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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안정 미국, 침체는 없다” “인플레 심각, 경착륙 불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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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윤석열 정부가 10일 정식 출범한다. 새 정부를 맞는 한국 경제는 외생 변수란 큰 태풍 앞에 서 있다. 그중 가장 강력한 태풍은 미국 경제와 긴축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 등은 미국 경제의 ‘연착륙’을 자신한다. 하지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우크라이나 사태, 중국의 코로나19 봉쇄까지 더해지며 경착륙에 대한 경고음도 전문가 사이에 만만치 않게 나온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연착륙(Soft-landing)은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경기 하강이 이뤄지게 한다는 의미다. 수요를 죽이지 않고 진정시킬 만큼 금리를 올려, 경기 침체를 야기하지 않으면서 인플레도 잡겠다는 의미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한 끗이라도 어긋나면 시장이 얼어붙고 실업률이 높아지는 경착륙(hard-landing)을 할 수도 있다.

옐런 장관과 파월 의장이 ‘연착륙’을 자신하는 근거는 미국의 ‘굳건한 고용시장’이다. 지난 5일 발표한 4월 미국 실업률은 전달과 같은 3.6%를 기록했다. 사실상 완전 고용(실업률 4% 미만)에 해당하는 수치로, 코로나19 직전에 기록한 50년 만의 최저치(3.5%)에 육박한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월 미국의 실업자 1인당 취업 가능 일자리 수는 1.9개다. 코로나19 직전인 2020년 2월(1.2개)보다 배 가까이 늘었다. 파월 의장이 “일자리가 이례적으로 매우 많은 상황인 만큼, 경기 침체를 일으키지 않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출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연착륙론자가 기대는 또 다른 구석은 가계 저축이다. CNBC는 8일(현지시간) “Fed가 경기 침체 없이 경제를 연착륙시킬 수 있다고 믿는 논거 중 하나가 미국 가계의 탄탄한 재정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무디스 등 외국계 투자은행에 따르면 미국 가계는 팬데믹 기간에도 약 2조7000억 달러(약 3448조원)의 초과 저축을 쌓은 것으로 분석됐다.

제레미 쉬린 UBS 애널리스트도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소비자의 여력과 기업의 재무제표, 전반적으로 건강한 고용 시장을 볼 때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은 작고, 증시가 30% 정도 하락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착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진다. 재무부 장관을 지낸 대표적 비관론자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개최한 컨퍼런스에서 “경제가 연착륙하거나 인플레이션이 하락할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서머스는 높은 임금 인상률이 지속해서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최근 데이터인 4월 고용지표를 보면 경제활동 참여율은 62.2%로 전달보다 0.2%포인트 하락했다.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임금 인상률을 완화하려면 결국 더 많은 노동 공급이 필요한데, 노동 시장 참여율이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경착륙론자는 소비심리 위축에도 주목한다. 모건스탠리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소비자 약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 62%가 인플레이션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석 달 전 설문에서는 해당 질문의 응답률이 56%였다.

설문 응답자의 절반은 향후 경제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했고, 응답자의 26%는 개인 재정 상황이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석 달 전 동일한 질문에 대한 응답률은 각각 43%와 23%였다.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이 더 심해질 가능성도 문제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일 밀컨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봉쇄로 미국의 인플레 압력이 더 커지고 있다”며 “Fed가 공격적 금리 인상을 하면 미국 경제의 경착륙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100억 달러 굴리는 큰손도 “인생 최대 약세장 진입”

100억 달러(약 12조7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미 자산운용사 ‘시에라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공동창업자 데이비드 라이트도 지난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인생 최대의 베어마켓(Bear Market·약세장)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보다도 큰 하락장이 앞으로 찾아올 거라는 예상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그가 운용하는 ‘시에라 택티컬 올 에셋 펀드’의 포트폴리오에서 미국 주식의 비중은 3%가 되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 이상은 현금으로 채웠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67)도 경기 둔화를 예측한다. 게이츠는 8일(현지시간) CNN의 ‘파리드 자카리아 GPS’에 출연해 “심화하는 인플레이션에 맞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어 경기 둔화가 찾아온다는 전망이 나온다”며 “약세론자의 주장이 최근 상당히 설득력을 얻고 있어서 무척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지난 6일 내놓은 주간보고서에서 “최근 약세장은 S&P500지수가 3000포인트, 나스닥 지수가 1만 포인트 선으로 떨어지면서 올해 10월 19일에 끝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은 상당기간 연착륙과 경착륙 가능성을 두고 저울질을 할 전망이다. 저울추를 기울게 할 대형 이벤트 중 하나는 11일(현지시간)에 나오는 4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중요한 것은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전월 대비)로, 시장의 전망치는 0.4%이지만 0.2%가 나와야 안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등 아시아 증시는 9일에도 약세를 이어갔다. 9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27% 내린 2610.81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2020년 11월 30일(2591.34) 이후 1년 5개월여 만에 최저치다. 대만 가권지수(-2.19%)와 일본 닛케이225지수(-2.53%)도 역시 하락했다. 중국의 상하이종합지수만 0.09% 상승하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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