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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츠랩]메인보다 더 맛있는 반찬 '재무제표 주석'의 세계

중앙일보

입력

혹시 그런 적 있으신가요? 원래 먹으려던 음식보다 반찬이 더 맛있어서, 그 식당에 자주 갔던 경험. 저는 대학 시절, 학교 앞 파전집 오이무침이 너무 시원하고 아삭아삭해서 오이무침 때문에 자주 갔던 기억이 있는데요.

앞서 레터에서 재무제표로는 메인 요리라고 할 수 있는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를 살펴봤는데, 오늘은 메인 요리 못지않게 맛있는 반찬 '재무제표 주석'에 대해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재무제표 주석은 재무제표의 사용 설명서. 셔터스톡

재무제표 주석은 재무제표의 사용 설명서. 셔터스톡

재무제표 주석은 재무제표에 적힌 숫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상세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설명서'입니다. 워낙 중요한 내용이 많아서, 재무제표 주석도 엄연한 재무제표로 간주됩니다. (주석 사항을 고의로 부풀려도, 재무제표를 고친 것과 똑같이 분식회계가 될 수 있다는 의미죠)

재무제표에는 개별 회계 계정에 숫자만 덜렁 기록돼 있을 뿐입니다. 상세하게 해당 항목의 자산은 무엇으로 구성돼 있고, 얼마나 늘었고 줄었는지는 알 수 없죠. 비용 항목도 주로 어디에 비용을 많이 쓰고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재무제표 주석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앤츠랩이 위메이드란 게임회사를 분석하면서(171호 레터) 이 회사 무형자산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얼마나 있었고, 위믹스는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었던 것도 재무제표 주석에 다 나와있기 때문이죠.

위메이드의 재무제표 주석으로 암호화폐 거래 내역을 살펴볼 수 있다. 위메이드

위메이드의 재무제표 주석으로 암호화폐 거래 내역을 살펴볼 수 있다. 위메이드

마켓컬리가 물류 인력을 많이 채용해 인건비가 크게 늘었고, 상하지 않게 신선식품을 배송하는 데 들어가는 포장비 규모도 만만찮다는 것 또한 주석에 나오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겁니다.

특히 건설사나 조선사와 같은 수주기업들은 매출액의 5%가 넘는 규모의 수주계약의 경우, 건건 별로 공사 상황을 주석에 기록해서 투자자에게 알립니다. 공사 진행이 몇 %나 되었는지, 회사 입장에선 매출액으로 잡았지만, 나중에 손실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는 미청구공사는 얼마나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죠. HDC현대산업개발의 붕괴 사고 현장의 공사 손실 규모도 투자자들이 어렴풋이 계산해 볼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수주기업 재무제표 주석에는 건설 계약별 공사 진행률과 미청구공사, 손실 처리한 대손충당금 등의 정보가 공시된다. HDC현대산업개발

수주기업 재무제표 주석에는 건설 계약별 공사 진행률과 미청구공사, 손실 처리한 대손충당금 등의 정보가 공시된다. HDC현대산업개발

아니 그래도 재무제표 주석은 수십 페이지씩이나 되는데 이걸 어느 세월에 읽나. 처음 접해보신 분들은 그 분량에 놀라 어찌할 줄 몰라 하실 텐데요. 우리가 전자제품 사용 설명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지 않죠? 주요 기능부터 살펴본 뒤에, 뭔가 고장이 나면 해결하는 법을 찾아보는 정도일 겁니다.

재무제표 주석 보는 법도 똑같습니다. 재무제표에 나온 항목 옆에는 '몇 페이지로 가시오'와 같은 의미로 상세한 내용이 적힌 주석 번호가 달려 있는데요. 그 ▷기업에 궁금한 회계 항목이나, ▷뭔가 숫자가 튈 정도로 커서 기업 내실에 영향을 많이 줄 것처럼 보이는 항목, ▷작년에 비해 크게 늘었거나 줄어든 항목 위주로 주석을 찾아보면 되겠습니다. 상식적인 얘기죠.

