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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탈구, 테이프 감고 지젤 연기"…워싱턴 홀린 韓 발레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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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은원

이은원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워너 극장. 워싱턴발레단이 팬데믹 와중에 야심 차게 올린 ‘지젤’ 무대다. 이날의 주인공은 한국인 발레리나 이은원(사진) 수석무용수였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맹활약하다 워싱턴발레단을 이끄는 줄리 켄트에 스카우트됐다. 이 수석은 해외 무대에선 이날 처음 ‘지젤’을 췄다. 그는 공연 후 중앙일보와 만나 “오프닝 공연은 더 긴장하고 책임감이 많이 든다”며 “첫 ‘지젤’을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눈을 반짝였다.

오른쪽 어깨에 테이핑이 돼 있는데.
“어깨 탈구가 여러 번 돼서 테이핑으로 고정하고 무대에 올랐다. 공연 후 수술하기로 했다. 부상 상태로 공연하니 심리적으로 불안했다. 그래서 더욱 지젤이라는 캐릭터에 몰입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무대는 감정 표현이 풍부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장님이 드라마, 즉 표현을 강조했다. (지젤이 꽃 점을 치기 위해) 꽃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내는 동작 하나하나부터 1막과 2막까지 드라마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고 내용을 완성하는지 중요하다고 했다. 스토리텔링의 의미를 배웠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특히 ‘지젤’ 2막에서 이 세상 것이 아닌(otherworldly) 수준의 연기가 필수인데 이번 워싱턴발레단의 무대는 월등했다”고 극찬했다.

이 수석은 국립발레단에서도 훌륭한 ‘지젤’ 무대를 선보인 적이 있다. 그는 “10년 전 ‘지젤’을 처음 했을 때나 지금이나 발레를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다”며 “다만 무용수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살아오며 쌓은 경험이 좀 더 풍부해졌고,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무대에 설 때 어떤 생각을 많이 하나.
“사실 무대에서 춤을 출 땐 따로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가끔은 ‘내가 어떻게 췄지?’라고 기억이 안 날 때도 있다. 다만 무대가 항상 참 따뜻하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무대 위의 매 순간이 점점 더 소중해진다.”

그에게 1년 후와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우문현답이 왔다. “계속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만 있을 뿐 1년, 5년, 10년 후의 계획은 없다. 하루하루 제 앞에 있는 것에 감사하며 충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한국 무용수들의 세계적인 선전에 대해 그는 “다들 끈기와 책임감이 강한 것 같다”며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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