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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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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 팩플 팀장

박수련 팩플 팀장

국내 최대 인터넷기업 네이버가 7월부터 하이브리드 근무제를 시작한다. 주3일 이상 회사로 출근할지, 원격(재택)으로 일하고 회사엔 팀 공통 일정 있을 때만 나올지 선택할 수 있다. ‘어디서든 일이 되게(connected work)’가 제도의 취지라고 한다. 한시적 비상체제이던 원격근무를 대기업이 상시 옵션으로 도입한 의미가 있다. 이들과 인재 확보 경쟁을 하는 다른 기업들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이 이러는 이유, 기술 인재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코로나 이후 세계의 지식노동자들은 ‘유연함’을 더 거세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다 같이 회사에 출근해서 비슷한 시간에 퇴근하는, 평균에 수렴하는, 획일화한 근무를 적극 거부한다. 얼마 전 애플에선 ‘주3일 의무 출근이 싫다’며 인공지능 기술 임원이 퇴사해 화제가 됐다. 오라는 데 많다면, 전면 원격근무를 금지하는 애플의 엄격함을 참을 필요가 없다.

국내 IT 기업이 밀집한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 2018년 노동조합들이 생기면서 보상과 근로여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중앙포토]

국내 IT 기업이 밀집한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 2018년 노동조합들이 생기면서 보상과 근로여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중앙포토]

이런 사람들은 주40시간 근무가 너무 길다고 주3일 근무를 원할 수도 있고, 반대로 주52시간보다 더 일하고 더 확실하게 보상받길 원할 수도 있다. 근로시간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 지식 산업일수록 평균에서 벗어나는 요구가 많다. 고액 연봉과 화려한 사원복지를 확보한 대기업 직원들보다, 고속성장을 바라는 스타트업의 젊은 직원들일수록 더 그렇다.

이런 흐름에 비춰볼 때 시행 5년째인 주52시간제는 평균을 강요하는 제도에 가까웠다. ‘밤 10시 됐으니 어서 자라’고 강제 소등하는 엄격한 부모 같다고 할까.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에서 정부가 나선 배경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업종이나 직무별 특성을 무시하다 보니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보완 입법이 있었지만, 근로시간 계산 기간을 늘리는 식이었다. 모든 사람이 ‘평균’을 지향하도록 한 본질은 그대로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주52시간제는 열정페이를 방조하는 고약한 제도가 됐다. 자의로 주52시간 이상 몰입노동을 한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지 못한다. 동시에, 평균을 벗어난 이런 직원들을 회사는 모른 척 회피한다.

특히, 원격근무 시대엔 상황이 더 복잡해지고 있다. 사무실 출퇴근 기록이 사라지니 일부 회사는 ‘코드커팅’을 고려한다.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에 가까워진다 싶으면, 혹은 저녁 6시 이후엔 업무 시스템 접속을 못 하도록 셧다운하는 방식이다. 그래도 일할 사람은 할 텐데, 정부는 언제까지 ‘밤 10시 취침’을 지도·단속할 수 있을까. 새 정부가 이 제도를 다듬는다고 한다. 이참에 평균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근무 형태를 총체적으로 살폈으면 한다. 부모가 자라고 해도, 공부할 애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