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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정민의 이의있는 고발

이대남 오해 말라, '사병 월급 200만원' 무산돼 화난 게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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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4일 올해 첫 현역병이 입소한 육군훈련소 모습을 배경으로, 대선 중 병사 월급 인상을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대통령의 SNS 포스팅을 합성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지난 1월 4일 올해 첫 현역병이 입소한 육군훈련소 모습을 배경으로, 대선 중 병사 월급 인상을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대통령의 SNS 포스팅을 합성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중앙일보 오피니언 기획 시리즈 '나는 고발한다. J'Accuse...!'는 윤석열 정부 출범(10일)에 맞춰 새 정부에 바라는 20대의 가감없는 목소리를 전하는 번외편 '이의(이십대 의견)있는 고발'을 일주일 동안 연속으로 내보냅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정권에 등을 돌린 20대는 공정에 대한 기대로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후퇴 조짐을 보이는 여러 주요 공약 등으로 벌써부터 이들의 지지가 흔들린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이 차기 정부에 바라는 게 무엇인지 그 속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정확한 사실로 사회적 갈등만 양산한다는 비판 끝에 결국 9일 운영을 접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비판하는 최원영 학생의 글, 국민은 여전히 고통받는데 K방역 자화자찬에만 열을 올렸던 지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김지은씨 글에 이어 오늘(11일)은 월급 200만원 공약으로 이대남의 마음을 움직였던 군대 문제에 대해 쓴 유정민 학생의 칼럼이 나갑니다. 문과 취준생의 아픔, 젠더 갈등 등 20대의 주요 관심사에 대한 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대 남녀가 고루 섞인 이번 '이의있는 고발' 필진은 그동안 '나는 고발한다' 칼럼에 논리적 의견이 담긴 댓글을 달았던 애독자, 그리고 지난달 독자 칼럼 이벤트 응모자 가운데 주제 등을 고려해 선정된 분들입니다. 독자 칼럼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내보낼 예정입니다.

대학 2학년인 저와 친구들의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군 복무입니다. 내년 공군 입대를 계획하고 있는데 군대에 가서도 전공 공부를 틈틈이 할 수 있을지, 2년이란 공백이 향후 인생 진로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많습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군에 입대한 청년들로 대상을 국한하자면 꽤 긍정적인 정책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병사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한 것, 그리고 월급을 인상한 것입니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군에서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한 이후 군인 자살률은 44%, 탈영은 30% 줄었다고 합니다. 또 2017년엔 각각 16만 3000원, 21만6000원이던 이병과 병장의 월급을 점진적으로 인상해 2021년엔 각각 45만9100원, 60만8500원으로 대폭 올린 데 대해서도 많은 청년이 박수를 쳤습니다.

인사혁신처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른 계급별 병사 봉급 추이. [e-나라지표 캡처]

인사혁신처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른 계급별 병사 봉급 추이. [e-나라지표 캡처]

요즘 군대 편하다는 기막힌 소리

이런 소식이 나올 때마다 "요즘 군대 편해졌다"며 군 입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어른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입대를 앞둔 당사자 입장에선 이런 반응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진전은 있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군에 간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군 내 계급체계에서 발생하는 필요 이상의 상명하복 문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구태와 악습, 가장 결정적으론 군인을 어떤 권리를 지닌 한 개개인으로 보는 게 아니라 국가를 위한 소모품 정도로 보고 정당한 보상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 등 우리 또래 눈에서 볼 땐 심각한 문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최근 인터넷에 유행하는 ‘해병문학’ 이라는 밈(meme)을 한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해병대 특유의 ‘군기 강조’ 분위기에서 발생하는 온갖 부조리를 풍자적으로 고발하는 내용인데, 악의 조직 6974부대 황근출 등의 인물이 “네가 선택한 해병이다. 까라면 그냥 까라”고 던지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밈이 떠돌 때마다 ‘현실 속 군대는 여기 소개된 해병문학보다 더 심하다’는 의견이 달립니다. 과거엔 이게 당연했을지 몰라도 지금 세대는 "까라면 까"라는 식의 억압을 그냥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지난 2018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전진구 해병대 사령관, 남영신 기무사령관, 서욱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왼쪽부터)의 인사를 받고 자리로 오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 2018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전진구 해병대 사령관, 남영신 기무사령관, 서욱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왼쪽부터)의 인사를 받고 자리로 오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저는 이런 부조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부사관과 장교, 그리고 그들을 통솔하는 상급자가 병사들을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 보지 않고 단순한 소모품으로 여기는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9년 윤의철 전 합동 참모차장이 제28보병사단장, 제7기동군단장 등으로 근무할 때의 행적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병사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무시한 채 필요 이상의, 아니 상식을 벗어나는 훈련 강도를 요구했던 게 비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군인의 체력 수준을 높이는 건 당연하지만, 인권을 무시할 정도의 무리한 훈련을 강요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 지난 2018년 포항 해병대 헬기 추락 사고 당시에는 청와대와 국방부의 미흡한 대처가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참사로 고통받는 유가족들에게 “요구하는 만큼 의전이 이뤄지지 않아 짜증이 난 게 아니냐”는 비상식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최근 코로나 19 시국에는 격리 장병에 대한 처우가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제 주변에도 코로나로 인해서 훈련소나 자대 등에서 격리 생활을 할 때 “사람 같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장병을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군 내 부조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무 따른 정당한 대우 왜 인정 않는지 

