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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고레에다 손잡고 칸 가는 CJ ENM "국도에서 8차선 뚫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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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시연재 CJ ENM 한국영화사업부장. 그의 뒤로 올해 칸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된 '브로커' 포스터 시안이 보인다. 권혁재 기자

4일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시연재 CJ ENM 한국영화사업부장. 그의 뒤로 올해 칸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된 '브로커' 포스터 시안이 보인다. 권혁재 기자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17일 개막하는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된 한국영화들이다. 모두 CJ ENM이 투자‧배급했다. 올해 칸영화제에선 단연 화제작들이다. 한국영화가 201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이듬해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성과를 이어갈지, 하는 점에서다.
영국 스크린데일리, 미국 포브스 등 외신에서는 ‘헤어질 결심’ ‘브로커’가 ‘기생충’과 같은 투자‧배급사 작품이란 것도 주목했다. 포브스는 지난달 14일 칸영화제 초청작 기사에서 “한국 배급사가 같은 해 2편의 영화로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건 최초”라며 “CJ ENM은 이로써 ‘기생충’ 등 지금껏 총 12편의 작품이 칸영화제에 초청되며 한국 배급사 최다 칸 초청 기록을 갖게 됐다”고 보도했다. 2005년 비경쟁 부문에 선정된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을 시작으로 경쟁 부문에 간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 박찬욱 감독의 ‘박쥐’(2009) ‘아가씨’(2016) 등을 포함해서다.

다국적 제작진이 만든다 '한국영화'의 확장

‘브로커’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경력의 일본 거장 고레에다 감독이 송강호‧강동원‧배두나‧이지은(아이유) 등 한국배우들과 한국에서 찍은 로드무비. ‘헤어질 결심’은 박 감독이 중국 배우 탕웨이, 박해일 주연으로 만든 멜로 수사극이다. 모두 한국 자본을 투입한 ‘한국 영화’지만 다국적 제작진이 뭉쳤다는 점에서 K콘텐트의 확장이란 의미가 크다. 미국 회사 넷플릭스 자본으로 한국 제작진이 만든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OTT에서 전세계적 성공을 거둔 것과 또 다른 방식의 확장이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 배우들과 찍은 '브로커'가 다음달 프랑스에서 열리는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사진 CJ ENM]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 배우들과 찍은 '브로커'가 다음달 프랑스에서 열리는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사진 CJ ENM]

지난 4일 서울 중구 필동 CJ 인재원에서 만난 시연재 CJ ENM 한국영화사업부장은 “처음부터 ‘칸영화제 가자’고 김칫국 마시진 않았지만, 각 영화의 장점을 글로벌로 극대화해보자는 건 출발부터 있었다”고 했다. “‘기생충’ 때도 감독님의 역량 외에 보이지 않는 유통‧마케팅‧홍보 등으로 몰아간 힘이 있었다. 그전엔 못 해본, ‘기생충’으로 쌓은 경험치”라면서다. “‘기생충’이 CJ의 글로벌 도약점이 됐다고 보실 수 있고 그런 면도 있지만, 사실 그간 회사가 글로벌 투자에 노력했지만 잘 안 됐던 실패 경험이 많죠. 수업료를 치르면서 반 계단씩 성장해온 결과입니다.”

영진위 없이 아카데미 간다? 발상 바꾼 '기생충' 

CJ는 이미경 부회장이 1995년 할리우드 영화사 드림웍스와 투자 협력한 이래 미국을 비롯해 해외 영화계와 교류하며 합작 및 한국영화의 현지 리메이크, 현지 오리지널 영화 제작 등에 힘써왔다. 2012~2017년 한국영화 마케팅을 맡았던 시 부장은 “당시 한국에서 천만영화로 수익을 내도 해외에서 몇백억원씩 손해가 나 연말에 계산하면 영화부문 인센티브가 없던 시기가 많았다”고 했다.

지난 2020년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현장 모습. [AFP]

지난 2020년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현장 모습. [AFP]

글로벌 진출에 대한 발상 자체를 바꾼 게 ‘기생충’이었다. 당시 브랜드 전략실에 있었던 그는 “전사(全社)적 프로젝트였다”고 했다.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 캠페인(수상 후보 홍보전)까지 갈 수 있다는 걸 감독도, 제작사도, 저희도 처음 경험했다. 그전까지 아카데미시상식은 영화진흥의원회 외국어영화상(현 국제장편영화상) 출품 심사를 통과해야 그나마 제출할 수 있다고 여겼다”면서 “한국영화도 이렇게 후보에 오를 수 있고 자본을 갖고 전략을 짜면 메이저 글로벌 시장에 가볼 수 있단 걸 처음 느꼈다”고 했다. 이를 “사람 하나 못 지나가는 국도만 있다가 8차선 도로가 뚫렸다”고 빗댔다.
이후 글로벌 시장성이 있는 작품의 경우 아카데미 캠페인도 염두에 두고 마케팅 전략을 짜게 됐단다. “이제 더 빨리 넘는 걸 생각해보게 되고, 더 잘 넘는 것, 더 많이 넘는 것을 감안하고 투자해보게 되죠. 시대 변화의 흐름에 따른 시장의 변화도 있고요.”

