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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혜련의 휴먼임팩트

왜 지금 자제력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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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최근 들어 회사직원의 대형 횡령 사건이 뉴스라인을 장식하는 빈도가 늘고 있다. 수백억에 달하는 횡령액 규모에 놀랐을 뿐 아니라 그 큰 금액을 회사 내에서 혼자 도모한 것도 놀랍다. 범죄자에 대한 개인 정보를 접할 순 없어도 그들이 다닌 회사 규모를 보면 중산층 정도의 경제 수준은 유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빈곤해서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한 것이 아니라 일확천금을 노린 인간의 욕망과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1년 동안 벌어진 횡령 사건의 규모만 해도 총 6조8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피해를 본 회사의 허술한 내부통제시스템이 문제이지만 어떤 시스템도 인간의 쾌락추구 욕망을 완전히 통제하기는 어렵다.

초대형 횡령사건 뉴스에 충격
어릴 때부터 절제력 훈련해야
욕망만 따르면 파멸밖에 없어
행복 강조할수록 우울감 커져

에덴동산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본래 유혹에 취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은 의지와 절제력으로 유혹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몸의 근육이 다르듯 의지력에도 개인차가 크다. 일부 성격 특성과 연관이 있지만 대체로 의지력이 약한 사람은 금연이 어렵고 자동차 사고가 빈번하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학창 시절을 되돌아봐도 눈앞의 유혹을 참고 학업에 집중한 친구들이 더 좋은 결과를 얻고 인생 목표를 이루는 것을 경험했다.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어린 시절의 절제력 차이가 인생의 장기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그 유명한 마시멜로(설탕과자) 테스트가 보여주었다. 4~5세 아동을 대상으로 앞에 놓인 마시멜로 1개를 당장 먹을 수 있지만 만일 15분을 기다리면 2개를 먹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들 아동의 추적연구를 통해 오래 버티지 못한 아이들은 청소년, 성인으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쉽게 좌절하고 학업이나 사회적 기술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유혹을 견디며 만족 지연의 절제력을 보인 아동은 훗날 자기조절과 자기통제를 잘해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고됐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참고 견디는 자제력, 절제력은 고통스러운 노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자제력이 있는 삶은 우리의 인생을 보호해주는 방파제와 같다. 우리 몸의 근육이 훈련하고 많이 쓸수록 단단해지는 것처럼 자제력, 의지력 같은 정신적 노력도 지속적 훈련을 통해 강화될 수 있다. 유혹에 대한 저항과 자제력 같은 인지적, 감정적 기술은 특히 어린 시절에 훈련하면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미국 공영방송의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쿠키 먹기를 절제하는 훈련으로 소개한 내용은 흥미롭다. 쿠키에 탐닉하던 주인공 캐릭터가 어느 날 쿠키에 대한 충동을 절제하는 요령을 친구들에게 가르쳐준다. 먹고 싶은 마음을 참기 위해 “쿠키는 먹을 수 없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냄새나는 생선이니 먹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4~5세 자녀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이 관심을 기울일 대목이다.

이러한 자제력 노력은 성인이 돼서도 계속 훈련해야 한다. 욕구에 대한 자기절제가 미흡한 사람은 직장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경제적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자제력이 부족한 사람은 속도위반이나 끼어들기 같은 나쁜 운전습관을 가질 가능성이 커서 자동차 보험료를 더 내게 된다. 테슬라가 최근 선보인 ‘주행습관기반보험(BBI)’은 운전자의 주행습관(과속, 급제동, 휴대전화 사용 등)을 AI로 파악해 보험료 산정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쾌락(즐거움)과 고통(절제된 삶)은 상당한 연관성을 갖는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욕망을 지니지만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내 차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동료가 더 좋은 차를 사면 내 만족감은 사라진다. 횡령 범죄자들의 인생 목표도 결국 쾌락과 행복이었을 것이다. 다만 인내와 절제라는 고통의 과정을 생략한 잘못된 방식으로 애쓰다가 행복을 망친 것이다.

행복을 강조하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더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행복의 성취 기준이 비현실적으로 높기 때문이란다. 고객이 맡긴 은행 돈 600억을 횡령해 탕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300억이라는 거액을 익명으로 기부하면서 “필요 이상의 돈이 쌓여 부담이었다. 이제 홀가분한 기분으로 편히 잠잘 수 있다”라고 했다. 살아가는 목적이 분명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할 때 행복감이 넘치는 인생이 펼쳐진다.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