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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홍준의 문화의 창

망우리 별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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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망우리 공동묘지가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라 지난 4월 1일 ‘망우역사문화공간’이라는 멋진 현대식 건물(경희대 정재헌 교수 설계)의 비지팅 하우스를 개관하였다. 이 묘역에 있는 근현대 역사문화 인물들 묘소의 안내판을 정비하였으며 이를 둘러보는 ‘인문학 사잇길’도 열었다. 이제 우리는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일주도로를 거닐며 선현들의 넋을 기릴 수 있게 되었다.

망우리 공동묘지라고 하면 으레껏 옛날부터 있어 온 것이려니 생각하고 있지만 망우산(높이 282m)에 공동묘지가 개장된 것은 정확하게 1933년 6월 10일이다. 전체 75만 평 규모에 묘역만 55만 평이다. 개장 이래 50년 간 약 2만8000 기의 무덤이 조성되었고 1973년에는 더 이상 빈 공간이 없어 폐장되었다.

망우리 공동묘지는 1933년 개장
73년 폐장까지 약 2만8000 무덤
유관순·한용운·방정환·이중섭 등
근현대 역사문화 인물 약 50기

이후 망우리 공동묘지에는 새 무덤은 조성되지 않았고 화장과 이장만 허락되어 현재 약 7천 기의 무덤이 남아 있다. 그렇게 50년이 지나고 보니 민둥산에 무덤만 가득하던 망우리 공동묘지의 생태가 복원되어 소나무, 참나무, 산벚나무, 진달래, 개나리가 울창한 숲에 무덤들이 간간히 보이는 묘원공원의 모습으로 변했다. 5.3㎞에 달하는 일주 순환도로의 산마루 길에서는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검단산 줄기의 한남정맥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있는 소파 방정환의 무덤. [사진 유홍준]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있는 소파 방정환의 무덤. [사진 유홍준]

여기에 모셔져 있는 근현대 역사문화 인물 50여 분의 면면을 보면 어마어마하다. 일제강점기의 문화 인물로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송촌 지석영, 소파 방정환, 호암 문일평, 석남 송석하 등이 있고, 독립운동가로는 유관순, 유상규 등 애국훈장을 받은 분만 열 분이나 있다. 정치인으로는 설산 장덕수, 죽산 조봉암, 국회부의장 이영준 등이 있고 문학인으로는 박인환, 계용묵, 김상용 등이 있다. 미술인으로는 이중섭, 이인성, 권진규 등이 있고 가수 차중락의 묘도 있다. 무덤의 형식은 일정하지만 호암 문일평 묘에는 문기가 흐르고, 소파 방정환의 묘는 고인돌 형식으로 정겹기만 하다.

망우리 공동묘지가 일제감정기에 조성된 것은 1930년대 들어와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자 주택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미아리 공동묘지를 비롯하여 서울 근교의 이태원, 아현동, 금호동, 노고산 등의 공동묘지를 이장시키고자 마련한 것이었다. 일제는 이렇게 개발한 택지를 분양하여 막대한 재정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기존 공동묘지의 무덤을 이장할 때 연고가 없는 무덤은 화장한 뒤 망우리에 합동묘를 만들었다. 이때 이태원 공동묘지에는 2만8000 기의 무연고 묘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안타깝게도 유관순의 묘도 들어 있었다.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우네장터 만세운동 때 사망하였고 유관순에게는 당연히 후손이 없었기 때문이다.

망우리 공동묘지는 폐장 4년 뒤인 1977년에 ‘망우묘지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역사문화공원으로 재정비하는 노력을 꾸준히 보여 왔다. 1997년에는 독립운동가와 문화예술인 15인의 무덤 가까이에 어록·연보비가 세워졌고 1998년에는 이름을 ‘망우리 공원’으로 바꾸었다.

2006년 3월에는 문화재위원회 근대분과 이만열 위원장을 비롯한 8명의 문화재위원이 망우리 공동묘지의 문화재 등재를 위한 현장 조사를 시행하였으며 2012년에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이 선정한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2015년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문화재 지정은 2012년에 모든 조건이 충족된 만해 한용운 묘소가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519호로 지정되었고 2017년에는 위창 오세창 등 독립유공자로 애국훈장이 수여된 여덟 분의 묘가 등록문화재 제 691호(1-8)로 일괄 지정되었다. 이에 공원관리 주체를 서울시설공단에서 지자체로 옮겨져 중랑구에 망우리공원과가 신설되면서 본격적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하게 되어 망우역사문화공간이 준공된 것이다.

망우리 공동묘지 안 역사인물 묘소의 실태는 김영식 작가가 개인적으로 30여 년 조사하여 2008년에 펴낸 『그와 나 사이를 걷다』(개정판, 호메로스)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망우역사문화공간에서 탐방객에게 나누어주는 팜플렛에도 공원의 지도와 함께 친절한 해설이 들어 있다.

우리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프랑스 파리에 있는 페르-라셰즈 공동묘지에서 발자크, 에디트 피아프를 만나고, 비엔나 도나우 강변 무명묘역에서 베토벤, 브람스를 만나고, 오베르-쉬르-우아즈 공동묘지에서 반 고흐를 만나듯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유관순, 이중섭, 박인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풍습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것이 죽음의 문화라는데 지난 20~30년 사이 우리의 장례풍습이 크게 바뀌었다. 음습한 영안실이 말끔한 장례식장으로 변하였고 공동묘지는 추모공원으로 바뀌었다. 세상이 그렇게 개명한 것이다.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바뀐 것도 이런 사회발전의 하나이다. 지금 신록이 우거진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많은 분들이 찾아가 산책을 즐기며 역사의 향기를 흠뻑 느끼기 바라는 마음이다.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