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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참모의 힘…보험금 심사도, 쇳물 제조도 척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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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수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22) 최대우 애자일소다 대표

최대우 애자일소다 대표는 “애자일소다는 전 세계에서 현실적인 기업의 문제를 가장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내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진은 다중노출 촬영으로 완성했다. 김현동 기자

최대우 애자일소다 대표는 “애자일소다는 전 세계에서 현실적인 기업의 문제를 가장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내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진은 다중노출 촬영으로 완성했다. 김현동 기자

“사무실이든 공장이든 서류 심사나 제조공정 세팅 같이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일이 많잖아요. 가장 기본이면서도 그만큼 중요한 업무지요. 사람의 손과 시간을 줄일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창업의 시작이었습니다.”

단순반복 작업 하는 일손을 덜어주자.

최대우(59) 애자일소다 대표가 지난 2015년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이렇게 분명했다. 그는 미국 럿거스대에서 통계학 박사를 취득하고, 한국외국어대 통계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데이터 마이닝(분석 및 예측)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금융권과 제조업체, 정부기관 등 200곳 이상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

한화생명·포스코 등과 협업하면서 비용 감축, 수율 개선 성과
해외서도 주목…일 NTT에 수출, 미국선 ‘최고 벤더’로 선정
“AI는 데이터 경험과 패턴을 수식화해 의사결정 보조자 역할
교육·의료·유통·금융·제조 등 다양한 업종서 수요 늘어날 것”

매년 신제품 출시…올 매출 목표 110억

2010년대 들어 마침 한국에도 빅데이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학술 세미나에서 만난 공동 창업자인 김영현 부사장과 의기투합하면서 창업으로 이어졌다. 회사 이름에 평소 경영 철학과 미션을 그대로 담았다. 애자일소다는 ‘민첩성’을 의미하는 영어 어질리티(Agility)에서 온 애자일(Agile)에 소프트웨어 디파인드 인공지능(Software Defined AI)의 약자 ‘SoDA’를 합한 이름이다.

현재 직원 150여 명 중 80%가량이 알고리즘 개발자나 소프트웨어(SW) 개발자 같은 데이터 과학자다. 설립 이후 매년 신제품 출시와 SW 업데이트 등 꾸준히 기술 개발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올해 매출은 110억원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달까지 70%를 달성해 목표 달성은 무난할 전망이다. 지난해 매출이 37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외형이 세 배 가까이 커지는 셈이다. 최 대표는 “지난해에는 제품 버전 정비 등의 이유로 외부 프로젝트를 줄였다”며 “매출은 꾸준히 성장세”라고 말했다.

수상 이력도 화려하고, 투자 유치도 궤도에 올랐다. 지난해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하는 AI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대한민국 AI 대상에서 프로세스 자동화부문 대상을 받았다. 현재 마무리 단계인 시리즈C 투자를 포함해 올해까지 누적 투자액은 200억원대에 이른다.

“AI 필요한 모든 회사가 고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어떤 회사가 애자일소다의 고객이 될까. 최 대표는 “AI 프로그램이 필요한 모든 회사”라고 답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보험과 은행 등 금융권이다.

예컨대 보험 가입자가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때 의료기관 영수증과 진단서 등 각종 서류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해 제출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제출된 서류를 시스템에 입력하는 일은 광학 문자 판독(AI OCR) 제품인 ‘트윈리더’로 이미지에서 글자를 추출해 디지털 데이터로 축적할 수 있다. 기계가 사람의 언어를 읽어내는 자연어 처리(NLP) 기술이 쓰인 ‘트윈독’으로 진단서에 담긴 의사의 소견이 무슨 내용인지 파악한다.

이어 보험금 지급 대상이 되는지 판단하는 단계다. 데이터 학습 SW인 ‘베이킹소다’가 보험금을 지급할지, 부정 청구가 의심되는 사례이니 추가 검토가 필요한지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런 일련의 시스템을 운영하는 플랫폼이 ‘스파클링소다’다.

이 회사는 2019년부터 한화생명과 협업해 AI에 기반을 둔 클레임 자동 심사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지난 3년간 쌓인 1100만 건의 보험금 청구 데이터를 활용해 3만5000번의 학습 과정을 거치면서 정확도를 검증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모두 6개의 보험금 자동 지급 판단 모델을 개발했다.

한화생명 측은 “법률과 의학·약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심사인력 양성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AI 자동심사 도입으로 효율적이고 집중도 높은 업무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주로 자산 포트폴리오 구성이나 적정 대출 한도를 제시하고, 이상 거래 및 사기 탐지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AI가 활용된다.

이미 축적된 데이터가 있다면 제조업체도 고객이 된다. 포스코는 쇳물의 화학 성분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AI 제어 시스템을 도입했다. 제강 과정에 AI가 도입된 세계 첫 사례다.

