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탈구, 테이프 감고 지젤 연기"…워싱턴 홀린 韓 발레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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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원

이은원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워너 극장. 워싱턴발레단이 팬데믹 와중에 야심 차게 올린 ‘지젤’ 무대다. 이날의 주인공은 한국인 발레리나 이은원(사진) 수석무용수였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맹활약하다 워싱턴발레단을 이끄는 줄리 켄트에 스카우트됐다. 이 수석은 해외 무대에선 이날 처음 ‘지젤’을 췄다. 그는 공연 후 중앙일보와 만나 “오프닝 공연은 더 긴장하고 책임감이 많이 든다”며 “첫 ‘지젤’을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눈을 반짝였다.

오른쪽 어깨에 테이핑이 돼 있는데.
“어깨 탈구가 여러 번 돼서 테이핑으로 고정하고 무대에 올랐다. 공연 후 수술하기로 했다. 부상 상태로 공연하니 심리적으로 불안했다. 그래서 더욱 지젤이라는 캐릭터에 몰입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무대는 감정 표현이 풍부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장님이 드라마, 즉 표현을 강조했다. (지젤이 꽃 점을 치기 위해) 꽃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내는 동작 하나하나부터 1막과 2막까지 드라마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고 내용을 완성하는지 중요하다고 했다. 스토리텔링의 의미를 배웠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특히 ‘지젤’ 2막에서 이 세상 것이 아닌(otherworldly) 수준의 연기가 필수인데 이번 워싱턴발레단의 무대는 월등했다”고 극찬했다.

이 수석은 국립발레단에서도 훌륭한 ‘지젤’ 무대를 선보인 적이 있다. 그는 “10년 전 ‘지젤’을 처음 했을 때나 지금이나 발레를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다”며 “다만 무용수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살아오며 쌓은 경험이 좀 더 풍부해졌고,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무대에 설 때 어떤 생각을 많이 하나.
“사실 무대에서 춤을 출 땐 따로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가끔은 ‘내가 어떻게 췄지?’라고 기억이 안 날 때도 있다. 다만 무대가 항상 참 따뜻하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무대 위의 매 순간이 점점 더 소중해진다.”

그에게 1년 후와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우문현답이 왔다. “계속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만 있을 뿐 1년, 5년, 10년 후의 계획은 없다. 하루하루 제 앞에 있는 것에 감사하며 충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한국 무용수들의 세계적인 선전에 대해 그는 “다들 끈기와 책임감이 강한 것 같다”며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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