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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퍼스펙티브

입법폭주 방지엔 양원제가 근원처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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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윤석열 정부지만 국회는 민주당 천하 #민주당 입법폭주는 '다수의 폭정' #'폭정'에 맞서겠다는 윤석열의 '자유' #입법폭주 막는 입법권력분산 필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국회는 여전히 민주당이 168석으로 국민의힘 109석보다 압도적이다. 검수완박법 통과를 위해 꼼수탈당한 민형배 의원 등 무소속과 진보성향 군소야당까지 감안하면 영향력은 전체의석의 60%(180석)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김성룡 기자/ 2022.05.10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김성룡 기자/ 2022.05.10

민주당 입법폭주, 행정부와 마찰 커질듯

따라서 민주당의 입법 폭주는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여전히 가능하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행사가 가능하기에 일방통행은 어렵다. 하지만 민주당과 행정부와의 마찰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검수완박법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민주당의 각종 꼼수는 국회선진화법을 완전히 무력화했다.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였던 한덕수 총리후보에 대한 임명동의를 거부하고 있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국민의힘에 넘겨주겠다던 약속도 번복하려고 한다. 이전의 여소야대 상황보다 심각하다.

이런 다수당의 폭주는 전형적인 ‘다수의 폭정(Tyranny of Majority)’이다. ‘다수의 지배’를 뜻하는 민주주의가 빠지기 쉬운 비민주적 함정이다. 다수의석 민주당은 입법부내 소수정당(국민의힘)을 비토할뿐 아니라 행정부와 대립하고, 급기야는 소수 진영논리에 매몰돼 다수 국민의 뜻과도 무관하게 움직이게 된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프랑스 귀족출신 정치인 학자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프랑스 귀족출신 정치인 학자 토크빌.

토크빌의 '민주독재'와 윤석열의 '자유'

일찌감치 ‘다수의 폭정’을 경고한 사람은 토크빌(프랑스 철학자 정치인)이다. 토크빌의 경고는 경험에서 나왔다. 1805년생 토크빌은 1789년 시작된 프랑스혁명의 전개과정을 직접 경험했다. 토크빌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대중의 무지와 열정에 경악했다. 무지하지만 열정으로 가득찬 대중은 집단적 평등에 폭력적으로 매몰된다. 이런 대중의 독재는 결국 모두의 자유를 앗아가는 어리석음을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토크빌은 이런 아이러니를‘민주 독재(Democratic Despotism)’라 불렀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반 지성주의’는 보수주의자들이 ‘민주 독재’를 경고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다.) 무지한 대중이 민주주의라고 착각하고 집착하는 ‘평등’ 대신 보수 지식인들은 ‘자유’에 주목한다. (윤석열의 취임사는 이런 맥락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언급했지만 평등은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독재에 굴복 않겠다는 자유주의 선언 같다.)

토크빌이 프랑스혁명의 민주독재에 희생된 자유를 찾은 곳이 미국이다. 1831년 토크빌은 ‘진정한 민주주의 대안’을 찾아 미국을 찾았다. 당시 유럽지성인들은 1776년 독립전쟁으로 탄생한 미국을 자유민주주의 성공모델로 주목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만들어낸 정치시스템이 자유민주주의 완결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건국과정을‘독립전쟁’을 넘어 ‘미국혁명’이라 불렀다.

‘미국 혁명은 독립을 향한 막연한 열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유를 사랑하는 성숙함 가운데서 일어났다.’(토크빌)

미국 자유민주주의를 만든 정치시스템은 철저한 권력분산, 정교한 공화제다. 권력을 분산하고 권력끼리 상호견제하게 만듦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고대 그리스ㆍ로마의 공화제부터 중세 베네치와ㆍ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시스템, 영국의 입헌군주제까지 모두 연구한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의 핵심참고서가 ‘오세아나 공화국’(저자 제임스 해링턴)이다. 그 첫머리가 상ㆍ하 양원제의 필요성에 대한 비유다.

‘(빵을 나누는 경우..나누는 사람과 먼저 선택하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 의회가 하나뿐인 공화국은 나눈 사람이 선택까지 한다. 따라서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선택권을 가진 또다른 의회를 만들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빵을) 나누는 권력을 가진 상원이 공화국의 지혜를 모은 기구라면, 선택권을 가진 하원은 공화국의 이해관계가 집결된 기구다. 빵을 공평하게 둘로 나누는 것은 상원의 토론이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하원의 결정이다.’

입법폭주는 입법권력 분산으로 막는다

양원제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입법부가 3부(입법ㆍ행정ㆍ사법부)중에서 ‘제1부(First Branch)’이기 때문이다. 공화정체에서 주권자의 뜻을 가장 잘 반영하는 대의기관이 입법부며, 그 권한 역시 최강이다. 반대로 타락하면 ‘다수의 폭정’이 벌어지는 위험한 곳이다.

