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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수장 홀린 '명품 출판사'…서울에 '백조들 바' 낸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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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피카딜리 지역에 위치한 애술린 매장 전경. [사진 애술린]

런던 피카딜리 지역에 위치한 애술린 매장 전경. [사진 애술린]

패션과 가구, 자동차 등에는 흔히 말하는 ‘명품’이 있다. 그렇다면 인류 지성의 집합체인 책은 어떨까. 지난 1994년 세워진 프랑스 출판사 애술린(Assouline)은 책의 외형과 내용, 책을 만드는 작업 면에서 ‘명품 서적’으로 꼽힌다.
샤넬·루이비통·크리스챤디올·까르띠에·롤렉스 등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가 자신들을 소개하는 책을 낼 때 가장 먼저 의뢰하는 곳이다. 영화 속 마법사들이 한 장 한 장 넘길 법한 커다란 책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란 평가를 받는다.

애술린의 최고급 제품군인 '얼티밋(Ultimate Collection)' 브랜드 북 모습. 가로 35.5㎝, 세로 42㎝로 페이지마다 이탈리아의 장인들이 한장 씩 사진을 붙여 만들었다. 가격은 150만~170만원대. [사진 애술린]

애술린의 최고급 제품군인 '얼티밋(Ultimate Collection)' 브랜드 북 모습. 가로 35.5㎝, 세로 42㎝로 페이지마다 이탈리아의 장인들이 한장 씩 사진을 붙여 만들었다. 가격은 150만~170만원대. [사진 애술린]

일례로 루이비통은 지난해 설립 200주년을 앞두고 애술린을 통해 장인들의 작업과정과 제작 철학 등을 담은『루이비통 매뉴팩처러』란 책을 출판했다. 마이클 버크 루이비통 대표가 “이 책을 낼 곳은 애술린 밖에 없다. 모든 것을 맡기겠다”며 연락해 왔다고 한다.

2021년 루이비통 설립 200주년을 맞아 애술린에서 출판한 '루이비통 매뉴팩처러' 모습. [사진 애술린]

2021년 루이비통 설립 200주년을 맞아 애술린에서 출판한 '루이비통 매뉴팩처러' 모습. [사진 애술린]

누군가의 고급 서재 같은 분위기가 특징인 애술린 매장은 뉴욕·파리·베니스 등 세계 30곳에 있다. 아시아엔 딱 한 곳에만 있는데 바로 한국이다. 지난 2012년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인근에 문을 열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당시만 해도 중국이나 일본의 명품 시장이 한국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업계에선 화제가 됐다.

애술린 창업자인 프로스퍼 애술린은 10일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멋진 사람들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뉴욕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하나같이 유머 감각과 호기심이 뛰어나고 현대적인 취향과 감성을 가지고 있어서 아, 아시아 1호점은 이런 사람들이 많은 서울에 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어요.”

아시아 1호점이자 아시아에서 유일한 매장인 애술린 서울 매장 전경. [사진 애술린]

아시아 1호점이자 아시아에서 유일한 매장인 애술린 서울 매장 전경. [사진 애술린]

실제 애술린이 책과 매장을 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 도시에 부자가 얼마나 많고, 명품 가방을 얼마나 많이 사는지 하는 것들이 아니다. 핵심은 ‘문화’다. 출판 분야가 주로 예술·디자인·패션·건축·여행인 것도 문화적 요소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요즘 인기가 뜨거운 브랜드의 의뢰는 거절하더라도, 유구한 역사와 고유한 가치를 지닌 경상북도 안동의 이야기는 기꺼이 책으로 만드는 게 애술린의 방식이다.

프로스퍼는 “문화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과거와 현재, 추억과 습관이 차곡차곡 쌓이는 원동력이고 과거는 영감의 원천”이라며 “책을 만들 때 사람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푹 빠질 수 있게 스토리텔링을 하려고 하는데, 문화적 배경이 탄탄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에선 설화수·MCM·롯데에비뉴엘·현대자동차 등이 브랜드 북을 출판했다.

애술린은 개장 10주년을 맞아 서울 매장에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다. 멋들어진 책과 사진에 둘러싸여 여유롭게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스완즈 바(Swans Bar)’다. 백조(Swans)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인 미국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가 아름답고 세련된 부유한 여성 친구들을 부르는 말이었다. 요즘 말로 ‘잇 걸(It Girls)’인 셈인데 1950~70년대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여행할 만큼 특권을 누린 상류층 집단을 일컫는 ‘제트 소사이어티(Jet Society)’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애술린 서울 개장 10주년을 맞아 매장 내 마련한 '스완즈 바(Swans Bar)' 모습. [사진 애술린].

애술린 서울 개장 10주년을 맞아 매장 내 마련한 '스완즈 바(Swans Bar)' 모습. [사진 애술린].

스완즈 바 역시 우아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란 의미를 담았다. 바의 한켠에는 『SWANS』 책도 볼 수 있다. 커다란 핑크빛 책 속엔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 미국 사교계의 명사였던 베이브 페일리, 재클린 케네디, 세기의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 이탈리아 피아트 자동차 창립자의 배우자인 마렐라 공주 등 대표적인 제트 세터들의 사진과 이야기들이 담겼다. 실제 이들은 당대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이끌며 다양한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50~70년대 세계 주요 상류층 인사들의 이야기와 사진들을 담은 '스완즈(SWANS)' 책과 '스완즈바'의 에스프레소 마티니 모습. [사진 애술린]

1950~70년대 세계 주요 상류층 인사들의 이야기와 사진들을 담은 '스완즈(SWANS)' 책과 '스완즈바'의 에스프레소 마티니 모습. [사진 애술린]

클릭 몇 번에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해결되는 시대, 애술린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다 개인적이고 고유한 개성을 담은 서비스에 집중할 계획이다. 고객이 원하는 주제를 고객의 취향에 따라 풀어내되 애술린의 디자인과 편집, 인쇄방식, 문화적 감성을 접목하는 게 골자다. 루이비통의 최근 책의 경우 프로스퍼 애술린이 전 세계에서 진행된 사진 촬영을 모두 직접 감독했다.

한영아 애술린 서울 대표는 “애술린의 책은 읽기 위한 책이 아니라, 보고 느끼고 나만의 장소에 소장하면서 내내 문화적 향취를 즐기게 하는 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책 관련 소품과 주문제작용 가구, 선물용품 등 도서·서재와 관련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다양한 고급문화의 매력을 전달하려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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