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아, 뭐가 그리 바빠서" 임권택 감독 탄식…눈물의 영결식

중앙일보

입력 2022.05.11 14:10

업데이트 2022.05.11 15:39

11일 고(故) 배우 강수연(1966~2022)의 영결식. 30여년간 영화인생을 함께 걸은 임권택 감독의 추모사는 짧은 탄식처럼 비통했다. 장례 고문을 맡은 임 감독은 강수연을 월드 스타로 만든 대표작 ‘씨받이’ ‘아제아제바라아제’ 등을 연출했다. “수연아” 이름부터 부른 그는 “친구처럼 딸처럼 동생처럼 네가 곁에 있어 늘 든든했는데, 뭐가 그리 바빠서 서둘렀느냐. 편히 쉬어라, 수연아” 두 문장을 말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11일 영화인장으로 엄수
유작 '정이' 현장 모습 공개

영화배우 고 강수연 영결식이 11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뉴시스

영화배우 고 강수연 영결식이 11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뉴시스

강수연은 지난 5일 뇌출혈로 인한 심정지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이틀 뒤인 7일 오후 숨을 거뒀다. 하루도 빠짐없이 빈소를 지킨 임 감독은 11일 장지로 향하는 마지막 운구 행렬까지 지팡이를 짚은 채 동행했다.

강수연의 빈소가 차려졌던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 영결식장에선 11일 오전 10시부터 그의 영결식이 거행됐다. 4남매인 고인의 가족과 친지, 영화인, 팬들로 장내는 발 디딜 틈 없었다. 장례위원이자 영결식 사회를 맡은 배우 유지태가 “아직도 실감이 안 나고 있다. 영화 속 장면이었으면 좋겠다”며 묵념을 청하자, 곳곳에서 흐느낌이 들려왔다.

설경구 "곧 보기로 한 날인데, 이 자리 잔인해" 

임권택 감독이 11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강수연의 영결식을 찾아 추모사를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임권택 감독이 11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강수연의 영결식을 찾아 추모사를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첫 추도사는 장례위원장인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 했다. 그는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월드 스타라는 왕관을 쓰고 멍에를 쥐고 당신은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다. 당신은 억세고도 지혜롭고도 또 강한 가장이었다”면서 “비록 우리 곁을 떠나 지상의 별이 졌어도 당신은 천상의 별로 우리 영화를 비추면서 끝까지 더 화려하게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애도했다. 이어 임권택 감독과 배우 문소리‧설경구, 강수연의 9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자 유작이 된 넷플릭스 영화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등 장례위원들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배우 문소리, 설경구, 강제규 감독, 정우성이 11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배우 고 강수연의 영결식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배우 문소리, 설경구, 강제규 감독, 정우성이 11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배우 고 강수연의 영결식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단상에 선 설경구는 “강수연 선배님 한 달 전에 오랜만에 통화하면서 할 얘기가 많으니 빨리 보려고 했는데, 곧 있으면 봐야 하는 날인데 제가 지금 선배님의 추도사를 하고 있다”며 “영화의 한 장면이라 해도 찍기 싫은 끔찍한 장면일 텐데 지금 이 자리가 너무 잔인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1998년 10월 영화 ‘송어’로 처음 만난 강수연이 당시 영화 경험이 없던 자신에게 “하나에서 열까지 세세하게 가르치고 도움 주면서 이끌어주셨다”고 했다. 저예산 영화 현장에 스태프들 전체 회식을 틈날 때마다 챙겼다면서다. 또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던 저에게 앞으로 영화를 계속할 것이라는 용기와 믿음을 주셨다”고 했다. 강수연에 대해 설경구는 “새카만 후배부터 한참 위 선배까지 다 아우를 수 있는 거인 같은 대장부”이자 “우리 배우들의 진정한 스타”라고, “영화인으로 애정과 자존심이 충만했고 어딜 가나 당당했고 어디서나 모두를 챙겼다, 그래서 너무 외로우셨다”며 그리워했다. “나의 친구, 나의 누이, 나의 사부님, 보여주신 사랑과 배려와 헌신 영원히 잊지 않겠다”면서다.

