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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일상을 지배하는 플랫폼 경제의 명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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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배 섹타나인 대표

이경배 섹타나인 대표

우리의 하루는 플랫폼으로 시작해서 플랫폼으로 마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 알람이 나를 깨운다. ‘음악 플랫폼’에서 좋아하는 노래로 모닝콜을 해 놓았다. 출근을 위해 택시 호출 플랫폼에서 택시를 불러 도착 시각에 맞춰 집을 나선다.

차 안에서 포털 플랫폼으로 뉴스를 보고, 동영상 플랫폼에서 관심사를 검색한다. 공유오피스 플랫폼에 접속해 사무실 자리를 배정받고, 회의는 화상회의 플랫폼을 이용한다. 저녁 약속을 위해 예약 플랫폼에서 리뷰를 보며 예약한다. 집에 와서 운동 플랫폼에 접속해 인공지능(AI)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는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서 영화를 보고 잠자리에 든다. 가전제품과 조명을 끄기 위해 또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초대형 플랫폼 규제 논란 있지만
정부, 국내 플랫폼 성장 지원해야

그런데 이렇게 편리한 기능들이 몇 개의 초대형 플랫폼에서 모두 구현되고 있다. 한번 거대해진 플랫폼에는 그 어떤 사업을 추가해도 성공하니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식은 죽 먹기다. 과거엔 대형 쇼핑몰이 생겨 주변 지역상권에 영향을 줬다면, 지금은 온라인 플랫폼이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플랫폼 업체의 독과점, 문어발 확장이 논란이 되면서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하고 있다. 반면, 세계적인 추세인 플랫폼 사업에 족쇄를 채우면 국가 경쟁력만 떨어질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플랫폼이 일반 사업자들에게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플랫폼에서 웹툰이 유통되면서 동네 만화방은 다 없어졌지만 만화 작가의 등용문은 크게 넓어졌고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는 K-콘텐트의 한 장르가 됐다. 농어민들은 중간상인 없이 플랫폼에서 자신의 상품을 직접 유통할 수 있게 됐다. 언론·방송인이 되려는 사람들은 신문사·방송사에 어렵게 입사하지 않아도 플랫폼에서 인플루언서·유튜버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시대다. 지금 플랫폼의 문제는 문어발식 확장과 폭리를 취하는 거대 플랫폼뿐 아니라 변화하지 않으려는 기존 사업자들 모두의 책임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첫째, 플랫폼 사업자와 참여자 간 공정한 대가(代價) 체계가 확립돼야 한다. 플랫폼 이용 수수료가 높아 중소상인이나 일반인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참여자들이 제공하는 콘텐트나 서비스에 대해 적정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포털에 접속하는 가장 큰 이유가 뉴스 검색 때문이라면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사에 상응하는 대가가 지불돼야 할 것이다.

둘째, 기존 사업자들도 디지털 환경에 맞게 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과거의 방식을 고집한다면 냄비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몰락할 수밖에 없다. 플랫폼 택시의 확장으로 어려움에 봉착한 부산개인택시조합은 수수료 0원의 ‘택시 호출 공공 앱’을 만들어 하루 1만회 이상 호출을 기록할 만큼 성공적으로 변화한 사례가 있다.

셋째, 국내 플랫폼을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국가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인터넷 트래픽 조사에 따르면 네이버가 2.1%인데 구글은 27.1%, 넷플릭스는 7.2%를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세금이나 망 사용료 납부 규모는 국내 사업자에도 못 미치고 있다. 국내 플랫폼 사업자와 참여자에게만 비난과 규제가 가해지는 양상은 막아야 한다. ‘제2의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사업에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만이 답은 아니다. 규제로 변화를 막을 수는 없으며, 단지 늦추거나 오히려 더 강한 내성을 갖게 할 뿐이다.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은 이미 메타버스를 넘어 우주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1차 산업혁명 시대 영국에서 마차 사업을 보호하려고 자동차 운행을 규제했던 ‘붉은 깃발법’이 우리나라에 재현돼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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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배 섹타나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