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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 결제도 직접 못하는 신세됐다…평범한 러시아인의 고통

중앙일보

입력

비자·마스터 카드 결제가 막혀 유럽에 사는 친구를 통해 넷플릭스를 결제하고, 매일 식료품 가격이 올라 한 달 생활비가 두 배로 껑충 뛰어올랐다. 평범한 러시아인이 오늘을 사는 모습이다.

러시아 여성이 지난달 6일 모스크바의 한 수퍼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 여성이 지난달 6일 모스크바의 한 수퍼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 경제 붕괴 막았지만 물가상승률 20년 만에 최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경제 제재로부터 잘 버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서민들의 삶은 충격을 받았다고 BBC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제금융연구소 엘리나 리바코바 수석 연구원은 "러시아가 국가 부도를 피하고, 루블화 가치를 회복시키는 등 피상적인 지표는 좋아 보이지만 실생활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해 1분기 경상수지 흑자가 580억 달러(약 74조원)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루블화 가치도 (전쟁 전인) 2월 초 수준을 회복했다"면서 "서방의 ‘경제 전격전(economic blitzkrieg)’은 실패로 끝났다"고 했다.

달러당 루블화 환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달러당 루블화 환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푸틴 대통령의 말대로 외형적인 경제 지표는 선방 중이다. 서방의 제재가 시작된 지난 3월 루블화 가치는 달러당 139루블까지 폭락했지만, 11일 기준 69루블대를 기록 중이다. 전쟁 전엔 80루블 안팎이었다. 외환 부족으로 인한 국가부도 위기도 아직은 오지 않았다. 강력한 자본통제 조치를 하고 있으며, 유럽의 가스·석유 구매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물가는 계속 치솟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17.73%(4월말 기준)로 2002년 이후 20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미국(8.3%, 4월 기준)·한국(4.8%, 4월 기준)보다 높다.

고통받는 평범한 러시아인, 생활비 2배로 껑충 

러시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수도 모스크바에서 사는 30대 은행원 올가는 평소 여가생활을 누렸지만, 전쟁 이후 팍팍해졌다. 그는 "터키로 여행을 계획했는데, 비행기 비용만 5만5000루블(약 101만원)이었다"고 말했다. 전쟁 전에는 1만5000루블(28만원)이었는데 3배 넘게 올랐다. 비자·마스터카드 결제가 막혀 넷플릭스(영화·드라마), 스포티파이(음악)는 유럽 친구에게 부탁해 지불하고 이용하고 있다. 넷플릭스 등은 러시아에서 서비스를 중단했지만 러시아인은 VPN(가상 사설망)으로 이용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500㎞ 떨어진 보로네시에 사는 70대 주부 류드밀라는 너무 오른 생필품 가격에 장 보기가 겁난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시장에 가는데 갈 때마다 우유, 토마토 등이 5~10루블씩 오르고 있다"고 했다.

소득 수준이 떨어지는 시베리아 지역도 직격탄을 맞았다. 시베리아 알타이 지방의 룹촙스크에 사는 30대 안마사 드미트리는 소시지·빵 등 음식을 사고 사우나에 가는 등 하루에 300루블(약 5500원)이면 충분했지만, "똑같은 생활을 하는데 요즘엔 2배 넘게 든다"고 했다. 한 달 생활비가 9000루블(약 17만원)에서 1만8000루블(약 33만원)로 뛴 셈이다.

모스크바 쇼핑몰에서 문을 닫은 H&M, 자라 의류 매장 앞으로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모스크바 쇼핑몰에서 문을 닫은 H&M, 자라 의류 매장 앞으로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경제 전문가들은 러시아 국민의 생활비 고통은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며 일자리는 줄어들고 물가는 더 오를 전망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외국 기업이 대거 철수하며, 모스크바에서만 약 20만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케아·맥도날드 등 일부 기업은 운영 중단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 급여는 지급한다고 했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이런 지원도 서서히 끊길 것으로 보인다.

러 중앙은행 금리 인하하지만, 생활비 문제 암울 

먹고 사는 문제에 적신호가 켜지자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달 29일 기준금리를 연 14%로 인하했다. 앞서 지난 2월말 러시아는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파격 인상한 후 루블화가 안정되자 내부 경제를 챙기기 위해 지난달 8일 17%로 인하했고, 다시 3%포인트 인하했다. 로이터는 "금리 인하 후 심각한 물가 압력이 완화됐다. 상황을 보고 올해 추가로 인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러시아 내부 경제 전망은 암울하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연간 물가상승률이 18%~23%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0일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강력한 타격을 주고 있다"며 "러시아의 물가상승률은 올해 20%에 달할 것이고 경제는 10~15% 이상 위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장도 "서방 제재가 이제 실물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2~3분기에 진짜 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블루베이 자산관리회사의 경제 전문가 티모시 애쉬는 "러시아인들은 어려운 시절을 경험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좋은 시절을 경험한 러시아인들이 다시 그 시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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