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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잡아봐라~' 코치만 10년 '에어본' 전희철, 감독으로도 날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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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코치만 10년 지냈던 에어본 전희철이 감독으로도 날았다. 프로농구 감독 첫해 SK의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연합뉴스]

코치만 10년 지냈던 에어본 전희철이 감독으로도 날았다. 프로농구 감독 첫해 SK의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연합뉴스]

코치만 10년 지낸 ‘에어본’ 전희철(49)이 감독으로도 날았다.

전 감독은 사령탑 데뷔 시즌에 프로농구 서울 SK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이뤄냈다. SK는 10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7전4승제) 5차전에서 안양 KGC인삼공사를 86-62로 꺾었다.

1·2차전을 승리한 SK는 3차전을 내준 뒤 4·5차전을 내리 따냈다. 정규리그를 1위로 마친 뒤 챔프전까지 제패했다. 구단 통산 3번째 챔프전 우승(1999~2000, 2017~18, 21~22)이다.

3쿼터 초반까지 32-44로 끌려간 SK는 김선형과 안영준의 속공이 살아나며 45-47까지 따라붙었다. 3쿼터 막판 최준용이 3점슛, 자유투 3개, 속공 덩크슛을 성공해 55-52로 경기를 뒤집었다. 탄력 받은 SK는 4쿼터에 김선형이 ‘쇼타임’을 펼치고 최준용의 3점포까지 터졌다. 종료 2분 전 84-59로 달아나 승기를 잡았다. 최준용(21점)-김선형(20점)-워니(28점) 삼각편대가 69점을 합작했다. 정규리그에서 KGC를 상대로 1승5패에 그친 전 감독은 속공의 효율을 높여 승리를 이끌어냈다.

전희철은 프로농구 감독 첫해 SK의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연합뉴스]

전희철은 프로농구 감독 첫해 SK의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연합뉴스]

고려대 92학번 전희철(1m98㎝)은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스타였다. 2002년 대구 동양(현 오리온) 통합 우승 멤버이기도 하다. 점프력이 좋고 체공 시간이 길어서 미군 공수부대에 빗대 ‘에어본’, ‘에어 희철’로 불렸다.

2008년 SK에서 은퇴한 뒤 2010년 구단 프런트인 운영팀장을 맡았다. 당시 회식 자리에서 한 기자가 “유명 선수 출신이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시냐?”라고 예의 없는 발언을 했다. 전 감독은 서러움에 집 앞 주차장에서 2시간 동안 울었다고 한다. 이듬해부터 10년 동안 SK 수석코치를 맡아 문경은(50) 감독을 보좌했다. 그 사이 여자프로농구 팀에서 감독 제의가 왔지만 의리를 지키며 남았다.

올 시즌 문 감독의 지휘봉을 물려받아 사령탑에 올랐지만, 해결할 과제가 적지 않았다. SK 외국인 선수 자밀 워니(28·미국)는 지난 시즌 코로나19로 어머니와 외삼촌을 한꺼번에 잃고 우울증에 시달렸다. 포워드 최준용(28)은 2020년 12월 소셜 미디어에 팀 동료 노출 사진을 올리는 등 ‘악동’ 이미지가 강했다.

전 감독이 워니와 최준용을 다독여 변화를 이끌어냈다. 체중을 110㎏대로 줄인 워니는 플로터 슛(볼을 높이 올려 쏘는 슛)을 쏘며 리그 최고 외국인 선수에 등극했다. 정신 차린 최준용은 정규리그 MVP(최우수선수)를 수상했다.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SK 선수들이 난입해 전희철 감독에게 샴페인 세례를 퍼부었다. SK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박린 기자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SK 선수들이 난입해 전희철 감독에게 샴페인 세례를 퍼부었다. SK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박린 기자

전 감독은 운영팀장 시절 SK그룹 직원 연수에 참여해 배운 '소통과 수평의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이끌었다.  이날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최준용 등 선수들이 난입해 전 감독에게 샴페인 세례를 퍼부었다. 흠뻑 젖은 전 감독은 샴페인 병을 들고 “이걸 마셔야지. 왜 뿌려~”라며 활짝 웃었다. 형님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대하는 전 감독은 경기 중 작전타임엔 불같이 호통을 치며 분위기를 잡았다.

한국 프로농구는 오랜 시간 수비를 잘하는 팀이 우승하는 게 공식처럼 됐다. 재미가 없어졌고 인기도 떨어졌다. 전 감독은 문경은 전 감독의 기조를 이어 화끈한 공격 농구를 지속했다.

SK 속공을 이끈 김선형(왼쪽). [연합뉴스]

SK 속공을 이끈 김선형(왼쪽). [연합뉴스]

전 감독이 밝힌 올 시즌 개막 출사표는 “슥(SK)~ 잡아봐라~”였다. ‘슥’은 팬들이 SK를 부르는 ‘스크’를 줄인 말이다. 다른 팀이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빠른 농구를 선보인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SK는 5G(5세대 이동통신)급 스피드 농구를 펼쳤다. 정규리그 경기당 속공 1위(6.9개)에 올랐다. 챔프전 4차전까지 평균 10개의 팀 속공(KGC는 2.5개)을 선보였다. 5차전에서도 속공으로만 16점을 올렸다.

SK의 속공 농구를 이끈 ‘플래시 선’ 가드 김선형(34)은 챔프전 MVP 투표에서 95표 중 66표를 받아 MVP로 선정됐다. 시즌 중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전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행복한 농구를 해달라”고 당부했는데, SK 선수들은 팬들 눈이 즐거운 ‘행복 농구’로 화답했다.

김승기 KGC 감독은 “코치를 오래 지낸 전희철 감독이 모래알처럼 흩어진 팀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인정했다. 전 감독은 “시즌 전 SK 물음표는 나와 최준용, 그리고 워니였다. 이제 그 물음표를 지운 것 같다. 전략 전술보다는 선수들이 잘 뛸 수 있게 만드는 좋은 매니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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