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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운영, 140억 빚진 임채무 “이제 어르신 돌보는 마지막 꿈 도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6면

34년째 경기 양주에서 놀이공원 두리랜드를 운영 중인 배우 임채무는 140억원 가량의 빚에도 사업을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 “다른 걸 해볼까 싶어도, 재미나는 게 없다. 여전히 어린이들이 즐거운 걸 보는 게 나도 즐거운 것, 그뿐이다”라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34년째 경기 양주에서 놀이공원 두리랜드를 운영 중인 배우 임채무는 140억원 가량의 빚에도 사업을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 “다른 걸 해볼까 싶어도, 재미나는 게 없다. 여전히 어린이들이 즐거운 걸 보는 게 나도 즐거운 것, 그뿐이다”라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우와, 사람 진짜 많네. 이런 날엔 내가 있어야 하는데….”

경기 양주에서 34년째 놀이공원 ‘두리랜드’를 운영 중인 배우 임채무(73)는 지난 6일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연신 이렇게 말했다. 그가 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두리랜드 곳곳을 비추는 CCTV 화면들. 한눈에 봐도 뛰어노는 아이들로 바글바글했다. “이렇게 바쁜 날에는 제가 있어야 직원들도 긴장하고, 그래야 안전사고도 안 난답니다.” 촬영 일정 때문에 공교롭게도 이날 두리랜드를 비운 그의 표정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2년여 만에 해제된 뒤 첫 어린이날을 보낸 그를 이 날 전북 김제에서 만났다. 지난달 새로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 촬영 중이었지만, 쉬는 시간에도 틈틈이 두리랜드를 챙겼다. 전날 몇 명이나 두리랜드를 찾았는지 묻자 “입장 인원은 안 센다. 그런 거에 연연하면 세상 못 산다”고 통달한 듯 말했지만, 간만의 인파가 반갑지 않았을 리 없다. “정말 모처럼 수입이 좀 되긴 했죠. 사람이 겁날 정도로 많은 건 처음이라 다 (사진) 찍어놨습니다.”

이미 알려졌듯, 임채무는 두리랜드 때문에 쌓인 빚만 수십억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정확히 140억원 정도”다. 1990년 개장 때부터 대출받아 시작했는데, IMF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상황이 악화했다. 27년 동안 입장료 없이 운영하다가 더는 버틸 수 없어 어른 2만원, 어린이 2만5000원의 입장료를 받기 시작한 게 하필 코로나19가 막 터진 2020년 4월이었다.

지난 2년에 대해 그는 “죽지 못해서 살았다”면서도, 이내 “그런데 역시 사람이 평소 베풀고 살아야 하는 게, ‘이제 정말 죽겠다’ 싶을 때마다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더라. 나는 이렇게 내가 가진 능력보다 많은 복을 받고 살았기 때문에 이제 진짜 망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수년간 빚에 허덕이면서도 두리랜드 문을 닫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임채무는 “다른 걸 해볼까 싶어도 재미있는 게 없다. 역시 이게 제일 재밌다”고 했다. 원체 어린이를 좋아하고 잘 돌보기로 유명해 1970년대에는 어린이 프로그램에만 내리 5년을 출연했다.

놀이공원 운영을 처음 결심한 것도 단역으로 사극을 찍던 시절이다. 촬영지 근처 계곡에 놀러 온 휴양객들이 술 먹다 싸우고, 그 틈에 아이들이 다친 모습이 안타까워서였다. 그는 “요즘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는 게 좋아서 몇 시간이고 웃으며 바라볼 때가 많다”며 “가끔 나를 알아본 아이들이 ‘아저씨~’ 외치며 달려와 안길 때면 안 좋은 어떤 일도 다 잊게 된다”고 말했다.

30여년 어린이와 어울린 임채무는 최근엔 일주일에 한 번 어르신들을 만난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예능 ‘임채무의 낭만닥터’(ENA채널)에 출연하면서다. 여기서 그는 배우 이문식·지성원, 정형외과 전문의 이태훈과 함께 이동치료소 차량을 타고 의료시설이 부족한 전국 각지의 시골을 찾아 의료봉사를 한다.

그는 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서 “어르신 의료봉사가 마지막 소원”이라고 밝혔는데, 이런 꿈이 자리 잡은 계기로 그는 “촬영·공연 등으로 전국을 돌아다녔던 경험”을 꼽았다. “40대 중후반쯤 전국을 다니며 보니, 마을버스도 안 다니는 동네 어르신들 90% 이상이 몸이 안 좋은데도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내더라. 그걸 보고 나서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이런 벽촌에서 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 먹었던 일이지만 “돈이 벌릴 땐 시간이 없고, 두리랜드 시작하고서는 돈이 없었다”는 이유로 하염없이 뒤로 밀렸다. 그러다 몇 해 전 우연히 이태훈 원장을 만났고, 두 사람이 의료봉사에 뜻을 모으면서 방송 제작까지 이어졌다.

제천 상천마을, 평창 계촌마을 등 벌써 마을 6곳에서 촬영을 마쳤다. 이들은 한 곳에서 15명 안팎의 어르신을 진료하고, 그중 치료가 시급한 한 분 정도는 서울에서 수술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임채무는 “어르신들이 ‘병원 가면 (진료 시간이) 30초도 안 되는데, 여기선 5분이고 10분이고 물어봐도 다 답해주니 너무 고맙다’고들 하신다”며 “방문 며칠 뒤에는 마을 이장님께 전화를 걸어 어르신들 반응을 여쭤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두리랜드처럼 의료봉사도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임채무는 “그건 그거대로, 이건 이거대로 인생의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넓은 세상 보고, 맑은 공기 마시고, 여러 사람을 만나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만큼 좋은 게 어딨겠나. 다만 요즘 들어 나도 내 인생을 좀 살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973년 MBC에 (공채 탤런트로) 입사한 이후 바캉스를 한 번도 못 갔다. 언젠가 내가 빠지게 돼도 다른 사람들이 쭉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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