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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린 '현대판 신문고'…누적 방문 5억, 靑청원이 남긴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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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9일 낮 12시 운영을 종료했다.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9일 낮 12시 운영을 종료했다.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세상을 바꾼 국민청원 5년.”

9일 낮 12시를 맞아 더는 글을 올릴 수 없게 된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은 이런 표현으로 지난 시간을 자평했다. “문재인 정부의 상징”으로도 불렸던 청와대 국민청원은 차기 정부 출범과 함께 도입 1725일 만인 이날 막을 내렸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사이버 공간은 국민 소통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 갈등 표출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함께 받는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봤다.

‘현대판 신문고’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8월 19일 ‘국민청원’ 도입 4주년을 맞아 국민청원에 직접 답변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의 답변 영상 화면.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8월 19일 ‘국민청원’ 도입 4주년을 맞아 국민청원에 직접 답변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의 답변 영상 화면. 뉴스1

그간 청와대 국민청원은 국민의 각종 사연을 전하는 ‘현대판 신문고’로 통했다. 답변 요건(20만 명 이상 동의)을 채운 청원 284건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범죄나 사고 피해자 등이 올린 청원(127건)이었다. 이들의 억울함을 담은 목소리는 실제 법·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요구’(2019년 4월)나 ‘음주 운전자 처벌 강화(故윤창호씨 관련)’(2018년 10월) 등이 대표적이다. 역대 가장 많은 769만 명(청원 9건)이 동의한 2020년 ‘텔레그램 n번방’ 사태 관련 청원은 디지털성범죄 근절 대책을 마련하게 한 실마리로 평가받는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문 정부 내내 뜨거운 화젯거리였다. 지난 5년 동안 하루 평균 31만여명이 찾아 누적 방문자는 5억 명을 넘었다. 주변에 국민청원 동참을 독려한 적 있다는 직장인 남모(28)씨는 “일반 시민이 가장 손쉽게 공론화를 할 수 있는 수단이라 느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자산 vs 제왕적 대통령 각인 

이날 SNS에서는 “이제 어디서 하소연하나”라며 운영 종료를 아쉬워하는 의견이 잇따랐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마녀사냥·허위성 글이 올라오는 등 국민청원의 과도기가 분명히 있었다”면서도 “첨예화하는 사회적 갈등 사안에서 국민 목소리를 듣는 공간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념을 떠나 청와대 국민청원은 민주주의 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9일 청와대.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9일 청와대.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반면 청와대 국민청원이 소통 공간이라는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사회적 갈등이나 정쟁을 조장·확산하는 창구로 쓰였다며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민에게 하소연 장을 마련해줬다는 건 청와대 국민청원의 공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대통령에게 말하면 모든 게 다 된다’는 식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국민에게 각인시킨 과를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청와대학교 대나무숲’ 한계도

개인사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청원이 우후죽순 올라오며 ‘청와대학교 대나무숲’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대학 게시판 수준보다 못한 불평이나 욕설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취업준비생이 모이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상대 진영을 깎아내리거나 선동하는 등 한국 사회가 반으로 갈리게 한 원인 중 하나”라는 댓글이 달렸다.

‘20만 명 이상 동의’라는 조건이 있다 보니 여론 관심이 집중되지 못한 사건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는다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 지난해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부작용을 호소하는 청원을 올린 김두경(53)씨는 “국민청원을 두 번이나 올렸지만 어떤 피드백도 받지 못했다”며 “정치적인 논리나 집단의 이해 관계없이 개인의 호소가 답변받는 건 불가능하다고 느꼈다”고 답답해했다.

신율 교수는 “결과만 놓고 보면 청와대 국민청원은 한풀이 수단에 불과하지 제도적 한계 등이 분명해 어떠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청원의 참고 모델인 미국 오바마 정부의 ‘위 더 피플(We the People)’도 다음 정부가 없앤 것처럼 여러 한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후 국민청원의 계승 여부 등이 결정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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