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밭·습지·갯벌…3색 봄을 누리다

중앙일보

입력 2022.05.1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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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전북 고창은 세계가 인정한 생태관광 명소다. 2010년 갯벌, 2011년 운곡습지가 람사르 습지로 등재됐고 2013년에는 한국 최초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지난해 7월에는 고창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고, 12월에는 유엔 세계관광기구가 고인돌·운곡습지 마을을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하면서 겹경사를 누렸다. 5월은 고창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적기다. 코로나 방역 해제와 함께 모처럼 축제도 열렸다. 연둣빛으로 눈부신 보리밭과 습지뿐 아니라 바다까지 봄기운이 완연했다.

3년 만에 돌아온 축제

전국에 보리밭은 흔해도 고창 학원농장처럼 지형이 멋진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완만한 구릉에 연둣빛 보리가 일렁이는 모습이 눈부시다. 청보리밭축제는 이달 15일까지이지만 축제가 끝나도 보리밭을 구경할 수 있다. 보리는 6월에 수확한다.

전국에 보리밭은 흔해도 고창 학원농장처럼 지형이 멋진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완만한 구릉에 연둣빛 보리가 일렁이는 모습이 눈부시다. 청보리밭축제는 이달 15일까지이지만 축제가 끝나도 보리밭을 구경할 수 있다. 보리는 6월에 수확한다.

누가 뭐래도 고창의 봄 주인공은 청보리다. 해마다 4월 중순부터 3주간 청보리밭축제가 열렸고 약 40만 명이 찾았다. 코로나 탓에 지난 2년은 축제를 쉬었으나 올해는 4월 30일 시작해 5월 15일까지 진행한다. 방역 상황이 불안정해 최대한 일정을 늦췄고 기간도 16일로 줄였다. 청보리밭축제위원장을 맡은 학원농장 진영호(73) 대표는 “청보리가 진한 초록색을 띠고 유채꽃이 만개하는 4월 중순이 가장 아름답지만, 올해는 어쩔 수 없었다”며 “준비 기간도 짧았던 터라 공연·전시·체험 프로그램 등을 예년처럼 준비하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운곡습지는 국내에 드문 산지형 저층 습지다. 80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유문암과 응회암이 많아 물이 고여 있기 좋은 환경이 형성됐다. 사진은 운곡습지 내 생태연못.

운곡습지는 국내에 드문 산지형 저층 습지다. 80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유문암과 응회암이 많아 물이 고여 있기 좋은 환경이 형성됐다. 사진은 운곡습지 내 생태연못.

축제 개최지인 학원농장은 한국 경관 농업의 선구자다. 30년 전 귀농한 진 대표가 17대 국무총리인 아버지 진의종씨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보리를 심었다. 2004년 처음 보리밭 축제를 열었고 학원농장은 이내 전국 명소가 됐다. 전국에서 경관 농업을 배우기 위해 학원농장을 찾았고 진 대표는 2013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처음부터 보리로 성공하리라 기대한 건 아니었다. 수박 농사를 실패한 뒤 손이 덜 가는 작물을 찾다가 보리를 심었다. 보리를 재배한 뒤에도 땅을 놀리진 않는다. 여름에는 해바라기가 밭을 뒤덮고 가을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진다.

한국 경관농업의 선구자인 고창 학원농장 진영호 대표.

한국 경관농업의 선구자인 고창 학원농장 진영호 대표.

이달 3일 유채꽃은 대부분 진 상태였다. 보리 이삭도 조금씩 익어가며 누렇게 변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탁 트인 밭을 공짜로 누빌 수 있는 ‘보리 마을’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올해는 축제 기간 약 30만 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한다. 진 대표는 “주변 지역에 더 넓은 보리밭이 있지만 완만한 구릉과 주변 산세가 어우러진 풍광만큼은 우리를 따라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청보리밭축제에서 보리밭을 누비는 트랙터 관람차.

청보리밭축제에서 보리밭을 누비는 트랙터 관람차.

축제 기간 학원농장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유채와 보리가 어우러진 입구 쪽 밭이다. 차 없는 거리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적하고 드넓은 보리밭이 또 나온다. 트랙터 관람차(어른 편도 5000원)를 타고 ‘마중길’을 둘러보는 방법도 있다. 광주에서 온 서애림(65)씨는 “보리밭을 거닐다가 원두막에서 쉬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며 “무엇보다 마스크 벗고 광활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원시 밀림 같은 습지

운곡댐 건설 때 이주한 주민들이 사는 용계마을.

운곡댐 건설 때 이주한 주민들이 사는 용계마을.

고창은 고인돌의 고장이다. 지역 로고도 고인돌이다.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447기의 고인돌이 고창에 있다. 8000만 년 전 선운산 화산 폭발로 고인돌을 만들기에 좋은 돌이 많이 생성됐다. 고인돌 유적지 주변에 습지가 많은 것도 돌 때문이다. 화산재와 용암이 굳어져 생긴 돌은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 곳곳에 습지가 생긴 까닭이다. 해발 100m 산자락 습지는 쌀농사에 적합해 예부터 농지로 활용했다.

1982년 산골 마을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전남 영광 한빛원전의 냉각수 용도로 운곡저수지를 만들면서 9개 마을 156가구가 쫓겨났다. 마을이 저수지에 잠겼고 주변 농지는 버려졌다. 사람 발길이 끊긴 지 약 30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방치된 땅이 스스로 원시 습지 상태로 돌아갔다. 온갖 식물이 자라 숲을 이뤘다. 황새·수달·담비 같은 멸종위기종을 비롯해 830종 동식물이 발견됐다.

