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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눈치보기·물러나기·미루기…걱정되는 새 정부 주택공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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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장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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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윤석열 정부 부동산 정책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윤석열 정부의 주택시장은 어떻게 될까. 직전 문재인 정부에서 시장이 보기 드물게 뒤틀렸기에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대통령 부동산 공약의 주제어는 ‘정상화’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 규제 만능주의와 급등한 집값을 바로잡겠다는 뜻이다.

1기 신도시 재정비 방안 뒤엉켜 #공시가격·양도세 완화 공약 후퇴 #집값 상승에 공급 로드맵 제자리 #서울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시급

  양도세 다주택 중과 1년간 한시적 배제를 시작으로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행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양도세 다주택 중과 1년간 한시적 배제를 시작으로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행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제 갓 출범한 윤 정부의 주택시장 앞날에 걱정이 앞선다. 출발이 매끄럽지 못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지난 3일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대선 공약을 바탕으로 한 새 정부 정책 조감도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부동산이 윗자리를 차지했다. 첫 번째 국정 목표인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의 ‘국민께 드리는 약속’ 셋 중 두 번째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부동산 정책을 바로잡겠습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주택공급 확대 ^부동산세제 정상화 ^주택금융제도 개선 ^주거복지 지원이다.

선거 의식한 1기 신도시 재정비  

인수위가 공약보다 나아가지 못한 데다 갈지자(之) 행보를 하더니 일부 공약에선 후퇴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 시장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대표적으로 1기 신도시 재정비 문제다. 지난달 25일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중장기 국정과제로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다음날 심교언 인수위 부동산 태스크포스(TF) 팀장이 말을 바꿨다.

그는 "1기 신도시가 중장기 검토과제라는 표현에 대해 오해가 있어 정정한다"며 "당선인의 공약은 계획대로 진행 중으로, 조속한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1기 신도시를 둘러싼 혼선은 중장기 검토 발표에 대해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에서 터져 나온 ‘말 바꾸기 아니냐’는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6·1 지방선거와 분당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등을 앞두고 표심을 계산한 것이다. 110대 국정과제에서 언급한 ‘눈높이’가 눈치보기를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당초 윤 대통령은 공약에서 보유세 부담을 덜기 위해 세금 계산 기준 금액인 공시가격의 환원 시점을 2020년으로 명시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3월 23일 올해 1주택자 보유세를 2021년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별다른 반대 없이 받아들였다. 당시 정부는 “인수위원들에게 보고했고 발표 내용에 대해 소통했다”고 했다. 공약에선 양도세 다주택자 중과 한시적 배제 기간을 2년으로 약속했지만 인수위는 1년으로 줄였다.

시장은 새 정부가 공약·국정과제에서 모두 1순위로 꼽은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청사진을 내놓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 1호는 다주택자를 위한 선심성 세금 감면이었다. 지난 10일부터 적용되는 양도세 다주택자 중과 1년 한시적 배제가 윤 대통령의 부동산 공약 실행 1호이고 취임 선물이다. 주택공급 확대 로드맵 발표는 이후로 미뤄졌다.

양도세 중과 배제가 다주택자 매물을 유도해 시장 안정부터 다지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더라도 효과가 의문스럽다. 정부는 중과 배제 대상 주택을 보유 기간 2년 이상으로 넓혔고, 6월 1일 이전 매도하면 올해 종부세 경감 혜택까지 보기 때문에 매물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본다.

하지만 매도할 이유보다 계속 보유할 이유가 더 많다. 새 정부 공약이 궁극적으로 중과 폐지이기 때문에 그때 팔아도 양도세를 줄인다. 규제 완화 기대감에 웬만한 주택 가격이 오르면 올랐지, 쉽게 내릴 것 같지 않다. 공약대로 임대주택 활성화가 시행될 경우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양도세·종부세 모두 감면 혜택을 볼 수 있다.