그리고 주석 안에 담긴 내용 중 꼭 살펴봤으면 하는 것 세 가지만 추려서 설명하겠습니다.

끼리끼리 매출 낸 거 아냐? '특수관계자 거래'
상장기업들은 회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개인이나 법인 간 거래 내용을 재무제표 주석에 공시합니다. '우리가 남이가~'식 거래로 실적이나 자산을 뻥튀기해 투자자를 속이는 걸 방지하려는 장치죠. 특수관계자란 모회사나 종속·관계회사 등 지분 관계가 있거나, 회사 경영에 영향력을 미칠 만큼 오너·주주·임원과도 관련성이 큰 기업을 의미하죠.

손익계산서에 찍힌 매출액 중에서 많은 비중이 특수관계인 간 거래에서 발생했다면, 그 회사가 제 실력이 아니라 '일감 몰아주기'로 벌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또 친인척 간에 금전 관계를 맺으면 돈이 떼일 확률도 높은 것처럼, 특수관계자 간 대출 거래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죠.

특수관계자에 의지해 먹고 사는 기업이 좋은 기업일수가. 셔터스톡

특수관계자에 의지해 먹고 사는 기업이 좋은 기업일수가. 셔터스톡

재무제표엔 감춰진 지뢰 '우발부채'
재무제표 주석으로만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항목 중엔 또 우발부채(우발채무)라는 게 있습니다. 만약 집에 소송이 걸려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소송에서 지면 1000만원을 내주게 돼 있지만, 평소에 이걸 빚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발적인' 일로 인해 이게 갚아야 할 빚으로 돌변할 순 있죠.

회사도 다른 회사에 빚보증(신용공여)을 서주거나 거액의 소송이 걸리면, 일이 잘 안 풀리는 경우 손실이 생길 수도 있죠. 이런 정보는 재무제표에는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주석을 보지 않고 넘긴다면, 이런 '지뢰'는 찾기가 힘들겠죠.

재무제표엔 안보이는 우발부채, 잘못하면 손실로 터진다. 셔터스톡

재무제표엔 안보이는 우발부채, 잘못하면 손실로 터진다. 셔터스톡

자본인데도 갚아야 할 돈 '신종자본증권'
회사에 '내 돈'이라 할 수 있는 자본금이 빵빵하면 안심하게 마련입니다만, 한 가지 더 살펴야 할 게 있습니다. 분명 자본으로 기록돼 있지만, 부채 성격이 더 짙은 신종자본증권(일명 영구채)에 관한 내용입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를 계속해서 연장해서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대출이다 보니까, 회계상으론 자본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이걸 만기까지 계속 갚지 않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죠. 왜냐면 늦게 갚을수록 이자율이 계단식으로 올라가니까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죠. 만기는 언제 오는지, 그걸 연장하면 금리는 얼마나 뛰는지, 이런 조건이 재무제표 주석에 나와 있습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 때 못 갚으면 계단식으로 금리가 오른다. 그런데도 만기를 계속 연장할 수 있어 회계상 자본. 셔터스톡

신종자본증권은 만기 때 못 갚으면 계단식으로 금리가 오른다. 그런데도 만기를 계속 연장할 수 있어 회계상 자본. 셔터스톡

재미있는 건, 이자 부담 때문에 신종자본증권을 갚으면 부채비율이 확 오른다는 점입니다.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돼 있으니, 이걸 갚으면 자본이 확 빠져나가는 게 되니까요. 이럴 땐 부채비율이 좀 올라도, 안 갚는 것보단 갚는 게 낫다고 볼 수 있으니 뭘 갚았는지 잘 봐야겠죠.

이렇게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재무제표 주석까지 주린이를 위한 초간단 재무제표 특강이 끝났습니다. 이 시리즈를 하다 보니, 좀 더 '심화편'으로 또 한 번 해주면 안 되느냐는 구독자 요청도 있었습니다. 방법은 좀 찾아보겠습니다. 애정이 담긴 숙제는 늘 환영입니다~
by.앤츠랩
※이 기사는 5월 9일 발행한 앤츠랩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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