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9일 15개 행정 각부의 차관급 20명 인선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일부 장관 후보자의 인선 과정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차관부터 정부 조직을 채우겠다는 의도다. 윤 당선인 측은 “정부운영에 어떠한 공백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외교·안보 분야는 대선 때부터 손발을 맞췄거나 과거 보수 정부에서 일한 인사들이 낙점됐다. 국방부 차관에 내정된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윤석열 캠프에서 외교·안보정책본부 총괄간사를 맡아 한·미동맹 강화, 대북 선제 타격론 등 외교·안보 이슈를 다듬었다. 대선 뒤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새 정부 정책 밑그림을 그렸다.
외교부 1차관은 조현동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한국투자진흥사무소 대표가 내정됐다. 노무현 정부 때 북미3과장이던 그는 청와대의 대미 외교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보직해임됐다가,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로 복귀했다. 외교부 2차관엔 윤석열 캠프에서 정책자문단으로 일했던 이도훈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지명됐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주도하며 북한과 협상한 인물이기도 하다.
통일부 차관엔 박근혜 정부에서 통일비서관을 지냈던 김기웅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이 발탁됐다.
윤 당선인은 기획재정부 1차관에는 기재부 차관보를 지낸 방기선 아시아개발은행(ADB) 상임이사를, 2차관에는 최상대 기재부 예산실장을 각각 내정했다. 둘 다 행정고시 34회로 공직에 입문해 기재부에서 근무한 정통 경제 관료다. 보건복지부 1차관은 조규홍 전 기재부 재정관리관, 2차관에는 이기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각각 내정됐다. 조 내정자는 윤석열 캠프에서 경제 공약을 만드는 데 관여했다.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로 한동안 장관 대행 역할을 해야 하는 교육부 차관에는 장상윤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이 내정됐다.
차관급 내정자 20명 중 연구원 출신인 신범철 내정자와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인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 내정자를 제외하고 18명은 모두 관료 출신이다. 정부 초기에는 관료 출신을 중용한다는 윤 당선인의 인사 기조가 다시 확인됐다. 서울대 출신이 8명, 50대는 17명, 여성은 0명으로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 쏠림 또한 여전했다.
윤 당선인은 차관급 외에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소속 부속실장에 강의구 전 검찰총장 비서관을 내정했다. 비서관급 가운데 인사·공직기강·총무·법률지원·부속실 6개의 자리를 검찰 출신이 차지했다.
당선인 대변인실은 차관 인사와 관련해 “취임 즉시 관련내용에 서명하고 발령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미뤄지고 있는 점도 대규모 차관 인사의 배경이 됐다.
국회는 전날까지 총 13명의 국무총리·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마쳤다. 이 중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한화진 환경부·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정식 고용노동부·이종섭 국방부·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7명의 청문보고서만 채택했다.
민주당은 한덕수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장관 중에는 박진 외교부·정호영 보건복지부·원희룡 국토교통부·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청문보고서 채택에 동의하지 않았다. 윤 당선인은 장관 후보자 5명의 청문보고서는 이날(9일)까지 송부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한 상태다.
관건은 추가경정예산안 의결을 위해 오는 12일 열릴 예정인 국무회의 구성이다.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총리를 제외하고 15인 이상의 국무위원으로 구성된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18명의 장관(국무위원)중, 문 대통령이 민주당 출신인 유은혜 교육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남은 국무위원은 15명이다.
윤 당선인으로선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장관 7명에 문재인 정부 장관 8명으로 국무회의를 열 것인지,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장관까지 임명을 강행해 새 장관 12명+알파(α)로 국무회의를 열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자의 경우 ‘반쪽 정부 출범’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후자는 민주당 반대에도 장관 임명을 강행한다는 정치적 부담이 있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해 임명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더 많다”고 말했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하루 빨리 임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반면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은 정호영 후보자의 경우 임명 강행이 강한 역풍을 부를 수 있어 고심이 깊다고 한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정호영 후보자와 원희룡 후보자를 곧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강경 기조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