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실장 메시지는 확실히 달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당시 후보 메시지를 총괄했던 한오섭 메시지실장에 대해 주변에 종종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 당시 캠프 관계자는 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후보 신분이던 윤 대통령이 한 실장과 수시로 연락하며 메시지를 비롯한 정무적인 조언을 많이 받았다”며 “한 실장이 쓴 메시지로 인해 어려운 선거국면을 반전시킨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고 기억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그를 새 정부 첫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으로 발탁했다.
진보 정부에서만 운영된 국정상황실은 1998년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신설한 조직이다. 국정 전반을 관리하고, 관련 정보를 취합하는 곳인 만큼 국정상황실장엔 대통령의 최측근이나 정권 핵심 인사가 이 보직을 맡았다. 김대중 정부 장성민ㆍ전병헌, 노무현 정부 이광재ㆍ이호철, 문재인 정부 윤건영 등이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인사들이다.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상황실을 따로 두지 않았는데, 윤석열 정부는 국정상황실을 존속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자리에 한 실장을 발탁한 것 자체가 대통령이 그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게 국민의힘 인사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한 실장은 대표적인 보수 이론가 중 하나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지냈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보좌한 한 실장을 정치권에선 ‘김병준 사람’으로 분류하는데, 윤 대통령과의 인연도 김 전 위원장 때문에 시작됐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당 경선을 앞두고 캠프 좌장으로 김 전 위원장을 모시기 위해 수차례 접촉했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당 대표를 지낸 사람이 경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곤란하다”며 대신 자신을 보좌하던 한 실장을 윤 대통령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한 실장은 경선 당시 공식 직책 없이 윤 대통령의 메시지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당시 캠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실장이 윤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게 된 계기 역시 ‘메시지’ 때문이었다. 특히 경선 종반 홍준표 후보가 무섭게 따라붙을 당시 한 실장이 쓴 메시지는 경선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11월, 홍 후보가 “조직은 바람을 이길 수 없다”며 당심(黨心)에서 앞선 윤 대통령을 겨냥해 ‘바람론’을 제기하자, 윤 대통령은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개인기를 앞세운 홍 후보를 우회적으로 꼬집은 이 메시지가 한 실장의 작품이다.
이보다 한 달 전, 윤 대통령은 자신과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를 싸잡아 “범죄공동체”라고 공격한 홍 후보에 “홍 선배님, 우리 깐부 아닌가요”라며 “우리의 경쟁은 본선 승리를 위한 과정이다. 아무리 치열하게 경쟁하더라도 경선이 끝나면 정권교체를 위해 함께 어깨를 걸고 나가야 하는 동지들”이라며 응수했다. 이 역시 한 실장이 공들인 메시지였다고 한다.
본선 선대위가 꾸려진 뒤 윤 대통령은 한 실장을 메시지실장에 임명하며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당내 일부 세력으로부터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관계자)’으로 지목돼 공격받으며 선대위 안팎의 마타도어에 시달렸다. 결국 김종인,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이 떠나는 등의 선대위 쇄신 과정에서 한 실장 역시 백의종군하며 2선으로 후퇴했다. 당시 캠프 관계자는 “한 실장이 ‘나는 실무자일뿐’이라며 주변에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며 “선대위 쇄신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억울함을 홀로 참아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승리 뒤 한 걸음 물러나 있던 한 실장을 당선인 비서실 기획팀장으로 불러들이며 재차 신임을 보냈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비서실 아침회의 멤버 가운데 전ㆍ현직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은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과 한 실장, 두 사람뿐이었다. 새 정부 첫 국정상황실장이란 중책을 맡은 한 실장은 말을 아꼈다. 그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비서는 입이 없어야 한다”며 “새 정부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말 외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