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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살려내. 진실을 말해 살인자야”...두 소녀 투신한 날 열린 '청주여중생 사건' 재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청주 여중생 사건 항소심 결심일인 12일 충북 청주시 성안길에서 가해자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추모식이 열렸다. 최종권 기자

청주 여중생 사건 항소심 결심일인 12일 충북 청주시 성안길에서 가해자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추모식이 열렸다. 최종권 기자

‘청주 여중생 사건’ 가해자에 무기징역 구형 

12일 오후 대전고법 청주재판부 223호 법정. ‘청주 여중생’ 사건 항소심 결심 공판에 참석한 A양의 어머니 이모(47)씨가 발언권을 얻은 뒤 오열했다.

이씨는 생전 딸이 작성한 유서를 읽은 뒤 “내 딸 살려내. 죽을 때까지 당신을 증오할 거야”라고 피고인을 향해 분노했다. 이어 “진실을 말해 살인자야. 재판장님, 피고인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할 수 있도록 엄중한 처벌을 부탁한다”고 외쳤다.

이 사건은 친구 사이인 A양과 B양이 잇따라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한 뒤 지난해 5월 12일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알려졌다. 가해자는 B양의 의붓아버지 C씨(57)였다. 재판부가 두 여중생의 기일을 결심일로 정하면서, A양 부모는 납골당에 헌화한 뒤 재판에 참석했다.

청주 여중생 사건 항소심 결심일인 12일 충북 청주시 성안길에서 가해자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추모식이 열렸다. 최종권 기자

청주 여중생 사건 항소심 결심일인 12일 충북 청주시 성안길에서 가해자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추모식이 열렸다. 최종권 기자

A양 아버지 “딸 지키지 못한 부모 벌해달라” 

이날 검찰은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C씨는 1심에서 강간치상 혐의 등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1심에서 입증 부족으로 무죄가 난 B양의 친족 강간 혐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펴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B양이 친구와 나눈 대화, 정신과 의사 면담 기록, 자해 기록 등을 증거로 내세웠다.

항소심 선고 전 마지막 발언권을 얻은 A양 유족도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요구했다. A양의 아버지 박모(50)씨는 “딸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저에게 벌을 내려달라”며 울먹였다.

이어 “딸이 성폭력 피해를 본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당연히 수사가 제대로 진행된다는 멍청하고 순진한 생각을 했다”며 “아이들이 하늘나라에서라도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피고인이 영원히 세상과 분리될 수 있게 무기징역을 선고해 달라”고 호소했다.

2020년 A양이 가족과 함께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A양 유족]

2020년 A양이 가족과 함께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A양 유족]

계부 “법정 최고형 무기징역 선고” 요청 

C씨는 피고인석에 앉아 검찰 구형과 A양 유족의 엄중 처벌 요구를 들었다. C씨는 마지막 법정 진술에서 “저에게 법정 최고형을 내려달라. 두 아이 부모에게 위로가 될 수 없지만, 명복을 빈다”고 했다.

A양 유족은 결심일 하루 전까지 “C씨의 계획범죄와 성폭행 증거인멸 행위가 의심된다”며 증거를 모아 검찰에 제출했다. 박씨는 “사건의 진실을 알수록 유족은 더 큰 좌절에 빠지고 있다”며 “선고까지 계획범죄 등 혐의를 반영한 공소장 변경과 이에 합당한 선고가 내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A양 유족은 가해자인 계부와 동거 했던 B양이 범행 현장 진술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점, 가해자의 증거인멸 시도로 인해 딸이 정신적 고통을 겪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사건 항소심 선고일은 다음 달 9일 열린다.

아래는 A양 유족이 그동안 법원에 낸 의견서와 휴대전화 메시지,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계부와 함께 살았던 B양의 심경을 지난해 5월 12일 시점에 맞춰 편지글로 재구성했다. A양은 지난해 1월 17일, B양은 2020년 가을께 C씨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생전에 진술했다.

“계부냐, 친구냐” 1년 전 갈림길 섰던 의붓딸

A양과 B양이 생전에 지난해 5월 9일 마지막으로 함께 찍은 사진. [사진 A양]

A양과 B양이 생전에 지난해 5월 9일 마지막으로 함께 찍은 사진. [사진 A양]

내 마지막 △△에게

나의 마지막 △△야. 휴대전화 답장이 없는 걸 보니 유서를 쓰다가 잠들었구나. 벌써 새벽 2시40분이야. 너에게 성폭행 사실을 들은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어. 새아빠한테 안 좋은 일 당한 그 날 얘기 말이야.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스트레스 때문에 요즘에 뒷머리가 빠진 너를 보면서 미안해.

