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자유’ 강조한 윤 대통령, 통합도 잊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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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제20대 대통령의 취임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제20대 대통령의 취임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3450자 취임사 자유 35번, 통합 0번

자유 강조 인상적 … 세심한 접근 필요  

북핵 해결 대화 문 열어둔 건 환영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많은 약속을 하지 않았다. 대신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자유·인권·공정·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다. 그러곤 “국민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전임자들이 수십 개의 약속을 담아 취임 연설을 했던 것과의 차이다.

통치 언어도 달랐다. 3450자의 취임사에서 ‘자유’가 35차례 등장했다. 역대 대통령의 사전엔 없었던 ‘자유 시민’, 그게 국경 밖으로 확장된 ‘세계 시민’도 등장했다. 윤 대통령이 10개월여 전 정치 참여를 선언하며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했던 가치관이 오롯이 담겼다.

윤 대통령은 먼저 팬데믹 위기부터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 등 복합 위기를 언급하고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가장 큰 원인으로 ‘반(反)지성주의’를 꼽았다. 그는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했다. 정확한 인식이라고 본다. 진영 사고가 합의의 여지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으로서 공감과 합의의 기반을 넓힐 책무를 언급하지 않은 건 아쉽다. 통합은 취임사에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0.73%포인트 차의 신승에다 엄청난 여소야대 국회는 윤 대통령이 먼저 다른 진영에 손을 내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자유론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며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유 시민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곤 “승자 독식이 아닌 일정 수준의 경제적 기초,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거나 “모두가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연대와 박애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적극적이고 진취적 개념의 자유다. 윤 대통령으로선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인용했던 ‘120시간 노동’ ‘부정식품’이 거센 논란을 불렀던 걸 잊어선 안 된다. 당장 진보 진영에선 “시장의 자유를 의미한 게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이 국내 문제에선 ‘빠른 성장’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낼 수 있다고 한 건 당위론이었다. 구체적 정책이나 방법론이 보이지 않은 건 아쉽다. 윤 대통령이 ‘일시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는 취약한 평화’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을 꽃 피우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말하면서도 북한과의 대화에 문을 열어둔 건 환영할 만하다.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으로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 때의 대북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차별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