대출 완화 없는 매물 유도

매도자에게만 당근을 주고 매수자를 신경 쓰지 않아 매물이 나오더라도 소화가 어렵다. 문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매수하고 싶어도 여력이 안 된다. 새 정부는 대출 한도를 LTV(담보인정비율) 70%까지, 생애 최초 구입의 경우 80%까지 풀겠다고 했다. 매도를 유도하는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규제 완화 혜택을 받지 못하고 개발 호재도 없어 집값 상승을 기대할 수 없는 주택 정도만 중과 배제를 이용해 팔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집값 눈치를 보며 주택공급 계획을 미루었다는 의구심이 든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후보자 인선 직후 “잘못된 가격 신호로 갈 수 있는 규제 완화나 공급은 윤석열 정부의 미래 청사진에는 없다"고 했다. 원 후보자는 이달 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단기적으로 가격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안전진단, 재초환(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은 당분간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주택 공급은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윤 대통령 당선 이후 규제 완화 기대감에 집값 상승 폭이 다시 확대되는 양상이긴 하지만 겁먹어서는 안 된다.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한 규제 완화와 개발 활성화는 자연히 집값을 자극하는 부수적 효과를 수반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담그기를 포기해서야 되겠는가. 구더기를 잡거나 구더기가 나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동반하면 된다.

지금은 집값 상승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나중에는 반대로 집값 하락이 주택공급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집값이 내리고 주택경기가 가라앉았는데 공급 확대가 시장을 더 죽일 수 있다는 우려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규모 보금자리주택 공급 계획이 축소된 것도 집값 약세 때문이었다. 단기적인 등수에 집착하면 꾸준히 실력을 쌓으며 성적을 올릴 수 없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새 정부는 집값 동향에 과민반응을 보이지 말고 꿋꿋하고 일관되게 주택공급을 추진하는 배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렇다고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공약을 한꺼번에 밀어붙일 수 없다. 집값 급등을 주도한 서울 주택공급부터 서둘러야 한다. 집을 지을 땅이 부족한 서울에서 주요 공급 확대 방안이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다. 이미 진행 중인 사업 속도를 높이는 게 우선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신속통합기획이 인허가를 단축해 사업을 재촉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한계가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현재 재건축·재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분양가상한제·재건축부담금이다. 현행 분양가상한제로는 건자재 등 공사비 인플레이션을 감당할 수 없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에 따라 재건축으로 발생하는 초과이익에 부과되는 재건축부담금은 사업을 늦출수록 유리한 구조다. 초과이익이 재건축 시작 시점인 준공 10년 전과 준공 후 집값 격차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집값이 많이 올랐을 때를 시작 시점으로 잡으면 초과이익이 줄어든다. 준공 기준으로 보면 집값이 치솟은 문 정부 10년 뒤인 2020년대 말이다. 지금 사업 속도를 내 2024~2025년 준공하면 10년 전인 2014~2015년 집값이 지금보다 많이 저렴했기 때문에 재건축 부담금 ‘폭탄’을 맞는다.

서울 26만 가구 재건축·재개발 대기

윤 당선인이 공약한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연면적 비율) 완화도 빨리 제시돼야 한다. 용적률이 사업계획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장들이 용적률 상향에 맞춰 사업계획을 변경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2009년 법적 상한(300%)으로 완화한 재건축 용적률에 따라 사업계획을 변경하는 데 2~3년 걸렸다.

이들 규제만 풀어도 분당 2개가 넘는 규모의 새 아파트 건축에 속도를 낼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착공 전 단계인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서 계획하고 있는 건립 가구 수가 26만 가구다. 최근 4년간 서울에 지은 새 아파트 물량과 맞먹는다. 재건축·재개발로 없어지는 주택 수를 고려하더라도 5만 가구가량 순증이다. 주택 공급 확대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면 승객이 탄 버스부터 먼저 출발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새 정부는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사업 중심으로 주택공급을 확대할 계획이지만 공공도 공급 주체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민간은 집값에 따라 부침이 심하기 때문에 공공을 통해 안정적인 주택공급원을 확보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때 집값 하락에 일조한 주택공급 정책이 공공이 주도한 보금자리주택이었다. 공공은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재건축 등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규제가 풀리면 분양가가 전반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공택지 등 저렴한 공공분양 물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문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정책 교통정리도 과제다. 지난해 2·4대책 등 도심 주택공급 방안이 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내건 공공 주도 방식이었다. 새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과 충돌할 여지도 많기 때문에 빨리 조정돼야 시장 혼란을 줄인다.

윤 대통령이 감명받았다는 『선택할 자유』를 쓴 미국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극도로 싫어했지만 필수적 존재라며 정부를 부정하지 않았다. 정부의 역할을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심판으로 강조했다. 심판이 휘슬을 불어야 선수들이 뛰며 게임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