철광석을 녹여 제강하는 과정은 온도와 화학 성분이 핵심인데 어떤 제품을 만드느냐에 따라 공정이 달라진다. 가령 선박이냐, 자동차에 따라 제강 과정의 세팅을 조정해야 한다. 기존에는 쇳물 상태의 성분 비율을 알기 어려워서 중간에 일부 쇳물을 굳힌 다음 샘플을 제작하기도 했다. 만약 조건이 맞지 않으면 쇳물 성분을 바꾸는 등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애자일소다와 포스코는 쇳물 성분을 AI로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3년 누적 데이터 24만 건을 활용했다. 제강 과정에 AI 시스템 도입이 되면서 최적화한 조건을 확인한 뒤 생산에 들어가게 됐다. 성분 적중률이 5% 올랐고, 제품 재질의 편차도 15~16%가량 줄었다. 시제품을 만드는 과정도 사라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0.01%의 편차도 용납되지 않는 철강 산업에서 성분 적중률 5% 상승은 상당한 성과”라며 “2017년 1개 공정을 대상으로 시험 시행했고, 이듬해부터는 광양 제2제강 공정 전체 라인에 도입됐다”고 소개했다.

설계 최적화 연구…적용 분야 무궁무진

“한화생명과 포스코는 전혀 업종이 다르지요. 하지만 AI 도입 사례는 본질적으로 같아요. AI를 통한 강화 학습으로 최적화한 의사결정 결과를 얻어낸다는 점이지요.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의 목표를 내고 싶을 때, 그 과정에서 복잡한 계산과 판단이 필요하다면 데이터에 기반을 둔 AI가 ‘정답’입니다.”

현재 애자일소다는 강화 학습 기반의 베이킹소다 프로그램 개발 및 업데이트에 전력하고 있다. 적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유통 업계에서 활용 가능한 로봇 SW의 경우 물류창고에서 로봇의 동선을 짜고, 상품 적재는 어떻게 해야 가장 효율적인지 최적화 솔루션을 제시한다.

이런 원리는 건축에도 적용할 수 있다. 건물을 설계할 때 콘센트를 어디에 배치할지, 파이프를 어느 쪽으로 지나가게 할지 등 캐드(CAD) 프로그래머들이 골머리를 앓는 문제에 최적화 과정을 도입하면 기존 건축물 사례를 학습해 결과를 AI가 도출해내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정교한 설계가 필요한 반도체 산업에서도 쓰일 수 있다. 애자일소다는 반도체 칩 설계 최적화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최 대표는 “반도체는 매우 복잡한 분야지만 특정 부분에서는 우리 회사가 세계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실제로 이 회사의 성과와 비전은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 1월 애자일소다는 일본의 NTT콤웨어와 트윈독 공급 계약을 맺었다. 문단과 문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의미를 파악하는 등 인간의 언어를 읽어내는 AI 제품이다. 일본 수출이 가능했던 건 한국어든, 일본어든, 영어든 훈련만 시키면 언어와 관계없이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조사기관 가트너로부터 AI 핵심 기술 부문의 ‘쿨 벤더’로 뽑혔다. 가트너는 AI 부문에서 독창적·혁신적인 신생 기업을 조사해 자체 프로세스로 검증한 뒤, 분야별로 3~5개 기업을 쿨 벤더로 선정한다. AI 핵심 기술 부문에 아시아 기업이 선정된 건 애자일소다가 처음이다.

가트너는 당시 애자일소다에 대해 “복잡한 AI 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조직의 목표를 최적의 방법으로 달성하도록 만드는 회사”라고 평가하며 “모델 기반 설계, 선적, 거래 분석 등 다양한 업종의 최적화 업무에 AI 도입을 준비할 경우 애자일소다 제품 도입을 검토하라”고 추천했다.

인간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

애자일소다의 AI SW는 단순·반복적인 업무를 대체하는 것에서 시작해 복잡한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특급 기술 참모’로 진화한 셈이다. 그러면 AI는 어디까지 인간을 대체하게 되는 걸까. 최 대표는 “AI가 인간이 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실생활 사례도 들었다. “일상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AI 스피커도 결국은 사람이 기계가 알아듣게 말해줘야 작동하지 않느냐”며 “아직은 AI 관련 기술이 발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 최 대표에게 AI란 무엇일까. “본질적으로 AI는 데이터에 대한 경험과 패턴을 정교하고 복잡한 수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사람의 최종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지요. AI가 인간의 ‘무엇’이든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입니다. 되레 이런 시선은 경계해야 하지요.”

최 대표는 그러면서 “나는 데이터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라며 “데이터에 기반을 둔 좋은 계산기를 만든다는 게 지금의 목표”라고 답했다. 이어 “우리만의 역량을 키우면 전 세계가 우리를 찾을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며 “애자일소다는 전 세계에서 현실적인 기업의 문제를 가장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내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