문소리 "까랑까랑 당돌한 '미미' 목소리 울면서 들어" 

배우 엄정화와 김아중이 11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배우 고 강수연의 영결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엄정화와 김아중이 11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배우 고 강수연의 영결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눈물 젖은 얼굴로 단상에 오른 문소리는 7일 부고를 듣고 강수연의 주연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 LP를 한참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야, 김철수. 내가 반말해서 기분 나쁘니!”하고 극 중 대사를 재현하며 “까랑까랑하고 그때도 여전히 당돌한 언니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울면서 듣고 웃으면서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강수연 주연 영화 ‘경마장 가는 길’(1991)을 봤다면서 “영화의 세계라는 게 땅에만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재미난 이야기 만드는 게 하늘에서야 못 하겠냐”고 했다. 이어 앞서 작고한 제작자 이춘연 씨네2000 대표.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되짚으며 “그분들이랑 영화 한 편 하시라”면서 “여기서는 같은 작품 못 했지만 이 다음에 우리 만나면 같이 영화해요, 언니. 2022년 5월에 소리가”라며 추도사를 맺었다.

이어 마련된 추모 영상에선 강수연의 최근 공식 석상, 작품 속 모습부터 만 3살에 연기를 시작한 아역시절 장면까지가 역순으로 흘러나왔다. “어떤 영화든 첫날 첫회 꼭 보거든요. 관객하고 같이 보면 느낌이 달라요, 영화가”라고 그가 전성기 시절 출연한 방송 인터뷰도 담겼다. 영상 끝에는 지난 1월 촬영을 마친 ‘정이’ 현장 풍경도 있었다. 강수연의 가장 최근 모습이다. 영상에서 그는 연상호 감독에게 “몸 조리 잘하세요. 빨리 나으세요” 기운찬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연상호 "돌아가 '정이' 작업…강수연 연기 현재 진행중"

곧이어 마지막 추모사를 위해 단상에 오른 연 감독은 떨리는 목소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신인이던 2011년 애니메이션 연출작 ‘돼지의 왕’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강수연과 첫 인연을 돌이켰다. 이듬해 이 작품을 초청한 칸국제영화제 관계자가 당시 연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다가왔을 때 영어를 못해 쩔쩔매는 그를 우연히 지나가던 강수연이 통역을 자처해 도와줬다고 전했다. 연 감독은 강수연에 대해 “선배님은 한국영화를 연기로서 세계에 알리고 또 이후 (부산국제)영화제 일을 하며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이라면 자기 일처럼 나섰다”면서 “선배님 그 자체로 한국영화였다”고 했다. “(‘정이’ 제작 과정에서) 한국영화의 아이콘이자 독보적 아우라를 가진 강수연 선배님 말고 다른 배우는 떠오르지 않았다”고도 했다. “영결식이 끝나고 작업실로 돌아가 강수연 선배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선보일 새 영화에 대해 고민할 것”이라며 “배우 강수연의 연기는 계속 현재 진행 중”이라고 울먹였다.

추도사 후 고인을 빼닮은 여동생 강수경씨가 유족을 대표해 “여러분 덕분에 허망하고 쓸쓸할 뻔했던 이별의 시간을 추억으로 채울 수 있었다. 영화와 일생을 함께한 강수연 배우가 영원히 기억되기를 소망한다”며 감사를 전했다.

영화인장…발인식 운구엔 정우성·설경구·강제규·연상호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배우 고(故) 강수연의 발인식에서 배우 정우성과 설경구(오른쪽) 등이 운구를 하고 있다. 뉴스1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배우 고(故) 강수연의 발인식에서 배우 정우성과 설경구(오른쪽) 등이 운구를 하고 있다. 뉴스1

강수연의 장례는 공식 조문이 시작된 8일부터 영화인장으로 진행됐다. 장례위원장 김동호 이사장을 비롯해 장례 고문 박중훈‧손숙‧안성기‧임권택 등 11인, 장례위원 봉준호‧예지원‧전도연‧이병헌‧정우성 등 49인의 영화인이 동참했다.

이날 영결식엔 배우 방은진‧김아중‧예지원‧엄정화·정웅인, 영화감독 이명세‧이현승, 제작자 이준동‧심재명‧이은·최재원 등도 자리했다. 차이밍량 감독, 배우 양귀매, 제니퍼 자오 대만영상위원회 부위원장 등 대만 영화인도 영상으로 애도를 표했다. 영결식 후 발인에선 배우 설경구‧정우성‧류경수, 영화감독 강제규‧연상호, 제작자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등이 운구를 맡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동행했다. 영화인 장례위원회가 이날 영결식에 내건 현수막엔 ‘별보다 아름다운 별, 안녕히’라 적혔다.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하며, 장지는 경기도 용인추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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