"코로나가 시장 변화 20년 앞당겨…위기이자 기회" 

‘브로커’는 고레에다 감독이 6년 전부터 송강호‧강동원 등과 논의해오던 프로젝트다. 제작사인 영화사 집이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CJ ENM에 제안하며 함께 하게 됐다고 한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박쥐’ ‘아가씨’ 등을 같이해온 CJ ENM과 다시 손잡았다. 시 부장은 콘텐트 시장이 확장할수록 창작자 투자의 중요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희 회사 차원에서 박 감독님은 상업적인 수익성을 떠나 작품세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면서 “다른 창작자의 경우도 프로젝트에 먼저 기획‧개발비를 꽂거나 어떤 감독은 3편 정도는 아이템 안 보고 투자한다거나, 비즈니스 이전에 창작자와 함께할 수 있는 방식을 10가지, 20가지 진행해왔다. 콘텐트 시장이 확장하면서 그 경우의 수는 더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영화관 관람객 2억명 시장이 열리고 다양한 장르의 대작 영화들이 쏟아져나오던 시점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OTT 플랫폼이 급부상하며 시장의 변화가 길게는 10년 앞당겨졌다고 했다. “전 지구가 가까워진 플랫폼이 뚫리면서 K콘텐트 시장엔 큰 기회가 됐죠. CJ에도 좋은 시장이지만, 단기적으론 그간 쌓아온 자본력‧경험치를 넘어 다 비슷한 출발점에 서게 돼서 노력해온 만큼 얻지 못하게 돼버린 게 있어요. 위기이자 기회죠. 더 긴장해야죠.”

최동훈 대작 '외계+인' "미국 극장서 흥행 정면승부"

최동훈 감독의 SF 판타지 대작 '외계+인'. 총 2부 중 1부가 올여름 극장에서 개봉 예정이다. [사진 CJ ENM]

최동훈 감독의 SF 판타지 대작 '외계+인'. 총 2부 중 1부가 올여름 극장에서 개봉 예정이다. [사진 CJ ENM]

올해 CJ ENM은 엔데믹을 맞은 극장가에서도 개봉을 미뤄온 굵직한 작품을 잇따라 선보인다. 칸영화제 이후 ‘브로커’는 다음달 8일, ‘헤어질 결심’은 29일 개봉한다. ‘도둑들’(2012) ‘암살’(2015)의 천만 감독 최동훈의 SF 판타지 영화 ‘외계+인’은 2부작 중 1부를 올여름 개봉한다. 1부 순제작비만 300억원 넘게 투입된 대작이다. 류준열‧김우빈‧김태리가 주연을 맡아 고려시대와 현재를 오가며 도사들과 외계인의 활극을 펼친다. 장르적 재미에 한국적 기발함을 가미한 작품이다. CJ ENM은 ‘외계+인’을 글로벌 극장 흥행에 정면 도전하는 작품으로 보고 있다. 시 부장은 “국내에선 극장 개봉하고 글로벌은 OTT나 다른 방식도 고민했지만 정통 승부하기로 했다. 북미 극장에서도 즐길 수 있는 영화로 첫선을 보이는 데 무게중심을 두려 한다. (코로나 상황도) 지금으로선 충분히 좋은 흐름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목표한다”고 했다.
“투자‧배급사 입장에서도 ‘한국영화 시장’이 바뀌고 있어요. 기존 한국 대작들은 국내 극장에서 40~50대 중장년층에게 어필하지 못하면 500만~700만 관객이 안 나왔죠. 캐스팅‧장면‧이야기 모두 한국 시장 타깃에 맞는 테두리 안에 있었다면 이제 글로벌 시장이 열리면서 한국 시장에 먹히는 간판스타 배우보단 탄탄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중요해졌어요.”
이에 발맞춰 CJ ENM은 기존 투자‧배급사의 역할에서 기획‧제작 영역을 강화해나간다는 전략이다. 어떤 창구로든 독자적 IP(지적재산)를 공급하는 스튜디오의 역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시 부장은 “기획 의도에 따라 미국 작가한테 시나리오를 맡기는 글로벌 작품도 생겼다”고 했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처럼 미국 작가가 영어로 쓴 대본을 한국말과 정서에 맞게 옮기는 작업이 더 많아질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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