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 푸틴의 야심, 우크라의 분노, 미국 지원…전쟁 장기화 불가피

중앙일보

입력 2022.05.1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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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박노벽

박노벽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달을 훌쩍 넘겼지만 끝날 기미는커녕 오히려 장기적인 소모전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인 5월 9일 국가 안보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러시아인 보호를 위해 서방의 하수인인 우크라이나 신나치들에 대한 선제공격을 한 것은 시의적절했고 유일한 방안이었다고 정당화했다.

알다시피 푸틴 대통령은 작년 7월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인과 “역사적, 정신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형성된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나, 독립 후 서방의 ‘반러시아 계획(Anti-Russian Project)’의 영향을 받아 분리돼 지배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크렘린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제국의 역사적 영토 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며 우크라이나의 중립화와 비무장화, 돈바스 내 두 개 공화국의 독립,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인정, 신나치 중앙정부 처벌, 나토 동진 중단 등을 요구하며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했다.

필자가 모스크바에서 만나보고 관찰했던 푸틴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에 있어서 자국의 국익과 국가 간 역학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현실주의자였다.  하지만 전쟁의 장기화, 12일 핀란드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선언 등 예상치 않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전략적 판단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현재 러시아군은 돈바스는 물론 남부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남부 지역은 동부에서 흑해 연안을 따라 오데사항에 이르는 지역으로, 역사적으로 18세기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받던 ‘뉴 러시아(New Russia)’라고 지칭되던 곳이다. 그간 러시아 내 ‘신유라시아주의자(Neo-Eurasianist)’와 극우 민족주의 세력들은 돈바스 반군 세력을 적극 지지하며 ‘뉴 러시아’ 지역 장악과 우크라이나 분할을 주장해 왔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 전쟁을 통해 이런 주장을 현실로 옮기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우크라이나 국민은 푸틴 대통령이 주장하는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과 이번 전쟁에서의 강력한 저항을 통해 옛소련식 영향권하에서 제한된 주권을 갖기보다는 유럽 지향의 독립국가를 지키려는 의지가 훨씬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의 무력 침공에 맞서 희생을 무릅쓰고 강력히 대응하는 원동력은 1991년 독립 이래 형성해온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시민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분쟁과 같은 러시아의 점령이나 간섭을 거부해 왔다. 여기에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보여준 민간인에 대한 잔학함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내 친러 성향 인사까지를 포함한 국민은 커다란 분노와 적대감을 갖게 됐다.

우크라 “러군 철수하거나 밀어낸 뒤 협상”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궁극적 목표가 완전한 영토 보전·회복이라고 천명한 것은 이런 국민적 요구를 대변한 것이다. 즉, 협상은 러시아가 군대를 자발적으로 철수하거나,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2월 24일 침공 이후 잠정 점령 지역에서 밀어냈을 때 시작될 것이며 난민 귀환,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기소 등을 협상 대상으로 열거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볼 땐 과거보다 협상 요구 수준이 대폭 올라간 것이다. 이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정치적으로 상충된 목표를 군사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맞서고 있기 때문에 이번 전쟁은 장기적인 소모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제질서 주도하려 우크라 지원

미국과 서방은 자유 민주주의 질서와 주권국가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서 각종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는 약 330억 달러 규모로 군사, 경제, 인도주의 지원 계획을 제시했고 미 하원은 이에 70억 달러를 추가해 상원의 승인을 대기 중이다. 또한 미 국방부는 지난 4월 말 나토를 포함한 40여 개국 국방관계관 회의를 소집해 지원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러시아가 “나토가 러시아를 상대로 대리전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결정한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미국이 러시아 연간 국방예산의 절반, 미국 국무부 연간 예산의 절반 이상이 되는 규모의 지원을 하는 데는 여러 의도가 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에서 ‘뉴 러시아’ 장악 방식의 영토 확장을 시도하는 크렘린의 야심을 좌절시키려는 것이다. 또,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폴란드 등 러시아 인접국들이 침공 이후 예상되는 안보 위협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권위주의 국가들과 연대해 서방에 도전해 왔던 러시아의 입지를 최대한 약화시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원활히 유지하고자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목적이다.

푸틴 대통령의 야심, 분노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강한 항전 의지, 미국 등 서방의 숨은 의도와 이에 따른 강력한 지원이 맞물리면서 이 비극적인 전쟁은 쉽게 막을 내리지 않을 수 있다.

박노벽
주러시아 대사와 주우크라이나 대사를 모두 지냈다. 1980년 외교부에 들어와 구주국 국장, 에너지자원대사,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협상 전담대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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