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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물가 쇼크’ 한국 시장 강타…원화값 급락 1288원, 주가도 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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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달러=1300원’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12일 코스피는 2550선으로 주저앉았다. 올해 들어 넉 달 반 만에 15%가량 급락하며 시가총액(시총)만 200조원 넘게 증발했다.

짙어지는 ‘S(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에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공포에 다시 불을 붙인 건 잦아들지 않은 미국발 물가 쇼크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날(1275.3원)보다 13.3원 하락한 달러당 1288.6원에 거래를 마쳤다(환율 상승). 종가 기준으로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가 이어졌던 2009년 7월 14일(1293.0원) 이후 약 1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장중 한때 원화값은 달러당 1290선도 뚫었다. 달러당 1291원까지 수직 낙하하며 1300원 선을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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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 저점 기준으로는 2020년 3월 19일(장중 저점 1296원) 이후 2년2개월 만에 처음이다. 원화가치 하락 속도도 빠르다. 원화값은 심리적 지지선으로 꼽던 1250원을 내준 지난달 26일(달러당 1250.8원) 이후 11거래일 만에 달러당 37.8원 하락했다.

원화가치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며 단기적으로 달러값이 1300원을 웃돌 수 있다는 전망에도 무게가 실린다. 박광남 미래에셋 연구원은 “글로벌 투자심리 위축으로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커지며 원화값 하락 압력이 커진다”며 “달러값이 1290원을 뚫고 일시적으로 폭등(오버슈팅)하면 1300원 선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Fed가 물가를 잡기 위해 고강도 긴축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면서 환율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며 “달러값은 이미 많이 올랐지만 더 뛸 여지가 있어 달러값 상단은 1310원까지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가 쇼크에 증시도 출렁였다. 12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63% 내린 2550.08에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 2020년 11월 19일 이후 1년 반 만에 최저 수준이다. 3000선에 근접했던 연초(3일 종가 2988.77)와 비교하면 넉 달 반 만에 14.7% 급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시가총액(2007조원)은 204조원 증발했다. 코스닥은 전날보다 3.77% 급락한 833.66으로 마감했다.

삼성전자 주가 6만4900원

주가 하락을 이끈 건 외국인과 기관의 ‘쌍끌이 매도’였다. 이날 외국인(2797억원)과 기관(1575억원)은 4372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개인투자자 홀로 3909억원을 순매수했으나 주가 하락을 막진 못했다. 증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거세지는 외국인의 ‘셀 코리아’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해 들어 12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11조1631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이 중 절반이 지난달 초부터 이달 12일까지 팔아치운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 가치가 뛰면서 한국 주식을 파는 외국인 투자자가 늘었다는 의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수가 추락하며 시총 상위 종목에는 일제히 파란불(하락)이 들어왔다. 시총 상위 10개 종목(우선주 포함) 중 기아차(0.23%)를 제외한 아홉 종목이 하락했다. 카카오(-5.5%)의 하락 폭이 가장 컸고, 삼성SDI(-3.42%)와 네이버(-3.23%) 등도 3% 이상 하락했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도 1.22% 내린 6만4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암호화폐와 증시의 동조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12일 오후 5시5분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386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24시간 전보다 4.4% 하락했다. 비트코인이 4000만원 선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해 7월 26일 이후 9개월 만이다.

금융시장을 흔든 가장 큰 불쏘시개는 ‘물가 쇼크’다. 지난 11일 미국 노동부는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년 전보다 8.3%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8.5%)에 이어 두 달 연속 8%대를 기록했다. 시장예상치(8.1%)를 웃돌았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잦아들지 않자 Fed가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시카고 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따르면 Fed가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연 3~3.25% 수준으로 올릴 확률은 10%다. 한 달 전만 해도 1.68%에 불과했다.

기준금리 상단이 3%를 넘어서려면 올해 남은 다섯 번의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적어도 한 번은 자이언트 스텝을 밟거나 세 차례 빅스텝(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밟아야 한다. 긴축의 강도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의미다.

긴축 공포에 미국 증시도 휘청

인플레가 야기할 미국의 고강도 긴축 공포에 미국 증시도 휘청였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지수는 전날보다 1.02% 하락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3.18%)는 3% 이상 급락했다. 시장 금리에 민감한 기술주에 투자자의 ‘팔자’가 집중되며 애플(-5.2%)과 마이크로소프트(-3.3%) 등의 주가가 급락한 영향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내외 금융시장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물가 상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욱 움츠러들고 있다. 국제 유가 등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경기가 움츠러든 상황에서 Fed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과도하게 긴축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가 물가도 잡지 못한 채 경기 회복세에만 찬물을 끼얹을 수 있어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IB) 도이체방크는 최근 경기 전망 보고서에서 “Fed가 물가상승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연 5~6% 선까지 끌어올리며 긴축 페달을 세게 밟을 가능성이 크다”며 “(Fed의 금리 인상이) 내년 하반기부터 미국에 심각한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케네스 로고프 미 하버드대 교수도 “Fed의 통화정책 긴축이 미국 경제를 침체로 빠뜨릴 수 있다”며 “미국 경기 침체는 금융시장의 혼란을 일으키고, 그에 따라 신흥국도 큰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계적으로 물가를 잡기 위해 고강도 긴축에 나서는 과정에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게 사실”이라며 “특히 대외변수에 영향을 크게 받는 국내 금융시장은 당분간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는 적어도 다음 달 FOMC가 열리기 전까지는 시장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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