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돌아다니며 정보 수집…데이터 ‘크롤링’ 날개 다나

중앙일보

입력 2022.05.1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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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빅데이터 시대 기반 기술인 크롤링(crawling·온라인상 정보 수집 및 가공)의 허용 범위에 대한 대법원 판단 기준이 나왔다. 데이터의 양뿐만 아니라 공개된 정보인지 여부 등 질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에 정보기술(IT)업계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저작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심명섭 전 위드이노베이션(여기어때 운영사) 대표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다고 12일 밝혔다.

대법, 별도 정보 보호조치 없는 점 참작

심 전 대표 등은 크롤링으로 야놀자 서버에서 제휴 숙박업소 업체명, 주소, 방 이름, 할인 금액 등을 무단 복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지난 2016년 여기어때 직원들은 크롤링기법으로 야놀자 서버에 있는 제휴 숙박업소 업체명, 주소, 할인금액 등 정보를 대량 복제했다.

‘야놀자’의 정보를 크롤링한 ‘여기어때’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모바일앱 캡처]

‘야놀자’의 정보를 크롤링한 ‘여기어때’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모바일앱 캡처]

검찰은 ①이들이 1594만5090회에 걸쳐 서버에 침입한 점(정보통신망법 위반), ②246회에 걸쳐 데이터베이스를 무단으로 복제해 제작자 권리를 침해한 점(저작권법 위반), ③정보를 복제하는 동안 이용자들이 서버에 접속하지 못했던 점(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등을 지적해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혐의를 일부 인정했지만 2심에서 결과는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여기어때 측이 수집한 정보의 양을 따져보면 저작권법상 문제 되는 ‘데이터베이스의 상당 부분’이 아니고, 서버에 ‘침입’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도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 역시 서버 침입이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일반 이용자들은 회원 가입 없이도 자유롭게 서버에 접근할 수 있고, 접근을 막는 별도 보호 조치도 없었다는 점을 짚었다. 또 이들이 복제해 간 정보들은 숙박업소 관련 데이터베이스의 일부라서 이미 알려진 정보라는 점도 주목했다. 크롤링 프로그램으로 서버에 장애가 발생했다는 것도 단정하기 어려워 업무방해에 대해서도 유죄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 사건으로 야놀자가 여기어때를 상대로 낸 민사 소송에서는 1심에서 야놀자가 승소한 상태다. 지난해 8월 법원은 여기어때의 크롤링이 부정경쟁행위라며 야놀자에 1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여기어때 측은 이 판결에 불복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크롤링은 ‘데이터=돈’인 시대가 되면서 인터넷 비즈니스 전반에 필수 기술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누군가 공들여 만든 데이터베이스(DB)까지 크롤링 하는 상황이 빈발하면서 분쟁이 늘었다. 채용정보 플랫폼 사람인과 잡코리아는 10년 가까이 크롤링 법정다툼을 벌였을 정도다.

문제는 저작권법 규정이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법은 DB의 ‘전부 또는 상당한 부분’을 복제할 경우에 한해 보호하고 있는데 이 ‘상당한’의 범위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상당한 부분의 복제에 해당하는 지를 판단할 때는 양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양적으로는 전체 DB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보고, 질적으로는 해당 DB를 유지하고 보호하는 데 상당한 투자를 했는 지를 본다.

민사소송 1심선 “야놀자에 10억 배상”

대법원 관계자는 “양 뿐만 아니라 공개된 정보인지 여부, DB를 보호하기 위해 별도 비용을 들였는지 여부 등 질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한다는 취지”라며 “질에 따라 100중에 5를 가져가도 저작권법 침해가 될 수 있고 30을 가져가도 침해가 아닐 수 있다”고 설명했다.

IT업계 안팎에선 이번 판결이 네이버와 부동산 중개 플랫폼 다윈중개(운영사 다윈프로퍼티) 간 법정 다툼 등 관련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윈중개는 지난해부터 자체 확보한 매물 정보 아래에 ‘외부 매물도 다윈중개 중개사에게 의뢰하면 저렴한 수수료로 중개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네이버 부동산 매물 정보를 게시해왔다. 크롤링으로 수집한 단지명, 층, 면적, 가격 등 4개 정보를 보여주고 누르면 네이버 부동산으로 넘어가는 링크를 넣는 방식이다.

네이버는 크롤링을 막아달라며 지난 1월 가처분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이에 대해 “문구만 삭제하라”며 화해권고 결정했다. 이에 네이버는 지난 9일 데이터베이스권 침해금지 청구 본안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 민사62부에서 심리 중이다.

업계 일각에선 DB를 선제적으로 구축한 선발주자들이 DB 보호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간 로그인 없이 접근할 수 있던 정보의 문턱을 높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송봉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 취지는 일반적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데이터 수집 자체에 큰 노력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공정 이용 관점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유사 소송 건에도 이 부분이 앞으로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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