막 재활용률은 20%대 수준 

문제는 이런 홍보물이 대부분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데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선거가 끝난 뒤 현수막을 장바구니나 청소용 마대 등으로 제작하고 있으나 재활용률은 23.5% 수준(2020년 총선 기준)이다. 현수막은 플라스틱 합성섬유(폴리에스테르)가 주성분이어서 폐기물 처리 때 상당한 골칫거리다. 매립해도 잘 썩지 않고, 태울 땐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을 내뿜는다. 코팅 처리된 종이 공보물·명함·벽보 역시 재활용이 어려운 소재들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3월 폐현수막 재활용 지원사업을 위해 경기도 오산, 경남 창원 등 22개 지자체를 선정했다. 이를 놓고 환경단체 사이에선 벌써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이란 비판이 나온다. 사업에 선정된 지자체 제안사업 중 절반 이상이 또 따른 형태의 쓰레기로 남는 장바구니·마대자루 등을 만드는 사업이어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방선거 온실가스 배출량 2만여t    

녹색연합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2만772t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4억개를 썼을 때의 배출량과 맞먹는다. 뚜껑·빨대·홀더를 포함한 중량 25g짜리 컵 1개가 기준이다. 이 정도 규모의 온실가스를 없애려면, 30년 된 소나무 228만 2637그루가 1년 내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야 하는 양이기도 하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선거 쓰레기 발생량 자체를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2005년 선거사무소 건물 외벽에 부착하는 현수막의 규격·재질 제한이 사라진 데 이어 2010년에는 선거사무소의 현수막 개수 제한을 없애는 등 그간 공직선거법 개정이 쓰레기를 늘리는 쪽으로 이뤄져 와서다. 광주광역시 환경운동연합과 자원순환협의체가 지난 2일 개최한 ‘쓰레기를 걱정하는 지선(지방선거)씨에게’ 토론회에서도 이런 법 개정의 문제점 등이 지적됐다.

국회 본회의장 자료사진. 사진 공동취재=연합뉴스

국회 본회의장 자료사진. 사진 공동취재=연합뉴스

국회에서 잠자는 친환경 선거법안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대안 선거문화를 모색하는 법안은 이미 발의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지난해 11월 공보물·벽보 등을 재생용지로 쓰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국회 상임위원회에 멈춰서 있다. 앞서 같은 해 8월엔 책자형 공보물을 온라인으로 바꾸는 개정안도 나왔으나 역시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 안팎에선 “현행법 아래에서는 사실상 후보자 의지만으로 친환경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재활용 원단을 사용한 현수막은 일반 현수막보다 비용은 1.3배, 제작 기간은 5배가량 더 걸리는 등 비용·시간이 걸림돌이다. 예컨대 사탕수수 명함은 가격이 2배나 높고, 콩기름 잉크 공보물 등도 고가인 데다 제작 가능한 업체도 극히 일부다.

복수의 캠프 관계자들은 “수천 명이 출마하는 지방선거 상황에서 쓰레기가 없는 ‘제로(0) 웨이스트(waste)’ 후보를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선거운동으로 쓸 수 있는 비용이 정해져 있어 고가의 친환경 홍보물 등을 쓰면 개수를 줄여야 하는데 홍보물 한장이 아쉬운 캠프 입장에선 결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의 선거운동 부스모습. 연합뉴스

미국의 선거운동 부스모습.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가의 경우 선거기간 거리에서 현수막이나 벽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권자가 지지 후보를 알리는 캠페인을 펼치거나 현수막 대신 선거 부스 등을 활용하는 등 선거방식 자체가 달라서다.

이들은 또 “당선·낙선 인사도 현수막으로 하는 한국에서 선거 쓰레기를 줄이려면 결국 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온라인에서 정보를 얻지 않았던 시대의 선거운동 방식이 이어지고 있는 탓”이라며 “관련법을 고쳐 현수막 사용을 금지하고 공보물은 온라인으로 전환하되 디지털 약자를 위한 공보물을 제작할 땐 재생 종이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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