운곡습지의 핵심 지역인 논둑 복원지. 40년 전까지 벼농사를 짓다가 방치한 땅인데 자연 스스로 원시 습지를 회복했다.

운곡습지의 핵심 지역인 논둑 복원지. 40년 전까지 벼농사를 짓다가 방치한 땅인데 자연 스스로 원시 습지를 회복했다.

이달 4일 ‘생태탐방 1코스’를 걸었다. 호암산 자락 고인돌 유적지를 지나니 금세 깊은 숲이었다. 곧 사람 한 명만 지날 수 있는 데크로드가 나왔다. 왼쪽에 습지가 보였다. 물을 좋아하는 선버들이 원시 밀림처럼 빽빽했고, 사초·물별이끼 등 습지식물이 가득했다. 맑은 물에는 갓 부화한 올챙이가 득시글했다. 바로 여기서 80년대 초까지 농사를 지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습지를 관광자원으로 주목한 건 최근이다. 2015년 마을 주민 주도로 생태관광협의회를 만든 뒤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환경을 관리하고 생태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역 식재료로 만든 도시락을 팔고 토요일마다 장터도 연다. 2017년부터 마을 주민이 야자 매트를 활용해 습지 곳곳에 둑을 만드는 작업도 하고 있다. 고창운곡습지생태관광협의회 신영순 사무국장은 “습지가 수위를 유지하면서도 물이 잘 순환하도록 ‘선한 개입’을 하고 있다”며 “데크로드도 크기를 최소화하고 아래쪽 식물에 햇볕이 잘 들도록 바닥에 틈을 뒀다”고 말했다.

트랙터 타고 동죽조개 캐고

트랙터를 타고 갯벌로 나간 체험객의 모습. 고창갯벌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트랙터를 타고 갯벌로 나간 체험객의 모습. 고창갯벌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고창에는 바다도 있다. 해안선 길이가 82㎞에 이른다. 이 가운데 곰소만 쪽 갯벌이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충남 서천, 전남 신안·순천·보성 갯벌과 함께였다. 유네스코는 “생물 다양성 보존과 물새 서식을 위해 전 지구적으로 중요한 곳”이라고 밝혔다. 고창 갯벌이 모래·펄 등 다양한 퇴적 형태로 이뤄졌다는 점도 인정받았다.

하전 마을에서 맛본 바지락 음식. 제철 맞은 봄 바지락은 통통하고 달다.

하전 마을에서 맛본 바지락 음식. 제철 맞은 봄 바지락은 통통하고 달다.

곰소만 갯벌은 대표적인 바지락 생산지다. 전국 생산량의 절반을 책임진다. 고창 갯벌이 오랜 역사와 명성을 자랑하는 이유다. 선운산 도립공원 북서쪽에 어촌체험마을이 두 곳 있다. 만돌마을과 하전마을. 하전마을은 2년간 쉬웠던 바지락 축제를 이달 6~7일 개최했다. 축제를 하루 앞둔 5일 권영주(63) 하전 어촌계장은 “지난 2년간 축제도 못 했고 체험객은 코로나 이전의 10~20% 수준에 불과했다”며 “축제는 이틀간 진행하지만 갯벌 체험은 10월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전 어촌체험마을에서 조개를 캐는 가족의 모습.

하전 어촌체험마을에서 조개를 캐는 가족의 모습.

오전 10시 갯벌이 드러나는 시간이 되자 관광객이 모여들었다. 어촌계 사무실에는 물때를 묻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체험객과 함께 트랙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해변에서 약 1㎞를 나가니 갯벌 체험장이 나왔다. 트랙터에서 내린 체험객은 갈퀴와 그물망을 받아들자마자 바쁘게 갯벌을 훑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신난 모습이었다. 동죽조개가 많았고 이따금 백합과 맛조개도 잡혔다. 체험객 이금계(66)씨는 “오랜만에 탁 트인 갯벌에 나오니 해방된 기분”이라며 “오늘 캔 조개로 칼국수와 전을 해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5월은 바지락이 가장 맛있을 때라니 미식 체험을 놓칠 수 없었다. 마을 식당에서 바지락탕·전·비빔밥을 먹었다. 산더미처럼 내준 바지락 양에 한 번 놀라고 통통하고 달큰한 맛에 또 한 번 놀랐다. 과연 봄 바지락은 치명적이었다.

여행정보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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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청보리밭축제는 이달 15일까지 열린다. 축제가 끝나도 학원농장에 들어가 보리밭을 볼 수 있다. 운곡습지를 둘러보려면 고인돌박물관에서 고인돌 유적지를 지나 호암산 자락으로 오르면 된다. 운곡습지 자연생태공원에서 출발해도 된다. 전문가와 함께하는 생태관광(무료), 등산 스틱을 이용해 걷는 ‘노르딕 워킹(1만5000원)’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6월에는 ‘반딧불이 풀벌레 야행(2만원)’을 진행한다. 2020년 개장한 유스호스텔(5만원부터)도 있다. 고창운곡습지생태관광협의회 홈페이지 참조. 하전마을 갯벌 체험은 어른 1만2000원, 어린이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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