지난해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승진 시 군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인사제도를 변경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와 파문이 일었습니다. 정부는 한참 뒤에야 ‘공공기관 승진 시 군 경력이 포함되는 호봉을 기준으로 승진 자격을 정하는 경우 관련 법령을 위반할 소지가 있어 각 기관에서 규정을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정비하도록 요청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결국 군 경력 인정 여부를 각 기관의 판단으로 떠넘긴 셈입니다. 이 사례를 접하는 국민은 ‘우리 정부는 군 경력을 별로 중요하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군 복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헌법에 명시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개인이 국가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무를 다한 사람은 정당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데 왜 우리 사회는 그걸 인정하지 않는 걸까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강원 철원군 육군 3사단 백골부대 OP(관측소)를 찾아 손식 사단장의 설명을 들으며 전방지역을 바라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강원 철원군 육군 3사단 백골부대 OP(관측소)를 찾아 손식 사단장의 설명을 들으며 전방지역을 바라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때부터 군인에 대한 처우와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발표된 ‘110대 국정과제’에도 미래세대 병영환경 조성 및 장병 정신전력 강화, 군 복무가 자랑스러운 나라 실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분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나라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런 이상적인 선언에도 불구하고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겠습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 SNS에 올린 ‘병사봉급 월 200만원’이라는 짧지만 강렬한 문구를 통해 관련 공약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반긴 청년들은 전폭적인 지지로 윤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110대 국정과제를 보면 당장 200만원으로 올려준다던 봉급을 2025년까지 실현한다고만 돼 있습니다. 이러니 표만 받고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것입니다.

200만원 받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입대를 앞둔 상황에서 병사 급여를 파격적으로 올려준다고 하니 저 역시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적인 생각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 5년 동안 많이 올렸다는 게 고작 60만원 수준(병장 기준)인데 200만원은 너무 큰 게 아닌가, 갑자기 현재의 3배 이상으로 월급을 올리는 게 과연 실현 가능할까 등의 의문도 들었고요. 사실 청년들이 막무가내로 사병 월급을 올리라고, 절대로 공약을 깨지 말라고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대통령이 취임도 전에 약속을 깰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성의 있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태도를 보였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제가 위에서 말한 청년을 존중받아야 하는 인격체로, 군인을 자랑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게 보이지 않아 실망스러웠던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4월 주한미군 기지인 평택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해 장병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모두 본인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사진 당선인 대변인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4월 주한미군 기지인 평택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해 장병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모두 본인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사진 당선인 대변인실]

요즘 BTS를 비롯한 대중문화예술인들의 병역특례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누구누구가 군대에 가야 한다, 가지 말아야 한다는 걸로 싸울 게 아니라 병역특례를 ‘보상’으로 보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곡을 찌르는 주장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잘해서 성과를 냈을 때 그 보상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주면 결국 병역은 기회만 있다면 피해야 하는 벌이 됩니다. 신성한 의무를 징벌로 여기게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군대가 더 이상 무작정 가고 싶지 않은 곳, 나의 미래를 방해하는 곳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의무 이행을 하는 곳이 돼야 합니다. 저는 내년에 입대해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그러한 저의 시간이 아까운 시간이 아닌 국가를 위해 의무를 다한 자랑스러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윤 대통령님이 그런 군대를 만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유정민 고려대 사회학과 2학년

유정민 고려대 사회학과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