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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교수 출신 장관 후보들의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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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조민근 기자 중앙일보 경제산업디렉터
조민근 정책디렉터

조민근 정책디렉터

윤석열 정부 내각이 결국 곳곳에 이가 빠진 채 출범하게 됐다. 여야의 대치에 장관 후보들의 인사청문 절차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으면서다.

상당 기간 공석이 불가피한 곳도 있다. 김인철 후보가 자진사퇴한 뒤 아직 후임 지명을 못 한 교육부 장관 자리가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 역시 안갯속이다. 정호영 후보가 일단 청문회까지는 갔지만, 더불어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에서조차 부정적 기류가 흘러나온다. 임명을 강행하더라도 이미 생채기가 곳곳에 난 상태에서 제대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도 잇따른다.

‘아빠 찬스’ 의혹, 이해충돌 겹쳐
교수 출신들 ‘낙마 1순위’ 올라
전문성·개혁성도 갈수록 퇴색
‘단조로운 내각’ 만드는 데 한몫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두 후보는 ‘아빠 찬스’ 논란으로 인화성이 큰 공정 이슈를 건드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 후보는 청문회장에서 “도덕적으로 떳떳하다”며 억울해했다. 그의 말대로 ‘아빠 찬스’는 오해일 수 있다. 두 자녀가 모두 “아빠가 졸업한 학교에 가고 싶어” 열심히 노력했고, 아빠의 동료 교수들 역시 편입 시험장에서 어떤 고려도 없이 엄정히 평가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국립대 병원장이라는 공직자로서 오해가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노력을 다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아빠 친구가 아빠 자식들 얼굴과 이름이 공개된 채로 심사와 면접을 본 것은 이해충돌”이라고 지적한 대로다.

더구나 자질 문제에 대해 더욱 의구심을 품게 한 건 지명 이후다. 취임도 하기 전인 그의 개인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복지부 인사청문준비단은 무려 69건의 ‘보도 설명자료’를 쏟아냈다. 그리고 이를 복지부 홈페이지에 따로 배너를 만들어 게시했다. 이것이 인사청문회법이 규정한 장관 후보자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금 받고 일하는 공무원들이 자신의 개인 의혹 해명에 매달리는 걸 오히려 뜯어말리는 게 공직 후보자의 자세가 아니었을까.

김 후보와 정 후보의 공통점은 또 있다. 모두 교수 출신이다. 공직 사회에서 교수는 특별한 대접을 받아왔다. 각종 위원회 멤버로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하고, 관료·정치인과 함께 내각의 주요 인재 공급원 역할도 했다. 정치인들에 부족한 전문성, 관료들에 부족한 개혁성이 이들의 무기다. 여기에 초야에서 학문을 닦다 임금이 요청하면 관직에 나서는 조선 시대 사대부의 고고한 이미지도 투영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교수 출신 장관 후보들이 ‘낙마 1순위’가 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에선 안경환·조대엽·박성진 후보가 줄줄이 물러났고, 이후 조국 장관이 결정타를 날렸다.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 지명자 중 교수 출신은 넷이다. 이 중 벌써 한 명이 낙마했고, 한 명은 사정권에 든 상황이다.

아마 인사청문회의 검증 기준이 까다로워진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료나 정치인에 비해 유독 교수 출신들이 낙마하는 비율이 높아진 건 이것만으론 잘 설명되지 않는다. 잇따른 낙마의 원인을 살펴보면 자녀 관련 각종 특혜 의혹, 음주운전, 탈세, 여기에 본업과 직결된 논문 표절 의혹까지 다양하다. 물론 이들이 모든 교수를 대변한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때 사회 일반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도덕적 기준을 가졌을 것이라 여겨지던 교수사회가 오히려 평균적인 수준보다 뒤처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전문성과 능력에 대한 평가도 예전보다 박하다. 부처와 관계없이 요즘 일선 관료들이 가장 꺼리는 장관이 교수 출신이라고 한다. 특히 이른바 ‘폴리페서’들이 기피 1순위다. 정파성은 오히려 정치인 출신보다 강한데, 구체적인 정책 추진에선 관료들에 비해 서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앞뒤 살피지 않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큰 뒤탈이 나는 경우도 잦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실패작인 탈(脫)원전,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정책도 부처와 청와대에 포진한 교수 출신들이 주도했다. 한 경제부처 관료는 “부처 내부 출신이 아니라면 교수보다는 차라리 국회에 말이 통하는 정치인 출신이 오는 걸 반긴다”고 관가의 분위기를 전했다.

빈 교육부 장관 자리를 채울 후보로는 정치인과 관료 출신 등의 하마평이 돌고 있다고 한다. 정호영 후보가 낙마할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성 관료·정치인 일색’이란 평가를 받는 내각의 색깔이 더 단조로워질 판이다. 학자 출신의 위축은 공직을 맡을 인재 풀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사회 전체의 손실이다. 잇따른 ‘교수의 추락’을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대신 전체 대학 사회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