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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민주당 '짤짤이'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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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말하기도 민망한 사건이다. ‘ㅉㅉ’이냐 ‘ㄸㄸ’이냐를 놓고 한동안 시끄러웠다.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지난달 화상회의 중 동료 남성 의원에게 남성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의혹에 휘말린 일 말이다. 해당 의원이 화면을 켜지 않자 "숨어서 무엇을 하나" "*** 치러 갔느냐"고 말했다(하필 해당 의원은 지인과 지지들 사이에 ‘모태솔로’ 이미지로 유명하다. 과거 성인용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서는 여자 경험이 적어 남자들에게 놀림당하는 역할을 자처하며 자기 희화화를 한 적도 있다). 함께 있던 여성 보좌관들이 불쾌함을 호소했고,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당 윤리심판원에 조사를 지시했다. 여성 보좌관들은 "최 의원이 며칠 전 저지른 심각한 성희롱 비위 행위를 무마하기 위해 말장난으로 응대하며 제보자들을 모욕하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애초 사건보다 대응이 더 일을 키운 셈이다. 결국 최 의원은 지난 4일 개인 SNS와 당 홈페이지에 "의도하는 바는 아니었을지라도 정신적 고통을 입은 보좌진께 사과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직전까지만 해도 "심각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한 가벼운 농담에 불과한 발언이었는데도 취지가 왜곡되어 보도돼 심각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항변하던 그다.

성희롱 발언 의혹을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오른쪽)과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중앙포토]

성희롱 발언 의혹을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오른쪽)과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중앙포토]

  사과는 했지만 아직도 억울함이 큰 것 같다. 최 의원은 이후 페이스북에 자신을 민주당 여성 보좌진이라 주장하는 익명의 필자가 박 위원장을 비난하는 글을 공유했다.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도 총출동했다. 김어준·황교익·김용민 같은 강성 스피커들은 "남자들의 농담을 오해했다" "이런 게 파쇼" "페미 정치" "해당 행위" 등 맹비난을 쏟아냈다. 친민주 커뮤니티도 '(박 위원장은) 최종 심판자로 착각 말라' '내부 총질, 꼴페미짓 그만하고 민주당을 떠나라' 등의 성토 글로 도배됐다. 하루 1만 개의 문자 폭탄도 쏟아졌다.
박 위원장은 알다시피 디지털 성폭력 n번방 사건을 파헤친 ‘추적단 불꽃’ 활동가 출신으로, 지난 대선 막바지에 전격 영입돼 ‘이대녀(20대 여성)’의 표심을 끌어온 상징적 인물이다. 당연히 당내 성희롱ㆍ성 비위 사건, 마초적 조직문화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도 이를 ‘꼴페미짓’ ‘해당 행위’로 맹공하니, 나이 어린 여성 비대위원장은 인정할 수 없다는 건가. 제보자를 색출하고 협박문자를 날리는 일도 벌어졌다. 전형적인 2차 가해다.
술자리도 아니고 공식 석상에서 "심각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굳이 성적인 비속어를 연상케 하는 '농담'을 '아직도' 하는 이유가 뭘까. 여성 보좌관들이 불쾌했다고 하는데 요즘은 남성이라도 저런 맥락의 저런 발언이 불편한 게 정상 아닌가 싶다.  ‘꼴페미 완장’ 차고 성에 대해서는 아무 농담도 할 수 없는 엄숙주의로 가자는 게 아니라 일상 곳곳에 높은 성인지 감수성을 작동시키자는 게 본질일 것이다. 또 이 같은 발언을 보좌관이 의원에게, 30대 의원이 50대 의원에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성희롱ㆍ성폭력의 핵심은 ‘성’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점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박 위원장은 최 의원의 사과문 게재 직후 "아는 사람이라고 잘못을 감싸는 문화를 버리지 않으면 5년 뒤에도 집권할 수 없다. 세 광역단체장의 성범죄로 정권을 반납했던 뼈아픈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박 위원장은 ‘검수완박’에 속도 조절을 주문하고 '내로남불'의 아이콘 조국 전 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등 소신 발언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과연 그가 명실상부한 비대위원장으로 당의 체질 개선을 끌어낼 수 있을지, 아니면 우리에겐 이런 다른 목소리도 있다고 보여주는 면피성 얼굴마담에 그칠지는 이번 사건이 굴러가는 것을 지켜보면 알게 될 것 같다.
민주당은 9일 최 의원에 대한 당 차원의 징계 논의를 시작했다. 중앙당 윤리심판원에 직권조사를 명하고 2차 가해 여부, 보좌관 말 맞추기 등 은폐 시도 여부도 함께 조사해 징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최강욱 의원 성희롱 의혹 발언 #비판한 '이대녀' 비대위원장 맹공 #최 의원 조사…향후 귀추 주목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