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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깐부 아닌가요" 洪 꼬집은 尹의 말, 이 남자 작품이었다 [尹의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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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 실장 메시지는 확실히 달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당시 후보 메시지를 총괄했던 한오섭 메시지실장에 대해 주변에 종종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 당시 캠프 관계자는 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후보 신분이던 윤 대통령이 한 실장과 수시로 연락하며 메시지를 비롯한 정무적인 조언을 많이 받았다”며 “한 실장이 쓴 메시지로 인해 어려운 선거국면을 반전시킨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고 기억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그를 새 정부 첫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으로 발탁했다.

국정상황실장을 맡게 된 한오섭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뉴스1

국정상황실장을 맡게 된 한오섭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뉴스1

진보 정부에서만 운영된 국정상황실은 1998년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신설한 조직이다. 국정 전반을 관리하고, 관련 정보를 취합하는 곳인 만큼 국정상황실장엔 대통령의 최측근이나 정권 핵심 인사가 이 보직을 맡았다. 김대중 정부 장성민ㆍ전병헌, 노무현 정부 이광재ㆍ이호철, 문재인 정부 윤건영 등이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인사들이다.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상황실을 따로 두지 않았는데, 윤석열 정부는 국정상황실을 존속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자리에 한 실장을 발탁한 것 자체가 대통령이 그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게 국민의힘 인사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한 실장은 대표적인 보수 이론가 중 하나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지냈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보좌한 한 실장을 정치권에선 ‘김병준 사람’으로 분류하는데, 윤 대통령과의 인연도 김 전 위원장 때문에 시작됐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당 경선을 앞두고 캠프 좌장으로 김 전 위원장을 모시기 위해 수차례 접촉했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당 대표를 지낸 사람이 경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곤란하다”며 대신 자신을 보좌하던 한 실장을 윤 대통령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한 실장은 경선 당시 공식 직책 없이 윤 대통령의 메시지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당시 캠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실장이 윤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게 된 계기 역시 ‘메시지’ 때문이었다. 특히 경선 종반 홍준표 후보가 무섭게 따라붙을 당시 한 실장이 쓴 메시지는 경선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오섭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은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진은 지 난해 12월 6일 오후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후보 연설을 하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한오섭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은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진은 지 난해 12월 6일 오후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후보 연설을 하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지난해 11월, 홍 후보가 “조직은 바람을 이길 수 없다”며 당심(黨心)에서 앞선 윤 대통령을 겨냥해 ‘바람론’을 제기하자, 윤 대통령은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개인기를 앞세운 홍 후보를 우회적으로 꼬집은 이 메시지가 한 실장의 작품이다.

이보다 한 달 전, 윤 대통령은 자신과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를 싸잡아 “범죄공동체”라고 공격한 홍 후보에 “홍 선배님, 우리 깐부 아닌가요”라며 “우리의 경쟁은 본선 승리를 위한 과정이다. 아무리 치열하게 경쟁하더라도 경선이 끝나면 정권교체를 위해 함께 어깨를 걸고 나가야 하는 동지들”이라며 응수했다. 이 역시 한 실장이 공들인 메시지였다고 한다.

본선 선대위가 꾸려진 뒤 윤 대통령은 한 실장을 메시지실장에 임명하며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당내 일부 세력으로부터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관계자)’으로 지목돼 공격받으며 선대위 안팎의 마타도어에 시달렸다. 결국 김종인,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이 떠나는 등의 선대위 쇄신 과정에서 한 실장 역시 백의종군하며 2선으로 후퇴했다. 당시 캠프 관계자는 “한 실장이 ‘나는 실무자일뿐’이라며 주변에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며 “선대위 쇄신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억울함을 홀로 참아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승리 뒤 한 걸음 물러나 있던 한 실장을 당선인 비서실 기획팀장으로 불러들이며 재차 신임을 보냈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비서실 아침회의 멤버 가운데 전ㆍ현직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은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과 한 실장, 두 사람뿐이었다. 새 정부 첫 국정상황실장이란 중책을 맡은 한 실장은 말을 아꼈다. 그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비서는 입이 없어야 한다”며 “새 정부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말 외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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