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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는 왜 둥글어야 하나, 파격과 자유를 빚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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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최근 완성한 신작 ‘환희’ 옆에 선 윤광조 작가. 마치 두 손을 흙에 대고 삶에 경배를 올린 듯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근 완성한 신작 ‘환희’ 옆에 선 윤광조 작가. 마치 두 손을 흙에 대고 삶에 경배를 올린 듯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도예가 윤광조(76)씨에게 팔이 말을 듣지 않은 지난 2년여 시간은 고통이었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고 되뇌며 당차게 살아온 그이지만, 흙을 마음껏 만지지 못하는 시간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다시 일을 시작한 그는 최근 가마에서 나온 두 점의 작품에 ‘환희(歡喜)’라는 제목을 붙였다. 42, 48㎝ 높이의 분청사기 두 점엔 손바닥 자욱이 여기저기 선명하게 찍혔다. 두 손을 활짝 펴 흙에 대고 반갑게 인사라도 한 것 같다.

독창적인 분청 기법으로 작업해온 윤광조 작가 개인전이 서울 가나아트 한남에서 3일 개막했다. 전시작품 13점엔 신작 ‘환희’를 비롯해 기존 대표 연작 ‘혼돈(混沌)’과 ‘산동(山動)’ 등이 포함돼 있다. 신기하게도 그 작품에 우리 산하가 비친다. 하늘을 향해 꿈틀꿈틀 일어서는 듯한 산이 있고, 천 년을 견딘 듯한 바위도 있다. 그 바위에 누군가가 마음을 담아 단단히 새긴 『반야심경』 글자도 보인다. 사납게 몰아치는 눈보라도, 무심하게 흘러내리는 물줄기도 있다.

산동(山動), 2017, 58㎝. [사진 가나아트]

산동(山動), 2017, 58㎝. [사진 가나아트]

1973년 홍익대 공예학부를 졸업한 그는 분청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왔다. 73년 제7회 동아공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76년 김광균(1914~93)의 권유로 서울 신세계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때 발문을 써준 이가 혜곡 최순우(1916~83)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다.

지난해 9월 방탄소년단(BTS) RM이 유엔총회 연설 후 김정숙 여사와 함께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한국실을 찾았을 때, 그의 도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봤다. 현재 그의 작품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샌프란시스코아시아미술관, 영국박물관, 호주빅토리아국립미술관, 벨기에 마리몽로얄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10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그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분청 작업을 일찍 시작했다.
“대학 때 외국 서적을 취급하던 책방에서 일본 책에 담긴 분청을 보았다. 당시 매끈해 보이는 도자기가 인기였는데, 투박해 보이면서도 현대적이고 자연스러운 멋에 놀랐다. 운 좋게 군 생활을 육사 박물관에서 하며 혜곡을 만났고, 분청사기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분청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보다.
“확신 때문이 아니라 좋아서 한 거다. 나는 누구 눈치를 보며 작업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우선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했으니까 불안정한 생계, 전업 작가의 불안과 고통도 견딘 거다.”
혼돈(混沌), 2013, 44㎝. [사진 가나아트]

혼돈(混沌), 2013, 44㎝. [사진 가나아트]

1980년대부턴 물레질 대신에 손으로 흙을 직접 주무르며 빚었다고.
“보통 도자기는 물레를 돌려 둥근 형태로 빚는다. 어느 날 문득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둥글지 않은 형태는 무엇이 있나 생각해봤다. 물레를 돌려 모양을 잡은 뒤 찌그러트리며 변형을 가한 게 그 시작이었다.”
주제가 ‘혼돈’ ‘산동’ ‘심경’인데.
“우리 문화가 외래문화에 잠식되는 거 아닌가 걱정하며 시작한 게 ‘혼돈’(2000년대)이었고, ‘산동’(2010년대)은 경주 작업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도덕산이 살아서 다가오는 듯한 전율이 느껴져 시작했다.”
심경(心經), 2020, 58㎝. 모두 적점토에 화장토를 입히는 분청기법으로 만들었다. [사진 가나아트]

심경(心經), 2020, 58㎝. 모두 적점토에 화장토를 입히는 분청기법으로 만들었다. [사진 가나아트]

신작은 ‘환희’다.
“어깨 통증으로 2년 6개월 동안 작업을 못 했다. 조수 없이 모든 작업을 혼자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도 있다. 작품은 한 인간의 순수와 열정, 땀으로 만들어지는 것. 물건을 양산해 납품하는 건 작가가 아니라 업자다.”
작업을 재개하고 달라진 것은.
“크기가 이전보다 작아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변화가 왔다. 그걸 이젠 받아들이려 한다. 억지로 만들고 세상을 놀라게 해야 한다는 욕심이 앞설수록 남의 것을 자꾸 기웃거리고 베끼며 망가진다.”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작품은 ‘외향형’인 그를 닮았다. 낯선 환경에 적응 잘하는 “함경도 아바이” 기질로 28년째 산속에서 작업하면서, 틈틈이 캠핑카를 몰고 여행 다닌다. 그는 “산속에 살아도 캠핑은 세상에 나가 또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만나는 법”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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