그래서 미국의 입법부는 양원제다. 양원제의 기본취지는 ‘입법권력의 분산’이다. 몽테스키외의 ‘3권(입법ㆍ사법ㆍ행정권)분립’이 기본적인 권력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권력의 남용을 충분히 막을 수 없다. 특히 입법권은 막강하기에 입법부 내에서 상ㆍ하 양원으로 추가 분리되어야 했다.

상원과 하원은 이런 취지에 맞춰 상호견제하게 만들어졌다. 모든 법률은 상하원을 모두 거쳐야 한다. 상원과 하원이 서로 상대방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가진 셈이다. 물론 3권분립에 따라 대통령도 거부권이 있다.

양원은 권한도 적절히 나누었다. 하원은 재정을, 상원은 외교를 맡는다. 전쟁과 같은 중대사안은 양원이 동시에 결정권을 가진다.  ‘대통령 탄핵’의 경우 기소는 하원에서 하지만 재판은 상원이 한다. 민의를 직접 대변하는 하원의원은 임기 2년으로 자주 뽑으며, 상원의원은 임기 6년을 보장한다.

양원제의 뿌리는 그리스ㆍ로마 공화정이다.  2500년전에도  ‘다수의 폭정’이 문제였다. 그 때도 해법은 권력의 분산이었다.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제도에도 이런 철학이 담겼다.

원조는 그리스 아테네다. 중심은 민회(국회)다. 20세 이상 남성(노예 제외)이 참석한다. 매년 40회 가량 열리는 민회는 매번 의장을 추첨으로 뽑는다. 30세 이상이면 누구나 추첨으로 공직을 맡으며, 거의 모든 공직의 임기는 1년 이하다. 추첨은 특정세력의 영향력을 배제하기위한 장치다. 임기를 짧게하고 연임을 막은 것 역시 권력자의 탄생을 막자는 취지다.

이런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특정인에게 권력이 쏠릴 경우에 대비해 ‘도편(도자기 파편)추방’이란 제도까지 만들었다. 민회가 연초 도편추방 실시여부를 결정하면 3월에 투표한다. 문제의 권력자 이름을 도편에 적어내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을 10년간 추방한다. 권력투쟁과 선전선동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그렇게 남용되었지만..아테네인들은 권력집중을 막기위해 이런 극약처방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작은 도시국가의 원시적 공화제라면, 로마 공화제는 훨신 세련되고 정제된 형태다. 미국의 양원제는 로마 공화정을 거의 그대로 빼닮았다.

하원은 민회, 상원은 원로원이다. 로마는 정복국가다. 그래서 재산과 무기를 소유한 15세 이상 남자만 민회에 참여했다. 민회는 행정책임자(집정관)와 고위공직자를 선출하고 법을 만들며, 행정부(집정관)나 원로원이 만든 법안을 의결해 확정한다.

상원인 원로원은 민회를 견제한다. 민회에서 뽑은 공직자를 인준하고, 민회를 통과한 법을 비준한다. 군대의 신설과 편성을 포함관 외교안보 관련은 원로원 소관이다.

1948년 5월 31일 서울 세종로 중앙청(철거된 구 일본총독부 건물) 회의실에서 이승만 당시 의장(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제헌국회 개원사를 하고 있다. 총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은 한 달 반 뒤인 7월 17일 제헌 헌법을 공포했다. 이승만의 뜻에 따라 헌법초안의 양원제가 단원제로 바뀌었다.

1948년 5월 31일 서울 세종로 중앙청(철거된 구 일본총독부 건물) 회의실에서 이승만 당시 의장(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제헌국회 개원사를 하고 있다. 총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은 한 달 반 뒤인 7월 17일 제헌 헌법을 공포했다. 이승만의 뜻에 따라 헌법초안의 양원제가 단원제로 바뀌었다.

대한민국 헌법 최초안도 양원제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제헌헌법의 초안은 원래 양원제였다. 당시 제헌의회 의장인 이승만이 ‘내각제’를 ‘대통령중심제’로 바꾸면서 ‘양원제’도 ‘단원제’로 바뀌었다. ‘미국식 대통령제’를 주장했던 이승만은 헌법기초위원회 심의과정에서 ‘이 문제(양원제)에 대한 토의로 시일을 지연하는 것은 정부수립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며 토론제의를 일축했다.

이승만은 자신이 초대 대통령이 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권한강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국회의 신속한 입법활동을 선택한 것이다. 이승만은 자신의 뜻대로 강력한 대통령이 되었고, 국회는 거수기로 전락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독재가 됐다.

이후 ‘군부독재’를 거쳐 ‘제왕적 대통령제’가 이어져오다가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으면서 ‘입법폭주’시대가 시작됐다. 입법부가 강해지고 정파간 갈등이 심각해질수록 입법폭주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입법폭주를 제어하기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문제의 뿌리가 깊은만큼 해법도 쉽지 않다. 양원제 하려면 헌법을 바꿔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권력을 나누고 임기를 줄이는 개헌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압도적 여론형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