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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확증편향’ ‘비전부재’가 한동훈 검증찬스 날렸다

중앙일보

입력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팔이 안으로 굽는 것도 정도껏이지 않겠나. 박홍근 원내대표도 한숨만 푹푹 내쉬는 실정이다.”(더불어민주당 핵심당직자)

한달 여 별러온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17시간 30분 동안 치른 더불어민주당에선 10일 깊은 후회와 낙담이 흘렀다. 한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은 일단 거부했지만 내부에서 “완패”(수도권 재선 의원)라는 관전평이 주류였다. “결정적인 한 방은 커녕 약간의 충격을 주는 ‘잽’도 없었다”(권성동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의 평가와 다르지 않은 분위기다. 청문위원들 사이에서나 “언론은 민주당이 결정적인 한방을 내놓지 못했다며 평가를 박하게 한다. 한 후보자 친화적인 것”(민형배 무소속 의원)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정도다.

9일 오전 내내 국민의힘과 입씨름 하느라 한 후보자를 향해선 질문 하나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자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청문위원들에게 “질문을 최대한 짧게 끊고 한 후보자 답변을 길게 끌어내라”는 지침을 긴급하게 내렸지만 오후부터는 코미디를 방불케하는 실수와 억지가 이어졌다.

비전無 청문회...“공부 안해도 너무 안해”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정부의 공직 후보자 의혹을 정리한 '10대 비리의혹 체크리스트'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정부의 공직 후보자 의혹을 정리한 '10대 비리의혹 체크리스트'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김남국 의원은 한 후보자를 향해 대뜸 “개리티 원칙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 한 후보자를 당황케 했다. ‘개리티 원칙’(Garrity Rule)은 검사·경찰 등 법 집행자들의 인사상 징계 여부가 걸려 있는 비위 사건에서 사법 당국은 이들에게 진술을 요구할 수 있지만 이때 나온 진술을 형사처벌의 증거로 쓸 수는 없다는 미 연방대법원의 증거 법리다.

김 의원은 한 후보자가 ‘채널A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본인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끝까지 제공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기 위해 이 원칙을 꺼냈지만 곧장 반격을 받았다. 한 후보자는 “개리티 원칙은 징계를 이유로 겁을 줘서 진술을 끌어냈을 때 형사 상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이라며 “(김 의원이 인용한) 개리티 원칙 관련 언론 보도가 뜻을 잘못 인용한 것이다.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는)룰이 있을 리가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김종민 의원은 한 술 더 떴다. 김 의원은 “개리티 원칙 상 수사관이 기본권 행사로 불리한 진술을 거부 할 순 있지만 국민도 그 사람을 고위공직자에서 배제할 수 있다”면서 “특검에 맡겨서 휴대폰을 보고 싶다.공정하게 보고 문제 없으면 누명을 벗어라”고 주장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형사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걸 전제로 한 진술 요청은 가능하다고 말한 게 개리티 원칙인데, 특검 요구는 그에 정면으로 충돌되는 것”이라며 “공부를 안해도 너무 안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후보자 자녀의 ‘스펙 쌓기’ 의혹을 ‘조국 사태’와 동일시하려 했던 전략도 조 전 장관에 대한 비호가 뒤범벅되며 스텝이 꼬였다. 민형배 무소속 의원이 “검찰은 조국 장관 수사를 함부로, 심하게 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결국 죽음으로 끝났는데 다들 검찰의 정치적 살인이라고 했다”면서 사과를 요구하자 한 후보자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제가 관여한 바가 없고, 조 전 장관에 대해서는 제가 관여했는데 사과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고 응수했다.

진중권 “잔뜩 부풀린 의혹을 현실이라 우기니”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고 있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고 있다.

확증편향 탓에 사실 관계 자체에 대한 오해와 오류가 그대로 노출됐다. 최강욱 의원은 한 후보자 딸 명의의 노트북 기증 문제와 관련해 “기증자가 ‘한****’이라고 나온다. 영리 법인이라고 나온다”고 지적했다. 사진상 후원자 명의에 적힌 ‘한****㈜’라는 명칭을 한 후보자 딸 명의로 오해한 것이다. 한 후보자는 “그건 ‘한국쓰리엠’ 같다. 영수증이 한국쓰리엠으로 돼 있다. 제 딸 이름이 영리법인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김남국 의원은 한 후보자 딸의 논문 공저자를 두고 “이모와 함께 썼다”는 추궁으로 한 후보자를 어리둥절케 했다. 김 의원이 ‘이모 교수’를 이씨 성을 가진 익명의 교수가 아닌 문자 그대로 이모인 교수로 해석해 생긴 일이다.

진보 진영에서도 “준비 부족이란 수준을 넘어서 자질 부족을 의원들이 그대로 노출했다.”(양홍석 변호사), “편협한 도덕성 잣대 아래 딸 스펙 쌓기 의혹만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했다”(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혹평이 쏟아졌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딸의 논문 문제를 제대로 따졌어야 하는데, 조국 일가의 명백한 불법을 열렬히 옹호해 온 전과가 있는 이들이라 애초에 그걸 따질 윤리적 자격을 갖고 있지 못하다”며 “무리하게 조국의 경우와 등치하기 위해 자기들이 잔뜩 부풀린 것을 곧 현실이라 우기려다 보니, 섬세하고 예리한 지적을 못한 것”이라 비판했다.

“한덕수 인준 부결에 대한 정무적 부담 커져”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왼쪽)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왼쪽)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연합뉴스

‘낙마 1순위’로 꼽았던 한 후보자 청문회마저 싱겁게 막을 내리면서 갈 길이 막힌 건 민주당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부적격 논란에도 13개 부처 장관 후보자 임명 강행을 예고했지만 이를 저지할 명분이 사라졌기 떄문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 소장은 “윤 대통령이 포기할 리 없는 한 후보자를 무리하게 주적으로 삼아 여타 국무위원 후보자 검증은 다 묻혔고 민주당 입장에선 검·경 인사권을 모두 윤 대통령의 측근들이 좌우하는 걸 용인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았다”며 “차라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를 겨냥해 검수완박으로 비대해지는 경찰 권력 견제를 시도하는 게 나을 뻔 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 요청안을 결재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 필요한 총리 임명동의안 부결 가능성을 자신들이 지목한 ‘부적격 후보’ 제거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아직 한덕수 후보자 인준 여부에 대한 방침은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한동훈 청문회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 한덕수 총리 인준 부결에 대한 부담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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