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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색다른 일성"…'최장수 총리' 김황식, 후한 점수 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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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대통령 취임사는 새 대통령의 첫 일성이자 당대의 시대 정신을 눌러 담은 압축판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사를 통해 새 정부의 기조와 국정 방향을 국민에게 알리고, 사회의 난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도 10일 취임식에서 3450자 분량의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국정 운영 구상을 처음으로 밝혔다. 한지로 작성된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대통령기록물로 보존된다.

취임사를 두고 이날 각계에서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역대 보수 정부 중 ‘최장수 국무총리’를 지낸 김황식 전 총리와 원로 헌법학자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한국정치학회장인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도 윤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봤다. 세 사람에게 ‘윤석열 취임사’를 어떻게 봤는지 전화 인터뷰로 물었다.

김황식 “보편적 가치 앞세워 국정 정신 천명”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10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와는 궤를 달리하는 색다른 일성"이라고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를 평가했다. 중앙포토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10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와는 궤를 달리하는 색다른 일성"이라고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를 평가했다. 중앙포토

김황식 전 총리는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와는 궤를 달리하는 색다른 일성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구체적인 정책과 국가 과제를 상세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자유·인권·공정·연대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 국정 운영의 기본 정신을 천명하는 연설 방식이 이례적이었다”며 “특히 국내외 모든 정책의 기반이 될 ‘자유 가치’를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빠른 성장’을 두고는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켜 자유를 지키겠다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읽혔다”고 후한 점수를 줬다. 김 전 총리는 “빠른 성장이란 성장 제일주의가 아니라, 성장을 통해 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복지까지 이루겠다는 의미로 들렸다”며 “국민과 기업이 함께 성장할 토대를 만들고, 규제를 혁파해 국민 자유를 지키겠다는 계획을 ‘빠른 성장’이라는 단어에 축약했다”고 분석했다.

‘통합 메시지’가 부족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이 민주당이나 반대 세력을 설득하겠다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공동체 결속이 와해되고 있음을 명확하게 짚었다”며 “자유를 중심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뜻을 밝혀 완곡한 통합의 메시지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영 “구체적 현실 진단과 방법론 없었다”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해 "연대라는 키워드를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며 "현실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중앙포토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해 "연대라는 키워드를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며 "현실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중앙포토

허영 교수는 “취임사 전반에 ‘연대’라는 키워드를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고 했다. 허 교수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국제 사회와 힘을 합치고 이를 무시하는 공산주의 등 국제 세력과는 확실히 선을 긋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연대의 의미를 국내로 좁히면 사회 갈등을 해결하고 통합하기 위해 시민이 분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윤 대통령이 그런 점에서 연대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취임사가 전반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냉정한 평가도 했다. 허 교수는 “현실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이 부족했다”며 “‘초저성장’과 ‘양극화’, ‘사회 갈등’ 같은 쉬운 단어로 표현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분석이 필요했다”고 조언했다. 그는 “예를 들어 MZ세대의 젠더 갈등처럼 최근 도드라지는 사회 분열 양상을 입체적으로 제시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애초에 구체적인 현실 분석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상세한 방법론도 제시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강조한 것에 대해서는 “헌법 가치로서의 자유민주주의 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민주주의의 다른 기둥인 평등과 정의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다소 의아했다”고 평했다. “내 자유는 옆 사람의 코끝에서 끝난다”는 독일 속담도 언급했다. 허 교수는 “손을 뻗는 것이 자유라도, 옆 사람의 코를 부딪쳐서는 안 되듯이 자유에는 절제와 책임도 수반되는 데 그런 배경 설명이 다소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임성학 “비전과 신념 선명…협치·소통 의지는 부족”

한국정치학회장인 임성학 서울시립대 교수는 "일관된 국정 운영의 비전을 보여줬다"며 "통합과 협치의 메시지나, 국민 소통에 대한 의지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중앙포토

한국정치학회장인 임성학 서울시립대 교수는 "일관된 국정 운영의 비전을 보여줬다"며 "통합과 협치의 메시지나, 국민 소통에 대한 의지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중앙포토

임성학 교수는 “자유·시장·과학이라는 큰 틀의 방향을 제시한 뒤 일관된 국정 운영의 비전을 보여줬다”며 “하지만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통합과 협치의 메시지나 국민 소통에 대한 의지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선명하게 담겼다는 점에서 취임사를 높게 평가했다. 임 교수는 “‘위대한 국민과 함께’라는 표현이나, ‘큰 고통을 감내한 국민 여러분께 경의를 표한다’ 등의 수사를 통해 권위적 이미지를 내려놓고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강조한 것은 긍정적”이라며 “정치·경제·외교 분야에서 추구할 최상의 가치로 자유를 강조해 윤 정부의 국정 철학을 선명하게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이어 “자유와 시장에 대한 신념을 적극적으로 드러냈고, 자유와 인권을 주도적으로 수호해 글로벌 리더국가가 되겠다는 비전을 잘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새 정부의 과제를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새 대통령이 과연 무엇을 문제로 인식하고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며 “정치적 양극화와 국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통합과 타협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국민과 다양한 정치 세력에게 협력을 호소하는 부분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취임사에 용산 집무실 이전이 언급되지 않은 점도 언급했다. 임 교수는 “국민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동시에 용산 이전도 그 일환이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했다”며 “집무실 이전 논란도 불식하고, 소통 이미지도 강화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윤 대통령이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반지성주의’로 규정하고 ‘과학과 진실을 전제로 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해법으로 제시한 것을 두고는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다소 자의적으로 단순화했다”며 “대통령이 ‘과학과 진실’을 인위적으로 규정해, 정치적 다원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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