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조강수의 시선

경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의 검찰 통제 방식의 두 축은 제도 개혁과 검찰 인사로 이뤄졌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국정 슬로건에 맞게 사람 교체부터 먼저 했고, 윤석열 사단이 등장했다. 조국 일가 비리 수사를 계기로 '꽃길'에서 밀려났지만 '살아있는 권력'과 대척점에 서면서 정권 교체의 적임자로 급부상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선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빗대 '울산 회군(청와대 선거개입 사건)', '대전 회군(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청와대는 검찰권 양분의 그랜드 플랜을 그려놓고 형사사법제도 수술에 들어가 1차로 공수처·국가수사본부 신설 등을 단행했다. 국회 다수당이 지난 3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통과시키고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 법안을 공포한 게 종착점이었다. 검수완박은 구(舊) 권력과 지지기반이 셀프 구명에 급급해 체통은 집어던지고 벌인 '우물에 침뱉기' 성격이 짙다. 헌법 위반이라는 법조계와 시민단체·민초들의 아우성에도 귀를 막았다. 결국 '항명' 검사 발탁은 정권교체의 역풍으로 이어졌고, 개혁은 적법 절차를 무시한 어거지 강행에 따라 헌법재판소 분쟁으로 귀결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9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그는 이날 '검수완박의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9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그는 이날 '검수완박의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20대 대통령 취임식(10일)을 지켜보다가 한 가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나온 지금, 검찰 권력이 최정점에 이르렀어야 할 텐데 왜 현실은 정반대일까. 법무부 산하 외청이던 '공화국 검찰'의 수장이 반강제로 조직에서 쫓겨나온 뒤 정치에 진출,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 '검찰 공화국'이라는 새 시대를 연 것은 분명하다.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의 법무부 장관 발탁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에 대한 맞대응 경고 성격이 강하다. 취임사에서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反)지성주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취임 선서를 하는 윤 대통령에게서 여전히 검찰총장 이미지가 선명하게 겹치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불과 1년 2개월만의 대격변 아니던가. 만약 조국 사태부터 산 권력 수사, 대선 출마 등까지 이 모든 것을 윤 대통령이 미리 계획하고 예비한 것이라면 정치 검사의 굴레를 벗기 어렵다. 그러나 고비마다 국민의 바람과 순리를 따르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라면 탓할 명분이 없다. 이른바 '적폐수사' 지휘의 투톱이 새 정권의 핵심이 된 것과는 달리 친정격인 검찰의 기상도는 최악이다. 올해 안에 검찰은 수사권 대부분을 박탈당하고 기소권과 영장청구권만 갖는다. 두 사람 때문에 검찰이 입법 폭격을 당했다는 볼멘 소리도 검찰 내부에서 나온다.
 검수완박이 검찰에는 최악이라고 해도 국민들 사이에선 찬반이 갈린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거머쥔 검찰이 과거에 '국민'에 복무하지 않고 '정권'에 복무한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수사권을 선택적으로 휘두르며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했다. 검수완박 찬성자들은 '수사특권계급'이 증발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슬롯머신 사건, 대선자금 사건 같은 정·관계 비리 수사를 통해 전국적 스타검사가 나올 일이 없어지고 검사들의 정치권 진입 통로도 좁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전·현직 검사들의 끼리끼리 봐주기라는 비난을 들은 형사사건에서의 '전관예우' 병폐가 사그라드는 효과도 언급한다.
 한동훈 후보자는 인사 청문회에서 "이 법안이 시행되면 부패한 정치인과 공직자의 처벌을 어렵게 한다. 상층부 부정·부패는 하층부로 전염되고, 최종적으로는 국민이 약탈당하게 된다"고 답변했다. 맞는 말이지만 수사를 꼭 검찰이 해야 하느냐는 건 다른 문제다. 한때 검찰은 수사권을 전부 내려놓는 대신 경찰 수사 지휘·통제권을 충분히 확보하는 방향의 개혁안에 동의했었다. 경찰도 수사 경험이 쌓이고 권한이 확대되면 수사를 잘할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다만 중대범죄수사청 등 수사를 담당할 조직은 행정부에서 떼어내 독립성을 보장하고 수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등 공정한 수사를 가능케 하는 물적·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된다는 전제 하에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98년 4월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나도 당해봐서 잘 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검찰권 행사의 변화를 주문했다. 그로부터 24년이 흘러 검찰은 수사권이라는 한쪽 날개의 상실을 앞두고 뒤뚱거리고 있다. 조만간 윤 대통령이 부처 업무보고를 받게 되면 "경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일갈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한목소리로 묻고 있다. 경찰은 당장이라도 권력 비리를 수사할 준비가 돼 있느냐고.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란 오명과 결별한 준비가 됐는지 말이다.

24년 전 김대중, "검찰이 바로서야" #검수완박 시대엔 경찰 역할 중요 #바람보다 먼저 눕는 식 수사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