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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0' 이라던 北 "오미크론 나왔다"…이례적 공개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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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에서 채집한 검체가 오미크론 변이 비루스와 일치했다."

12일 북한이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지 2년여 만에 처음으로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국가 최중대 비상사건"이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대책 회의 내용을 대내외에 공개했는데, 통제와 봉쇄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으로 국제사회 지원을 요청할지 주목된다.

북한이 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 확진자 발생에 따라 12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당 중앙위 제8기 제8차 정치국 회의를 소집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 확진자 발생에 따라 12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당 중앙위 제8기 제8차 정치국 회의를 소집했다. 노동신문. 뉴스1.

'최대 방역 비상 체계' 어떻게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당 중앙위 8기 8차 정치국 회의 개최 사실을 전하며 "5월 8일 수도의 어느 한 단체의 유열자들에게서 채집한 검체에 대한 엄격한 유전자 배열 분석 결과를 심의하고 최근에 세계적으로 급속히 전파되고 있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BA.2와 일치한다고 결론하였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환자 신상이나 증상 등은 밝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회의에선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 수준'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전국의 모든 시, 군들에서 자기 지역을 철저히 봉쇄하고 사업단위, 생산단위, 생활단위별로 격페한 상태에서 사업과 생산 활동을 조직하여 악성 비루스의 전파 공간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최대 수준에는 지역별 이동 금지와 다중이용시설 이용 제한, 외출 금지 등 일부 국가들이 취했던 '락다운'과 유사한 조치가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북한은 2020년 8월 비상방역법을 공포하고 감염병의 위험성과 전파 속도에 따라 1급·특급·초특급으로 분류했는데, 이번에는 초특급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초특급 단계에서는 지상, 해상, 공중을 이용한 이동이 금지되고, 모임과 학업도 중지될 수 있다. 국내 지역을 완전히 봉쇄하는 목적이기 때문에 국경도 막힌다.

북한은 2020년 12월에 방역 단계를 '초특급'으로 격상한 바 있으며, 코로나19 감염 의심 탈북민이 개성을 통해 월북한 같은해 7월에도 국가방역체계를 '최대비상체제'로 전환하고 개성 일대를 봉쇄한 적이 있다.

북한이 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 확진자 발생에 따라 12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당 중앙위 제8기 제8차 정치국 회의를 소집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 확진자 발생에 따라 12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당 중앙위 제8기 제8차 정치국 회의를 소집했다. 노동신문. 뉴스1.

이로써 지난해 말 '선진 위주 방역'으로의 전환을 선포했던 북한은다시 '통제 위주 방역'으로 사실상 돌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김일성 생일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행사에 주민 수백 만 명이 동원됐지만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노 마스크'로 방역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이 나왔는데, 이날 회의에선 김 위원장을 제외한 참석자 전원이 마스크를 썼다. 김 위원장도 처음으로 마스크를 썼다가 회의 중에는 벗고 앞에 내려놓았다. 관영 매체에서 김 위원장이 공식 석상에서 마스크를 쓴 모습이 보도된 건 처음이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은 그간 방역 체계를 나름대로 정비했고 최근에는 열병식 등 큰 행사를 다 치렀으니, 일단 수도권 봉쇄와 도시 간 이동 제한 등 조치부터 속속 시작할 것"이라며 "다만 백신은 물론, 검진 키트와 치료 약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한의 보건 실태를 볼 때 수도권 등 내륙을 중심으로 확산 시 상당한 파급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12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 제8기 제8차 정치국 회의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TV. 연합뉴스.

12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 제8기 제8차 정치국 회의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대내외 신속 공개 이유는

북한은 지금까지 코로나 19 환자가 나온 적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확진자 전무' 주장에 대해선 그간 의문이 제기돼 왔지만, 이날 발병 사실을 신속히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통상 하루의 시차를 두고 회의 사실을 보도해온 것과 달리, 이날 오미크론 관련 회의는 개최 당일 대외용 조선중앙통신과 대내용 노동신문을 통해 즉시 보도됐다.

우선 주민들에게 발병 사실을 신속하게 알려 방역에 대한 내부 경각심을 높이는 게 1차 목적으로 보인다. 또 관련 내용을 대외에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북한 내 코로나 19 현황에 대한 그간의 의구심을 불식시키려는 목적이라는 해석도 있다. 오미크론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자국 방역 체계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관련 기술이나 장비・약품 등을 도입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김 위원장은 "과학적이며 집중적인 검사와 치료 전투를 시급히 조직 전개해야 한다"며 "당과 정부가 지금과 같은 비상시를 예견하여 비축해 놓은 의료품예비를 동원하기 위한 조치를 가동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외부 지원 없이 자력만으로 김 위원장이 강조한 '치료 전투'가 제대로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가뜩이나 보건ㆍ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북한은 코로나 19 이후 국경 봉쇄로 무역까지 막히며 필수적인 의료 물자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은 지금까지 '코백스(COVAX)' 등 국제사회의 백신 지원을 거부했고, 우방인 중국ㆍ러시아산 백신도 거절했다. 백신 접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오미크론의 강한 전파력을 고려할 때 북한이 외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주영 북한 공사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평양에 외출 금지령을 내리고, '6.25 전쟁 같은 방역'을 선포한 뒤, 오미크론 확진자 사실을 공개하는 최근 북한의 일련의 행보는 전략적으로 타이밍을 계산해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틀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에게는 대단히 좋은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12일 세계보건기구(WHO) 홈페이지에 따르면 코로나19 내 북한의 확진자, 사망자 현황은 0명으로 보고됐다. WHO 캡처.

12일 세계보건기구(WHO) 홈페이지에 따르면 코로나19 내 북한의 확진자, 사망자 현황은 0명으로 보고됐다. WHO 캡처.

도발 '마이 웨이'는 계속되나

이처럼 북한의 전례 없는 내부 비상 상황이 향후 '도발 스케줄'에 영향을 줄지도 주목된다. 한・미 당국은 북한이 오는 21일 한・미 정상회담 전후로 7차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일단 일부 지역에서만 오미크론 확진자가 제한적으로 발생하는 선에서 상황이 마무리된다면 무력 시위는 예정된 수순으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도 "국가 방위의 전초선을 더욱 튼튼히 다지고 방역대전의 승리를 무력으로 담보해야 한다. 경계근무를 더욱 강화하며 국방에서 안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강조했다. 방역과 별도로 무력 과시는 계속될 여지가 있다.

실제 북한은 이날 오후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일본 방위성은 이를 탄도미사일로 추정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첫 미사일 도발이다. 북한으로서는 계획한 대로 '마이 웨이'를 계속 밀고 나가는 게 대외적으로 오미크론 발병 정도는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방법이라는 계산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코로나19가 대대적으로 확산해 통제 가능한 수준을 벗어날 경우에는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최대 비상 방역 체계로 전환을 선포하고 주민 통제를 실시하면서, 동시에 핵실험을 진행하는 건 대내적으로 설득력을 갖기 힘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앞으로 몇 주가 김 위원장 위기 관리 능력의 최대 시험대"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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