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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한 공공기관 정규직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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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의 임직원 수는 문재인 정부 5년간 35%나 늘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371개 공공기관 임직원 정원은 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32만8479명에서 지난해 4분기 현재 44만3570명으로 11만5091명 증가했다. 박근혜 정부 때의 두 배에 달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임직원 수를 불린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이 344개 공공기관의 채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문 정부에서 공공기관 비정규직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원은 지난해 7월 기준 총 10만2138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공기업이 직접고용 형태로 전환한 인원이 5만884명, 자회사를 통한 고용이 4만9821명, 사회적 기업 등 제3섹터 고용이 1433명이다.

문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논란 속에 추진됐다. 누가 봐도 수긍할 공정한 룰에 따라 정규직을 늘렸다면야 토를 달 사람이 많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채용 방식을 보면 과연 공정하게 자질을 갖춘 인재를 정규직화한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이 생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규직화한 10만2138명 중 2만1147명만 공개 채용과 비슷한 절차를 거치는 ‘경쟁채용’을 통해 선발돼서다. 8만991명은 서류 심사와 간단한 면접만 치르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전환채용’으로 뽑혔다. 5명 중 한명 정도만 제대로 된 경쟁을 거쳐 정규직이 됐다는 의미다. 노동계에서 “경쟁채용을 철회하고 모두 ‘전환채용’하라”고 압박한 영향이 크다.

전환채용은 문 전 대통령이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시점에 운 좋게 남아 있던 비정규직이 이득을 보는 ‘복불복’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채용 비리나 청탁 같은 부정이 개입될 소지도 크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경쟁 없이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됐는데, 열심히 공부한 취업 준비생들이 이를 공정하다고 판단하겠는가. “역차별·불공정 논란이 계속 들끓었는데, 결국 문 정부 내내 바뀐 것은 없는 셈”(배준영 의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애초부터 부작용이 예견된 정책이었다. 공기업의 인건비를 늘려 경영 부담을 지운다. 혜택을 본 사람들만 좋았지, 청년들의 취업문을 좁게 만든다. 실제 공공기관 전체의 당기순이익은 2016년 15조7000억원에서 2020년 5조3000억원으로 줄었다. 2019년 4만1336명까지 늘어났던 공공기관 전체의 신규채용 규모는 지난해 2만7034명으로 감소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무임승차’라며 반대하는 기존 정규직과의 갈등도 여전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문 전 대통령 취임사)이라던 정부에서 드러난 불평등·불공정·부정의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