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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고 볼일”…74년 만에 청와대 문 열리자, 시민 함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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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래 살고 볼 일이야.” 10일 오전 11시30분, 청와대 정문 앞에서 개방을 기다리던 한 시민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청와대 개방!”이란 사회자의 구호에 맞춰 문이 열리자 수백 명의 시민이 함성을 지르며 들어갔다. 74년 만에 청와대가 시민 품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모두 12명의 역대 대통령이 이곳을 거쳐 갔다. 첫 이름인 ‘경무대’가 푸른 기와집이란 뜻의 ‘청와대’로 바뀐 건 윤보선 전 대통령 때다. 그간 경호상 문제로 일반인에게는 행사 때만 일부 개방됐는데,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이날부터 전면 개방됐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10일 74년 만에 청와대가 국민에게 전면 개방됐다. 청와대 개문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상선 기자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10일 74년 만에 청와대가 국민에게 전면 개방됐다. 청와대 개문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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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개방에 앞서 이날 오전 6시50분 춘추문을 통해 청와대 남측 면으로 북악산에 오르는 등산로가 먼저 개방됐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숙정문을 통과하는 청와대 뒤 성곽길을 개방했지만 춘추문에서 곧장 이어진 등산로가 열린 건 처음이다. 이준자(56)씨는 “1번으로 가게 돼 들뜬다”고 말했다.

20분쯤 걷자 백악정이 나타났다. 정자 오른쪽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심은 느티나무가, 왼쪽에는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심은 서어나무가 서 있었다. 백악정을 지나자 좌측으로 청와대 전경이 펼쳐졌다.

새로 개방된 길을 돌아 춘추문으로 돌아오는 데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노 전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후인 2004년 4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함께 이 길을 찾아 자신의 처지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했다.

청와대 정문은 오전 11시37분에 개방됐다. 국민대표 74인이 봄을 알리는 매화를 들고 먼저 입장했다. 장영희(54) 매동초 교장은 “청와대가 시민 품으로 돌아와 감격스럽다. 아이들과 녹지원에서 수건돌리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문이 열리자 푸른 기와의 본관이 가장 먼저 보였다. 1991년 완공된 본관은 역대 대통령이 주 집무실로 쓰던 공간이다. 아직은 내부 입장이 안 돼 시민들은 유리문 너머로 레드카펫을 구경했다. 본관에서 대통령 관저까지 도보로 9분 정도 걸렸다. 크게 세 건물로 나뉜 관저의 대문인 인수문을 들어서니 낮은 소나무 몇 그루와 꽃나무를 심은 마당이 드러났다. 포항에서 온 구희숙(58)씨는 “마당이 너무 좋다. 이래서 안 나가려 했구나”라며 웃었다.

관저 뒤 산책로를 따라 산을 오르니 ‘오운정’이 나타났다. 좀 더 걸으니 경복궁과 광화문 광장이 보이는 산책길이 나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대를 바라본 장소가 이곳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다.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랫소리도 들려왔다”고 했다.

남쪽으로 내려가자 외빈 접견에 사용되는 상춘재가 나타났고 앞으로는 녹지원이 펼쳐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이곳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조깅했다. 녹지원을 지나니 업무동인 여민관이 보였다. 청와대 경내를 한 바퀴 도는 데는 1시간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9일 오후 이 길을 걸어 퇴근했다. 청와대 정문으로 퇴근한 마지막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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