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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오레스테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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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아이스클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그리스 비극의 걸작으로 꼽힌다. 트로이 원정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군 사령관 아가멤논은 부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복수를 종용하는 누이 엘렉트라와 델포이 신탁의 계시에 이끌려 아이기스토스와 모친을 살해한다.

부친의 복수는 갚았지만, 친모 살해범이 된 그는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갖은 냉대에 몸 둘 곳을 찾지 못하던 그는 아테나 여신에게 재판을 요청했다.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가 모친 살해로 기소하고, 부친의 복수를 명했던 아폴론은 그를 변호했다. 배심원이 된 아테네 시민들의 표결은 동수. 결국 재판장 아네나 여신이 자신의 표를 오레스테스를 위해 던지며 무죄가 선고된다. 복수의 여신들은 항의하지만, 아테나 여신에게 설득돼 결국 ‘자비로운 여신들’이 되기로 한다.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최근 벨기에 연출가 이보 반 호프가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올린 ‘분노의 시대(Age of Rage)’는 이 이야기를 현대적 스타일로 올린 연극이다.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오레스테스를 보면서 경기지사 경선에서 고배를 든 유승민 전 의원이 떠올랐다. 그는 여론조사에서 앞섰지만 당원투표에서 밀리며 쓴잔을 마셨다. 윤심(尹心)도 작용했겠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참여하면서 ‘배신자’로 찍힌 그의 처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론의 환호는 잠시뿐, 이후 그의 정치 여정은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그는 당심(黨心)을 ‘복수의 여신’에서 ‘자비로운 여신’으로 바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