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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北비핵화, 빠른 성장…尹취임사서 드러난 ‘국정 기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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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를 35차례 외쳤다. 10일 오전 11시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다.

취임식은 국회 본관 앞에서 국내외 초청 귀빈과 시민 등 4만1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윤 대통령은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이 자리에 섰다”는 말로 대통령 취임사를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은 팬데믹 위기, 공급망 재편, 기후 변화 같은 국제 이슈와 초(超)저성장, 대규모 실업, 양극화 심화 등 국내 문제를 하나하나 언급한 뒤 “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우리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자유’”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자유’라는 가치는 경제·사회와 외교·안보 등 다양한 국정 분야를 씨줄과 날줄로 엮는 핵심 키워드로 제시됐다. 윤 대통령은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며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자유는 보편적 가치”라고 규정한 뒤 “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나와 우리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가 위협받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이 아니다.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라며 공동체의 적극적인 역할도 강조했다.

국내·외 자유 시민의 연대를 거듭 촉구한 대목도 눈에 띄었다. 윤 대통령은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며 “국제적으로도 기아와 빈곤, 공권력과 군사력에 의한 불법 행위로 자유 시민으로서의 존엄한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모든 세계 시민이 연대하여 도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北 비핵화 강조…“지속 가능한 평화 추구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은 외교·안보 정책의 초점을 북한 비핵화에 뒀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에 지속 가능한 평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아시아와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일시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는 취약한 평화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을 꽃피우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과 차별화하겠다는 뜻도 나타냈다.

비핵화 원칙으로는 ‘선(先) 비핵화, 후(後) 지원’을 확실히 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평화적 해결을 위해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며 외교적 접근도 약속했다. 윤 당선인은 취임 전 본지를 포함한 각종 인터뷰에서 비핵화의 첫 단추를 '북한의 핵사찰 수용'으로 자주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또 “평화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제사회와의 연대에 의해 보장이 된다”며 미국 등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협력 강화를 시사했다. 다만 이날 취임사에선 ‘한·미 동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군사 안보 차원을 넘어 경제·가치 동맹 등 다자간 협력으로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또 “우리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에 기반한 보편적 국제 규범을 적극 지지하고 수호하는데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빠른 성장 없이는 양극화·갈등 해결 어려워”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뒤 퇴장하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뒤 퇴장하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경제 정책의 핵심 과제는 ‘빠른 성장’이었다. 윤 대통령은 양극화와 사회 갈등 문제에 대해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빠른 성장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사회 이동성을 제고함으로써 양극화와 갈등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게 윤 대통령이 제시한 국내 문제 해법이었다.

빠른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방식으로는 과학과 기술, 혁신을 열거했다. 그는 “도약과 빠른 성장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낼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우리의 자유를 확대하며 우리의 존엄한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적인 협력 강화는 경제 성장 분야에서도 재차 강조됐다. 윤 대통령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은 우리나라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며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으로써 과학 기술의 진보와 혁신을 이뤄낸 많은 나라들과 협력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 위기에 빠뜨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 위기론’도 꺼내 들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과거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취임한 전직 대통령들이 “여와 야를 넘어 대화의 문을 활짝 열겠다”(이명박 전 대통령)라거나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문재인 전 대통령)라며 협치를 약속했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으로 ‘반(反)지성주의’를 지목했다. 그는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윤 대통령은 주어진 과제 해결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 국민은 많은 위기에 처했지만 그럴 때마다 국민 모두 힘을 합쳐 지혜롭게, 또 용기 있게 극복해 왔다”며 “이 순간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책임을 부여받게 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우리 위대한 국민과 함께 당당하게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날 윤 대통령은 16분간 취임사에서 ‘자유’(35회) 다음으로 ‘시민’·‘국민’(각 15회), ‘세계’(13회) 같은 단어를 가장 빈번하게 언급했다. ‘평화’(12회), ‘국제’(9회), ‘민주주의’·‘위기’(각 8회), ‘연대’(6회)가 그 뒤를 이었다. 다만 선거 캠페인 핵심 키워드였던 ‘공정과 상식’ 중엔 ‘공정’이 3차례 언급됐을 뿐, ‘상식’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3303자로,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사(8969자),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사(5558자)보다 짧았다. 취임식이 약식으로 열렸던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사는 3181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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