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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 속 새 정부 출범…글로벌 위기 대응 전환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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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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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10일 취임은 두 가지 점에서 이전과 크게 다르다. 첫째, 국제 환경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글로벌 위기가 심상치 않다. 둘째는 경제력이다. 한국의 2022년 국내총생산(GDP)은 명목 금액 기준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로 올해 1조 8046억 달러다. 브라질(1조8332억 달러)·러시아(1조8290억 달러)에 이어 세계 12위다. 박근혜 대통령 당시인 2017년 저유가 상황에서 산유국인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10위에 올랐다가 팬데믹과 지난해 고유가로 조금 밀렸지만, 여전히 세계 상위권이다.

더욱 눈여겨볼 점은 1인당 GDP다. 명목 금액 기준으론 올해 IMF 전망치가 3만4994달러로 이탈리아(3만4777달러)보다 많고, 일본(3만9243달러)보다 적다. 물가 등을 고려한 구매력 기준(PPP)으로 한국의 1인당 GDP는 5만3051달러로 일본(4만8814달러)보다 많고 영국(5만5301달러)·프랑스(5만6036달러)보다 조금 적은 수준이다. 1인당 GDP가 PPP로 일본을 넘어선 상황에서 새 대통령을 맞기는 건국 이래 처음이다. 이전까지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나 중견국이었다면, 이젠 경제력·군사력·민주주의에서 선진국이자 글로벌 주도국이다.

지구촌 국가·문화별 블록화 가속
위상 높아진 한국의 책임도 커져
우크라 사태 분석·연구 중요해져
한반도 넘어선 가치외교 펼쳐야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의 자동차 정비소가 지난 3일 밤 이뤄진 러시아군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받아 폐허로 변해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의 자동차 정비소가 지난 3일 밤 이뤄진 러시아군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받아 폐허로 변해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글로벌은 물론 한국에도 새로운 도전이다. 1991년 12월 소련 붕괴 이후 30년간 지속했던 ‘포스트 냉전’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온갖 재앙이 튀어나오고 있다. 기존 가치·질서·규범·사고체계가 전복되고, 혼돈 속에서 새로운 국제사회 구성이 모색되고 있다.

군사 측면에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동시에 혁신 압박을 받고 있다. 작전계획·장비를 재점검해야 하는 것은 물론, 징병과 모병, 그리고 예비군, 교육과 훈련, 방위산업 공급망과 물류체계까지 꼼꼼하게 다시 살필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한국이 우위인 반도체는 미사일·드론·정찰위성·항공기·군함 등의 핵심부품으로서 전 세계의 각축 대상이 됐다.

국제관계도 마찬가지다. 외교·동맹의 기존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우방과 잠재적 적대국의 개념을 재정비해야 하고, 에너지·식량 등 경제 안보도 전면 검토가 필요하다. 석유·가스 다량 공급국인 러시아의 위기와 글로벌 환경 대책이 맞물리면서 과거 1973~74년과 78~80년의 석유 파동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복잡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원전의 가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글로벌 환경의 변화는 새 정부에 북한과 한반도, 그리고 그 주변만 집중하지 말고 글로벌에서 한국의 위치와 위상을 새롭게 다질 것을 주문한다. 수동적인 중견국에서 주도적인 선진국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우선 글로벌에서 닥칠 다양한 위해 요인을 사전에 파악·분석·전망·예측하고 대응하는 ‘위기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이 급선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정보부터 상세하게 수집하고 중층적으로 분석해 우리의 미래를 열어가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범정부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파시즘-반파시즘의 투쟁과 냉전기 자본주의-공산주의의 대립을 넘어 포스트 냉전 시대의 이슬람주의·민족주의·권위주의 등으로 위기가 다양화·다원화하는 경향이다. 앞으로 벌어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개방적인 글로벌주의가 일정 부분 저물고, 국가·문화권·블록 별로 파편화와 편들기, 고립주의가 심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내외적으로 자유주의와 권위주의의 갈등이 심화하는 신(新)이데올로기 시대가 사실상 개막하고 있다. 유엔을 축으로 하는 다자주의적 협력의 국제정치는 약소국의 희망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은 오로지 힘을 앞세운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기존의 가치는 물론 진실조차 강대국 이익이나 스트롱맨의 개인적 아집으로 얼마든지 부정되고 수정되는 가짜뉴스와 디스인포메이션의 시대가 한창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북한의 핵 협박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국제관계도 대대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전까지는 글로벌을 ‘메이드인 코리아’ 상품을 내다 파는 시장으로만 인식하는 ‘경제 동물’의 감성에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국제 분쟁·갈등 속에서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고 물건이나 잘 파는 것이 국익이라고 믿어왔다. 가치 외교가 아니라 비즈니스 외교가 대통령의 책무로 오인됐다.

하지만 더는 그러기엔 한국의 덩치와 가치, 그리고 활동 영역이 너무 커졌다. 이젠 책임 있는 글로벌 거인으로서 한반도 중심주의, 경제 지향의 감성에서 벗어나 가치 외교를 주도할 때가 왔다. 개인의 자유·권리·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시장경제·국제협력의 수혜국이자 모범국으로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한국이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독자적인 사고와 발언, 그리고 행동을 해나가는 글로벌 주도국이 되려면 그만큼 책임과 역할을 기꺼이 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비극적인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수집·분석·연구를 토대로 판단·행동하며 글로벌 위기 대응체계를 갖춰야 한다. 2022년을 한국이 글로벌 사회에 주도적으로 기여하고 가치외교를 주도하며 역할과 위상을 강화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윤 정부 앞에 펼쳐진 엄중한 과제다. 국제관계에서 공짜 점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