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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된 물가發 임금인상…'도미노' 인플레 우려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하반기부터 물가상승이 이어지면서 이에 따른 임금인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임금까지 오르면서 추가로 물가를 끌어올리는 ‘임금발 물가 상승'(wage push inflation) 우려도 나온다. 물가 상승이 임금을, 임금이 또다시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올리는 나선형 상승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가 상승에 오르기 시작한 임금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협약임금 인상률은 3.6%로, 2020년(3.0%)보다 올라갔다. 협약임금은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정한 임금을 뜻한다. 2018년 이후 협약임금 인상률은 매년 낮아졌는데 이 추세가 지난해부터 바뀌었다. 특히 민간부문의 인상률이 3.9%로 공공부문(1.5%)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미 기업에서의 임금 인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지난달 28일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앞에 '저임금에 더 이상은 못살겠다'라고 적힌 노조 명의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지난달 28일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앞에 '저임금에 더 이상은 못살겠다'라고 적힌 노조 명의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임금인상 요구는 최근 들어 더 커지고 있다. 노동조합 측은 물가가 오른 만큼 큰 폭의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부터 3%대로 치솟았고, 지난달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8%에 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이후 가장 높았다. 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지는 근거다.

9% 인상안도 결렬…거세진 요구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노사협의회와 임금 교섭을 통해 연봉인상률 9%에 합의했지만, 노조의 반대에 부딪혔다. 9%가 충분하지 않다는 취지다. 노조는 단체교섭권 없는 노사협의회와 임금 인상안을 다루는 게 불법이라며 고용노동부에 사측을 고발하기도 했다. 현대차 노조는 월 16만5200원의 기본급을 인상하는 안을 사측에 제시했다. 지난해(월 7만5000원)의 2배가 넘는 규모다. 또 현대중공업 노조는 기본급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상황이다.

네이버·카카오 등 정보기술(IT) 기업이 경쟁적으로 개발자를 채용하면서 IT 기업 발 임금 인상 ‘도미노’가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네이버 노사는 연봉 재원을 10% 늘리기로 합의했다. 카카오는 올해 임직원 연봉 예산을 15% 올리는 등 주요 IT기업들이 10%대 임금 상승을 현실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기업이 임금 인상 흐름을 주도하면서 전체 기업으로 추세가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미국 ‘임금발 상승’ 나타나

한국보다 앞서 공급망 위기로 인한 물가상승이 덮친 미국은 일찌감치 임금 상승을 겪으면서 ‘임금발 물가상승’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8.5% 상승해 40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취업정보기업 잡리크루터가 2월 기준 6개월 내 이직한 2064명을 조사한 결과, 64%가 전 직장보다 급여가 올랐고 이 중 절반가량은 11% 이상의 임금인상률을 보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미 재무부 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달 켈로그 경영대학원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임금 인상이 물가상승의 핵심 요소”라고 경고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도 미국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국내도 가능성…“정부 과제”

한국은행은 지난달 ‘최근 노동시장 내 임금상승 압력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상용직 정액급여 등의 임금상승률 기여도가 확대되면서 임금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며 “경우에 따라 물가가 임금 상승을 부추기고 다시 물가 추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기업이 높아진 인건비를 소비자 가격에 전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앞으로 계속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 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과제”라며 “물가 상승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면 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지고, 결국 다시 가격이 오르는 순환 상승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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