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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빚 갚으려 뇌물 받고, 선거비 만들다 감옥 가는 교육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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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한 달 앞둔 2일 전북 전주시 전라북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지방선거 관련 포스터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한 달 앞둔 2일 전북 전주시 전라북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지방선거 관련 포스터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이청연 전 인천교육감은 2015년 인천 고등학교 두 곳의 신축 이전공사 시공권을 넘기는 대가로 건설업체 대표 등으로부터 3억원의 뇌물을 받았다. 선거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이 전 교육감은 2017년 징역 6년을 선고받고 교육감직을 잃었다.

2012년 장학사 시험 문제를 유출하고 뒷돈을 받은 김종성 전 충남교육감도 3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직선 교육감이 '매관매직'을 했다는 소식에 교육계는 충격에 빠졌다. 김 전 교육감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반성은 커녕 책임을 전가한다"며 유죄로 판결했다.

이자를 주겠다며 선거 펀드를 조성한 뒤 떼먹은 후보도 있다. 안상섭 전 경북교육감 후보는 선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갚지 않은 혐의(사기)로 징역 1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청연 전 인천시교육감. [연합뉴스]

이청연 전 인천시교육감. [연합뉴스]

전·현직 교육감들은 종종 비교육적인 죄명으로 언론에 등장한다. 대부분은 선거 운동을 하며 진 빚을 갚기 위해 뒷돈을 받는 경우다. 그 대가로 인사 특혜나 일감을 줬고, 시험 문제를 유출하기도 했다. 2007년 직선제 시행 이후 뇌물 수수 등 비리로 징역형이 확정된 교육감만 6명이다. 5명은 임기 도중 실형 또는 벌금형 선고로 교육감직을 잃거나 중도 사퇴했다. 교육계에서는 정당 지원 없이 개인 돈을 써야 하는 교육감 선거가 뇌물 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시도지사 선거보다 비싼 교육감 선거 

교육감 선거에는 개인 돈이 많이 든다. 정치적 중립 때문에 정당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61명의 교육감 후보자가 677억원을 쓰며 시·도지사 선거(542억원)보다 비싼 비용을 치렀다.

득표율 15%를 넘으면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지만 그외에도 많은 돈이 든다. 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선거사무소 임차료와 각종 집기 구매 비용 등 선거 비용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지출까지 포함하면 실제 선거에 쓰이는 돈은 더 많다"며 "비용을 보전해주더라도 항목마다 상한액이 정해져 있어 후보자가 지출한 돈을 전액 보전받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2월 25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출판기념회에서 참석자들과 저서에 사인을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2월 25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출판기념회에서 참석자들과 저서에 사인을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교육감 후보들이 선거 비용을 벌기 위해 흔히 쓰는 방법이 출판 기념회다. 지난 2월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청소년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지는 가운데 평일 연차를 내고 6시간 동안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책 정가는 2만원이었지만 참석자 대부분이 5만원권 여러 장을 봉투에 넣고 책을 받아갔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행사장에 방문해 마이크를 잡고 축하 말을 전달하기도 했다.

2018년 인천 교육감에 출마했다 중도 사퇴한 박융수 서울대 사무국장은 "인사권자인 교육감이 출판 기념회를 열면 직원들은 잘 보이기 위해 찾아가 돈을 낼 수밖에 없고 교육감은 돈을 받았기 때문에 인사 청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악순환"이라고 말했다.

선거에 쓴 개인 돈 수억원을 메꾸기 위해 당선 후 뒷돈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2007년 교육감 직선제가 시작된 이후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횡령 등으로 유죄 판결이 확정된 교육감만 11명(징역형 6명)이다. 학교 공사 업무를 주는 대가로 건설업체에서 뇌물을 받은 김복만 전 울산교육감과 이청연 전 인천교육감, 직원들에게 뇌물을 받고 측근의 인사 평가를 조작한 나근형 전 인천 교육감 등이 대표적 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당선 안돼도 나랏돈 보전 받으려 완주

교육감 후보 단일화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도 비용이다. 선거에서 15% 이상을 득표하면 선거 비용 전액을 보전받기 때문에 당선이 안되더라도 비용 보전을 목적으로 완주하려 할 수 있어서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쓴 비용이 적지 않은데 아무 소득 없이 물러나기가 쉽지 않다"며 "당선이 아니라도 최소 10%를 득표해 절반이라도 보전받거나 15%를 넘겨 전액 보전을 목표로 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교육감 선거가 시도지사 선거보다 비효율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후보가 난립하는 교육감 선거의 특성상 당선되지 않아도 나랏돈으로 선거 비용을 보전받는 경우가 많아서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선거 비용을 보전받은 시도지사 후보자는 36명(당선인 17명 포함)에 불과했지만, 교육감 후보자는 총 52명이 나랏돈을 타갔다. 총 보전 액수 또한 시도지사 선거 412억, 교육감 선거 549억으로 교육감 선거에 더 많은 세금이 쓰였다. 정당이 개입하지 않으니 후보가 난립하고, 후보가 난립하니 더 많은 선거 비용이 드는 구조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러닝메이트·완전공영제 대안 될까

전문가들은 정당 러닝메이트제와 같은 정당과의 연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서현진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교육감은 중도 후보가 오히려 정치적 이익 단체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당선되기 어렵다"며 "겉으로는 정치 중립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정치적 이념성을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라고 했다. 그러면서 "껍데기만 정치 중립적인 선거를 지속할 바에 차라리 정당을 표명해 뇌물 수수 등 각종 비리에 연루될 여지를 없애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교육감 선거에 완전한 공영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개인 후보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선거 벽보‧공보‧현수막·TV토론 등 선거운동 일체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담하자는 것이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교육 전문성을 갖춘 후보가 선거에 나설 수 있도록 선거공영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지금의 교육감 선거는 교육 전문가보다 정치 배경과 돈이 있는 후보에게 유리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고전 제주대 교육대학 교수는 "교육은 특수한 분야인 만큼 후보자 개인의 선거 운동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며 "개인이 유세차 타고 다니는 선거를 지양하고 대신 후보자의 TV 토론회 기회를 늘려 유권자들이 교육 정책 비교를 할 수 있도록 룰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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