닷새 전에 우리 만나서 사진도 찍고 교환했는데…. 어쩌면 이게 너와의 마지막 사진이 나의 끝 사진이 될 거 같다.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아. 1월 2일에 너한테 문자 보냈잖아. 새아빠가 너 꼭 집어서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했던 거. 그리고 2주 뒤에 우리 집 놀러 왔다가 갑자기 수원에서 내려온 우리 아빠랑 맥주 마시고…. 그 이후 들은 얘기는 더 말하지 않을게.

그때 아빠가 너를 부르라고 했어도 부르지 않았다면 너는 여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텐데. 너를 부르지 말걸. 너무 후회돼.

나도 힘들었어. 그날 새벽 내 방에서 자고 있다가 그렇게 됐잖아. 너한테는 내가 그때 자고 있었다고 했는데. 너는 진실을 말해 달라고 했지. 새아빠는 경찰에서 뭐라고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나도 2번이나 조사받았는데 너한테 진실을 밝히지 못했어. 미안해.

그 날 얘기. 너한테 직접 듣기 전까지 이상하긴 했어. 학교에 경찰관하고 시청 공무원이 찾아와서 이것저것 물었거든(2월10일). 그날 △△이 네가 질염 걸렸다는 말도 했고. ‘그거 걸리기 힘든데’라고 내가 궁금해했잖아. 너가 말하는 의미를 당시에도 알고는 있었단다. 그러나 너에게 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없어. 미안해.

새아빠는 2월 19일인가 경찰 조사를 받았던 거 같아. 아빠가 내 방 줄자로 재는 사진 찍어달라고 해서 내가 촬영도 해줬는데. 이게 증거 수집이란 건가. 너가 안 좋은 일 당했다는 직감이 확 들긴 했지. 아빠랑 같이 살다 보니 보고 듣는 게 많아. 그쯤에 새아빠가 변호사 사무실도 기웃거렸고.

그리고 이건 처음 말하는 건데. 1월 17일에 너가 점심 먹고 우리 집 나간 다음 내가 전화했잖아. “술 마시고 너 구토한 거 기억나냐”고. 그래서 아빠가 그거 치우려고 내 방에 들어왔다고 말했던 거. 사실 그때 너랑 통화한 거 녹음해뒀어. 평소에 녹취는 잘 안 하는 편인데…. 이유는 비밀이야.

네가 처음으로 아빠한테 성폭행당한 거 나한테 말한 날(2월 27일)이 기억나. 나도 짐작은 했었어. 나도 새아빠한테 3~4달 전에 비슷한 일 당했다고 그때 내가 얘기했잖아. ‘언젠가 말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터졌네’라고 무덤덤하게 말이야. 그렇게 말해놓고, 나 그날 너무 힘들어서 손목에 상처 내고,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았어.

아 그리고, 내가 말 바꾼 것도 있었지. 하루 뒤에 너한테 새아빠가 나에게 한 나쁜 일을 “꿈인 거 같아”라고 문자 보낸 거 말이야. 그거는 내가 캡처해서, 너 몰래 새아빠한테 보내줬어(3월 2일). 며칠 있다가는 새아빠가 너랑 만나서 대화하는 거(3월 13일) 녹음하라고 했어. 그때 우리 특별한 얘기는 안 했는데 별말 안 한 거 잘했다고 생각했어. 둘도 없는 친구끼리 왜 이리 비밀이 많은지….

네가 내 걱정해줘서 고마워. 세상에서 나를 그렇게 걱정해 준 사람은 너가 유일해. 성폭력 트라우마 고치라고 정신과도 소개시켜줬잖아. 사실은 새아빠가 나 성폭행한 거 너한테 털어놓기 전날(2월 26일). 정신과 가서 다 얘기했어. 아빠가 나 성폭행했었고, 아빠가 화장실 가면 무섭다고. 그런데 경찰에서는 그 일도 “꿈인 것 같다”고 얘기했어(3월 11일). 그 사이에 새아빠랑 집에 같이 살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상상에 맡길게.

△△아 나 너무 힘들다. 너한테 꼭 도움이 되는 말을 하고 싶지만, 나도 그럴 상황이 못돼. 구속 영장도 2번이나 처리 안 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4월엔 ‘꼭 새아빠 잘못을 얘기해야지’라고 조사받으러 어떤 센터에 갔는데, 엄마가 붙잡고 나오는 바람에 제대로 말 못했어.

나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어. 아이를 낳고 엄마도 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마음이 아파. 하지만 네가 있어서 행복했어. 고마워. △△야 나 혼자 하늘로 보내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다는 너의 마음 고마워…. ‘내 마지막 △△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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