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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대통령 최초 '도어 스테핑'...용산시대, 출발은 나쁘지 않다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새 정부가 시작된 지 이틀째인 11일 오전 8시35분. 용산 집무실로 출근한 윤석열 대통령이 중앙 현관으로 들어선 뒤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대기하던 기자들을 발견한 윤 대통령은 대뜸 “1층에들 다 입주했어요? 책상들 다 마련하고? 잘 좀 부탁한다”며 말을 건넸다. 곧이어 기자들과 짧은 문답이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긴 이유로 소통을 들었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를 나와 수시로 언론이나 시민과 만나겠다는 취지였다. 취임 이틀째인 11일, 윤 대통령은 용산 집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예정에 없던 문답을 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긴 이유로 소통을 들었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를 나와 수시로 언론이나 시민과 만나겠다는 취지였다. 취임 이틀째인 11일, 윤 대통령은 용산 집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예정에 없던 문답을 했다. 대통령실 제공

오늘 (자택에서 하는) 첫 출근이다. 한 말씀 해달라.
“어제 첫 출근하긴 했는데…. 취임사에 통합 얘기가 빠졌다고 지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 정치 과정 자체가 국민통합의 과정이다. 통합을 어떤 가치를 지향하면서 할 것이냐, 그것부터 얘기한 것으로 이해해달라.”
국무회의를 12일 주재하는데, 일부 장관 임명해야 하지 않느냐.
“출근해서 챙겨봐야겠다.”

도어 스테핑(door stepping)이란 말이 있다. 언론계에서 주로 쓰는데, 주요 인사가 문을 드나들 때를 기다렸다 간단한 문답을 주고받는 걸 일컫는다. 이날 아침 풍경은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한국 대통령 최초의 도어 스테핑으로 기록될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청와대에선 기자들이 정식 기자회견이나 간담회 때를 제외하곤 대통령과 문답을 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커녕 청와대 참모들과도 소통하기 어려웠다. 물리적으로 막혀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출입구부터 달랐다. 청와대에선 직원들은 연풍문으로, 기자들은 춘추관이 있는 춘추문으로 드나들었다. 춘추관에는 기자실과 브리핑룸이 있지만 그뿐이었다. 춘추관과 비서동을 연결하는 통로는 평소엔 닫혀 있었고, 현안이 있을 경우에만 춘추관을 찾은 수석급 참모의 브리핑을 듣는 정도였다. 개별 취재 수단은 전화가 유일했는데, 이 또한 안 받거나 가려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나온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가 “청와대 출입 기자가 아니라 춘추관 출입기자”란 말이었다.

불과 이틀이 지났을뿐이라 평가는 이르지만, 용산 집무실의 풍경은 일단 바뀌었다. 전날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언급한 배경이 궁금하던 차였는데, 건물에서 조우한 윤 대통령의 핵심 참모에게 직접 물어 볼 기회를 잡았다. 얼굴을 마주한 상태에서 “속박에서 벗어나는 소극적 자유가 아닌, 번영ㆍ풍요의 토대가 되는 적극적 자유”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를 빼고도 출퇴근길에 마주친 참모가 여럿이다.

이 정도면 출발은 나쁘잖다고 할 만하다. 관건은 앞으로다. 민주화 이후 취임한 대부분의 대통령이 활발한 소통을 공언했지만, 이를 끝까지 지킨 경우는 드물다. 여론이 좋을 때는 거침없다가 국면이 뒤바뀌면 침묵하기 일쑤였다. 취임사에서 “주요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5년 임기 동안 10번 남짓한 기자회견이 전부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일 때도 종로구 통의동의 인수위 사무실을 오가며 기자들과 만났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가동 초반, 쭈그려 앉아있는 현장 기자들을 위해 천막 기자실을 설치하고, 나중엔 별도의 브리핑룸을 여는 등 배려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선을 둘러싼 잡음, 안철수 전 인수위원장을 비롯한 공동정부 논란 등 불편한 상황이 이어지자 침묵했고, 문답을 하더라도 “질문이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소통은 결국 의지의 문제다. 사안이 복잡하고 이슈가 많을수록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풀어갈지, 아니면 침묵하거나 우회로를 택할지는 오롯이 윤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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