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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정희도 반한 성주 참외…‘매출 5500억’ 보물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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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껍질을 깎고 씨를 뺀 참외 1㎏을 사방 1㎝ 크기로 다진 후 10시간 이상 재운다. 과육을 채반에 걸러내고, 걸러진 액체에 레몬 제스트(껍질의 노란 부분)를 갈아 넣고 바글바글 끓인다. 잠시 후 액체가 시럽처럼 끈적하게 변할때쯤 과육을 넣고 살짝살짝 저어주며 조린다. 참외로 잼을 만드는 과정이다.

국내 참외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경북 성주군의 한 참외 하우스에서 농민이 참외를 수확하고 있다. 성주군은 보다 폭넓은 소비자층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요리법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김정석 기자

국내 참외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경북 성주군의 한 참외 하우스에서 농민이 참외를 수확하고 있다. 성주군은 보다 폭넓은 소비자층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요리법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달 20일 오후 현대요리전문가 박미희씨의 자택.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달달한 참외향이 느껴졌다. 박씨는 참외를 이용한 여러 요리를 준비하느라 아침 일찍부터 분주히 움직였다고 했다. 다음날 있을 성주참외과채류연구소 연구성과보고회에 차려질 참외 요리 밑 작업이었다.

“지금 준비하는 음식은 브루스케타(바게트에 과일이나 소스 등을 얹은 요리)에 활용할 참외잼이에요. 언뜻 흔한 음식처럼 들리지만, 딸기잼이나 사과잼처럼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잼은 아니죠.”

이날 주방 옆에서는 박씨가 요리를 하면서 참고한다는 책자가 눈에 띄었다. 『참외 레시피』라고 적힌 책에는 참외잼뿐 아니라 참외 가스파초, 참외 마가리타, 참외 처트니 등 이색적인 이름의 요리들이 가득했다.

박미희 현대요리전문가. 김정석 기자

박미희 현대요리전문가. 김정석 기자

박씨는 “이들 요리는 모두 성주참외로 만든 음식들”이라며 “경북농업기술원 성주참외과채류연구소와 함께 참외 레시피 책자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날이 무더워지기 시작하면 식탁에 오르는 참외를 이용해 모두 28가지 레시피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늘날 참외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재배되고 있다. 2016년 제48차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참외의 영명을 ‘오리엔탈 멜론(Oriental melon)’에서 ‘코리안 멜론(Korean melon)’으로 변경했을 정도다.

우리나라 안에서는 경북 성주에서 70% 이상의 참외를 생산해낸다. 현재 인구 4만2000여 명인 성주에서만 3800여 농가가 3500㏊ 규모의 농지에서 참외를 재배한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조수입 5534억 원을 달성했다. 연간 1억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 억대 농가만 1612가구에 달한다.

참외 가스파초, 케일 참외 샐러드, 프라슈토 참외 토스트, 참외미역게살무침.(첫 번째 사진부터 시계 방향) [사진 성주군·성주참외과채류연구소]

참외 가스파초, 케일 참외 샐러드, 프라슈토 참외 토스트, 참외미역게살무침.(첫 번째 사진부터 시계 방향) [사진 성주군·성주참외과채류연구소]

참외는 유전적으로 멜론과 가까워 같은 학명(Cucumis melo L.)을 갖고 있다. 이 종은 북동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후 서양의 멜론과 동양의 참외로 나눠졌다. 인도와 중국 등을 거쳐 한국과 일본 등으로 전파된 후 일본에서는 ‘마쿠와우리(まくわうり)’라는 이름으로 재배됐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성주가 세계적인 참외 생산지가 된 것은 훌륭한 재배 조건을 갖고 있어서다. 한증술 참외산학연협력단장(경북대 원예과학과 교수)은 “경북 성주는 기상재해가 적고 겨울철 안개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당도가 높고 품질이 좋은 참외가 생산된다”라고 했다.

성주참외의 맛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얽힌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어느 날 참외를 먹다가 “이 참외가 유별난데 어디서 온 참외인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가리킨 참외는 바로 성주의 한 농가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골프장에 납품하던 참외였다. 이 회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경북에서 재배한 것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수소문 끝에 그 참외를 재배한 농민을 1976년 청와대에 초청하기까지 했다.

이런 성주참외는 한때 뜬소문에 시달려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16년 등장한 ‘전자파 참외’라는 괴담 탓이다. 전년보다 매출이 300억원 이상 떨어지면서 3710억원으로 급감하기도 했다. 이후 전자파가 성주참외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주장임이 확인됐다. 성주기지의 전자파가 기준치의 600분의 1로 무해하다는 게 실험으로 입증되면서다.

세계적으로 한국에서만 생산하게 된 참외는 『해동역사(海東繹史)』와 『고려사(高麗史)』 등에도 등장한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참외를 재배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다. 조선시대 종묘의궤에도 ‘6월 천신제’ 물품 목록에 참외가 포함돼 있다.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비숍(1831~1904)이 쓴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도 ‘조선인들이 간식으로 참외를 산처럼 쌓아놓고 먹었다’라고 썼다.

한국인들의 참외 사랑은 옛 그림이나 예술품만 봐도 알 수 있다. 신사임당(1504~51)의 초충도(草蟲圖)와 김홍도(1745~?)의 참외도 등이 대표적이다. 국보 제94호인 ‘청자 참외모양 병’ 같은 고려청자도 있다.

참외는 면역력 향상이나 소화 운동 촉진에 효과적인 과일로 알려져 있다. 세포 손상 억제나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베타카로틴이 많이 함유돼 노화를 방지하고 피부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참외에는 다량의 섬유소가 있어 소화와 장 운동을 촉진해 원활한 배변을 유도하기도 한다.

참외는 또 수분 함량이 약 90%로 갈증 해소에 좋고, 다양한 비타민과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다. 산모의 조혈 작용과 태아의 성장을 원활하게 하는 엽산도 100g당 132.4㎍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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